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미포조선
1997년 12월, 울산에 위치한 현대미포조선에 입사를 했다. 1차 서류전형에 통과하여 서울 계동 현대건설 본사에서 치러진 면접까지 무사히 마치며 입사 통보를 받았다. 예상대로 면접의 키워드는 '영어성적'이었다. 해외 사업이 많은 현대그룹 성격상 영어는 필수 중에 필수였던 것이다. 당시 IMF 시절이라 취업하기가 상당히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달러를 벌어들이는 조선 관련 계열사는 환차익으로 호황을 누리고 있었다. 현대의 약 40개 계열사 신입사원들이 경주 현대호텔에 모였다. 그곳에서 1주일간 오리엔테이션 및 각종 기본 교육을 받는다. 한 가지 인상적이었던 것은 교육 커리큘럼중에 '양식 매너'가 있었다. 서양식 음식을 먹을 때 알아야 할 메뉴 순서, 포크 및 나이프 위치와 사용법, 그 외 식기류의 용도 등등 뭔가 상류층이 된 것 같은 착각을 할만한 교육이었다. 그렇게 신입사원 교육을 마치고 울산으로 향했다. 함께 입사한 동기는 30명. 가장 중요한 사업부 배정을 받는 날이 왔다. 조선소는 크게 사무직과 현장직으로 나뉜다. 모두들 가장 가고 싶어 하는 사업부는 단연 '설계부'였다. 아무래도 위험하고 힘든 현장보다는 사무실에서 안전하게 그리고 뭔가 멋있어 보이는 그런 부서에 가고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기대와 다르게 동기 대부분은 현장직으로 발령이 났다. 현장도 두 가지 종류가 있다. 오래되거나 고장 난 배를 다루는 '수리부'와 설계도를 바탕으로 배를 만드는 '신사업부'로 나뉘는데, 나는 그나마 앞으로 전망이 있다는 '신사업부'로 가게 되었다.
1998년이 밝았다. 신사업부 '선체생산부'에 배정을 받은 후 신입사원답게 좋은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노력했다. 아침 7시쯤 출근하여 간단한 청소를 하고 7시 30분이면 업무를 시작할 수 있도록 준비했다. 새해 첫 출근날 부장님께서 부르신다. "공문이 왔는데, 너 포항에 다녀와." 공문의 내용인즉은, 새해를 맞이하여 신입사원을 포함하여 정신 무장이 필요한 관리직 사원들이 포항 해병대 신병 훈련소에 3박 4일간 군생활 체험을 하고 오는 것이었다. 어이가 없었다. 제대한 지가 4년 정도밖에 안돼서 아직도 '군대'라면 치가 떨리는데 웬 체험? 하지만 회사 차원의 행사이고 신입사원 입장에서 항의도 할 수 없기에 다들 투덜대면서 가게 되었다. 우리 신입사원 30명을 포함하여 나이가 아버지 벌 되는 부장급 사원도 여러 명 있었다. 난 해군 출신이기에 해병대 훈련소 시스템을 잘 안다. 빨간 모자를 쓴 교관은 마치 인간이 아닌 악마의 탈을 쓴 로봇처럼 행동한다. 나를 비롯한 신입사원은 이미 제대도 하였고 엄연한 사회인인 데다가 우리보다 나이가 많은 대리급, 과장급, 차장급 그리고 부장급까지 있는데 신병처럼 무자비하게 훈련을 시키겠는가.. 내심 생각했다. 그러나 예상괴는 다르게 둘째 날부터 훈련 강도가 점점 세졌다. 그러더니 새벽에 잠을 깨워 연병장에 집합을 시킨 후 물 뿌리기까지 한다. 1월 추위 속에 왜 이런 훈련을 또 해야 하는지 정말 화가 났다. 더군다나 신입사원들이 그나마 연령층이 제일 젊다 보니 교관들의 타깃이 되어 가장 혹독하게 다루어졌다. 3박 4일간이었지만 얼마 안 된 예전 훈련소 생각이 나서 마치 군대를 두 번 온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회사를 다닌 지 몇 개월이 지났다. 계속해서 느끼는 것이지만 회사 분위기는 마치 군대와도 같다. 회사 정문의 경비는 헌병들이 사용하는 '하이바'를 쓰고 군복 비슷한 복장을 하고 있다. 오전 7시 50분이 되면, 모두들 자리에서 일어나 새마을 운동 스타일의 음악에 맞추어 아침 체조를 한다. 나처럼 현장 관리직은 야드에 나와서 작업자들과 함께 체조를 한다. '상명하복'식 문화가 만연되어 있고, 목소리 크고 부서 간 싸움 잘하는 사람이 일 잘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가장 군대와 유사한 상황은 따로 있다. 수주한 선박의 공정이 마무리되면 배의 이름을 지어주는 '명명식' 행사를 갖는다. 선수에 끈으로 매단 삼페인을 깨트리며 풍선이 날아가고 관악대가 우렁찬 음악을 연주하는 장면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이런 행사에는 귀빈들이 초대가 된다. 주로 해외에서 온 선주 측 VIP이지만 회사에서는 사장을 포함하여 주요 임원들이 참석을 한다. 행사가 시작되기 전, 일반 관리직과 작업자들은 선박 앞에 오와 열을 맞추어 정렬한다. 그 앞에 단상이 있고 그 위에 행사 진행자가 서 있다. 저 멀리서 고급 차량에 올라탄 VIP와 회사 고위급 임원들이 다가오면 관악대의 연주가 시작되고 우리 모두 마치 사령관이 오는 것 마냥 바짝 긴장하여 앞만 주시하고 있다. 사장이 단상에 오르면 행사 진행자는 큰 구령 소리로 '차렷' '열중 쉬엇' '차렷' '사장님께 경례' 그러면 우리 모두 거수경례를 하면서 '안전'을 외친다. 외국 VIP 눈에는 이 광경이 어떻게 보일지 참 궁금했다.
이 외에도 회사가 마치 군대와 같다고 느낄 때가 많다. 물론 조선소의 특성상 안전사고가 종종 발생하다 보니 규율을 엄격히 하여 사고예방을 하려는 의도는 이해한다. 다만 필요 이상의 지침이나 명령은 간혹 거부감을 가지게 한다. 한 가지 예를 들자면, 고 정주영 회장을 '왕회장'이라 부른다. 왕회장이 방문을 한다는 공문이 내려오면 회사가 발칵 뒤집힌다. 며칠 전부터 건물, 공장, 야드 등등 청소부터 시작하여 각종 자재나 기기를 이리 옮겼다 저리 옮겼다 한다. 그런 준비 때문에 며칠간은 거의 업무를 못한다. 하지만 왕회장은 결국 오지 않았다. 공기가 촉박하여 야근까지 하는 마당인데 왕회장 방문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 참 씁쓸했다. 뭐 이것이 현대그룹의 문화인데 어쩌겠는가.
하지만 이 모든 것을 눈감아 줄 수 있는 것이 있었다. 바로 '급여'. 보너스가 600%다. 즉, 두 달에 한번 보너스가 지급된다. 또한 노사타협이라 하여 가끔 특별 보너스도 지급된다. 대리까지는 노동조합에 의무적으로 가입을 해야 하지만 노조활동은 하지 않는다. 언제 노사 간 합의를 했는지도 알지 못하지만 책상 위에 관련 보너스 명세서가 있으면 노조에게 고마움을 느낀다. 아직 결혼 전이고 기숙사 생활을 할 때라 돈이 거의 필요가 없었다. 그러다 보니 여기저기 돈이 돌아다녔고 주머니에 돈이 있는지도 모르고 세탁을 하기도 한다. 대기업도 추풍낙엽처럼 힘 없이 쓰러지는 IMF 시절. 취업 문턱은 그 어느 때보다 높았고, 그나마 버티던 회사는 정리해고를 해야만 하는 시대적 상황에서, 수주가 몇 년 치 밀려 있고, 꼬박꼬박 월급 잘 주고, 보너스 잘 주는 그런 회사는 드물었다. 현실이 얼마나 매정하고 무서운지 하나도 모르는 신입사원. 회사가 마치 군대 같다고 투털 되는 내 모습을 지금 보니, 참 철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