전화하는 법을 배운 여덟 살
3년이 지나고 나는 초등학교에 갈 나이가 되었다. 3년 동안 별다른 일 없이, 그 어린아이는 자신의 왼쪽 귀와 오른쪽 귀에서 들었던 소리도 어쩌면 잊어버리고선 명랑하게 살아갔다. 그날은 초등학교 입학식 전 날이었다.
내가 여덟 살이 되던 해에는 부모님 두 분 다 밖에 나가 일을 하고 계셨다. 그리고 우리 집은 4남매로 나에게는 오빠 두 명, 언니 한 명이 있다. 나이 차이도 많이 나서 내가 초등학교에 입학할 나이에 작은오빠는 중학교에 입학했고 이미 언니는 고등학교, 큰오빠는 대학교에 다니고 있었다. 그래서 내가 초등학교를 마치고 돌아왔을 때 집에 아무도 없는 것이 걱정됐던 엄마는 집전화로 내게 전화하는 법을 가르쳐줬다. 오빠도 언니도 모여서 막냇동생이 전화하는 법을 배우는 걸 지켜봤다. 집전화에 엄마 전화번호를 입력하고 혼자 다른 방으로 넘어가서 발신 버튼을 눌렀다. 나는 오른손잡이니까 자연스럽게 오른손에 들고 있던 전화를 오른쪽 귀에 대었다.
"여보세요? 엄마, 잘 안 들려."
엄마가 있는 방으로 다시 쪼르르 달려가서 소리가 잘 안 들린다고 말했다. 엄마는 그 자리에서 전화를 받아보라고 했고 여전히 오른손에 쥐고 있던 전화를 오른쪽 귀에 대었지만 전화기에선 먹먹한 울림만이 들렸다. 아니, 전화기에선 선명한 엄마 목소리가 나왔을 것이다. 전화기와 내 오른쪽 귀 사이에 어떤 막이라도 있는 듯이 멀고 흐리게 엄마 목소리가 들렸다. 옆에 있던 오빠가 왼쪽으로 한번 받아보라고 했다. 오른손에 든 전화기를 왼손에 바꿔 들고 왼쪽 귀에 전화기를 대었다. 엄마 목소리가 선명하게 들렸다.
여덟 살의 나는 '내 오른쪽 귀가 잘 들리지 않는다.'라는 문장을 머릿속에 입력하기까진 시간이 좀 걸렸다. 그저 왼손에 전화기를 쥐곤 나를 보고 있는 가족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모여 있던 가족들은 내 오른쪽 귀가 잘 들리지 않는다는 걸 알아차리곤 놀란 표정이었다. 언니, 오빠들은 놀라기도 했고 당황하면서도 생각지 못한 것에 맞닥뜨린 얼굴이었다. 늦게까지 일을 하고 돌아온 아빠도 이 사실을 듣고 놀랐지만 크게 당황하지 않고 그냥 날 안아줬다. 괜찮다며 나를 안심시켰다. 그리고 다음 날 아빠는 일을 뺄 수 없던 엄마를 대신해서 내 초등학교 입학식에 같이 갔다. 엄마들 사이에 서 있던 아빠는 내가 뒤를 돌아봤을 때마다 옅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이상하게 그때 엄마의 표정이 어땠는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기억나는 건 며칠 뒤 일을 중간에 마치고 나와서 내 손을 잡고 병원으로 갔을 때 조급해 보이던 엄마의 인상 쓴 얼굴뿐이다.
그날 집전화를 내려놓고 언니가 물었다.
"어떻게 들려? 귀에 물 들어간 느낌이야?"
"그런 거 같은데…"
"아니면 물속에 빠졌을 때처럼?"
"응, 그렇게 들려."
딱 그 느낌이다. 물속에 빠졌을 때 들리는 무언가 막힌 소리, 어린아이에게 내 느낌을 설명하기에 제일 적절한 표현이었고 여전히 나는 내 오른쪽 귀에서 어떻게 들리는지 묻는 사람들에게 언니의 말을 빌려 설명하곤 한다. 물속에 빠진 것처럼 들린다고 말한다.
그러니까, 나는 반만 물속에 빠진 채로 살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