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미포조선
대학을 졸업하고 공채로 입사를 하게 되면 4급 사원의 신분이 주어진다. 보통의 경우, 대졸 공채 출신 중에 임원이 나온다고 한다. 회사 차원에서도 이들을 위한 여러 가지 교육이나 행사를 마련하는 등 각별히 신경을 쓴다. 선체생산부에서 근무를 시작한 나는 선체의 기본 단위가 되는 블록의 생산 과정이 스케줄에 맞추어 문제가 없도록 관리를 하는 것이었다. 또한 생산된 블록에 문제가 없는지 QM(Quality Manager)과 함께 검사에 참여한다. 블록을 생산하는 공장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은데 기사 신분인 나는 작업반의 반장이나 아버지 벌의 소장과 대화를 한다. 일반 작업자들은 나와 눈을 마주쳐도 머리를 숙이며 피한다. 신입사원이기 때문에 현장 업무를 잘 모르는 것도 있고 작업반과 유대관계가 좋아야 앞으로 일 하는데 도움이 되겠다 싶었던 차에, 작업반이 주말 1박 2일 간 야유회를 간다는 소식을 들었고, 어차피 주말에 할 일도 없고 하여 소장님에게 조인해도 되는지 여쭈어보았다. 꽤나 놀란 눈으로 나를 쳐다보며 안될 건 없지만 여태까지 기사가 작업반 야유회에 같이 간 경우가 없다고 한다. 왜일까? 그 주말 40여 명 정도 되는 작업반과 함께 계곡으로 떠났다. 정말로 목적은 간단했다. 소장님과 반장님 그리고 작업자들과 조금이라도 친해지고 싶었던 것이다. 계곡물 옆에 텐트를 치고 고기를 굽기 시작하더니 술이 돌았다. 다들 나를 상전 모시듯이 깍듯하게 대해주셨다. 한참 시간이 흘러 밤이 되었다. 계속된 술자리에 많은 사람들이 취해있었고 여기저기서 큰 소리도 노래를 부르는가 하면 싸우는 소리도 들린다. 그러더니 점점 더 불안한 상황으로 변해간다. 작업자 중 상당수가 술에 취해 행동이 거칠어지고 싸움이 여기저기서 벌어진다. 텐트도 무너지고 아름답던 모닥불도 위험지역으로 변한다. 소장님의 권유로 나는 차로 피신을 했다. 그리고 그날 밤, 나는 왜 관리자가 작업반 야유회에 한 번도 참석한 적이 없는지 그 이유를 몸으로 느끼며 차에서 잠이 들었다.
오늘은 명명식이 있는 날이다. 선명은 'PRIDE AFRICA'. 석유 시추선이다. 일반 화물선이나 컨테이너선과는 달리 고가의 장비가 탑재된 특수선이다. 배 중앙에 'Moon Pool'이라는 사각형의 큰 구멍이 바닥 없이 바다로 뻥 뚫려 있다. 그곳을 통해 파이프를 내려 석유를 시추하는 것이다. 또한 헬리콥터가 앉을 수 있는 'Heli Deck'도 멋지게 선수 상단에 위치하고 있다. 이날의 명명식에 참석하기 위해서 유럽과 아프리카로부터 약 200여 명의 VIP가 초대되었다. 현대호텔에서는 아침부터 최고급 뷔페 음식과 샴페인을 배 전체와 바다가 잘 보이는 Heli Deck에 세팅하느라 바쁘다. VIP의 안내를 위해 영어를 잘하는 가이드가 필요했는데, 나를 포함하여 8명이 선발되었다. 시간이 되어 수많은 VIP가 명명식 세리머니에 참석을 하였고, 회사 고위급 임원과 함께 선박의 여기저기를 구경하였다. 그렇게 약 한 시간 정도를 배 위에서 서성이더니 음식과 샴페인이 마련된 Heli Deck로 올라갔다. 샴페인을 잔에 따르고 몇 번 건배를 하더니 모두들 하선을 하는 게 아닌가. 이 많은 좋은 음식을 그대로 놔두고.. 셰프가 말하길 안 먹으면 모두 버려야 한다고.. 앗싸~ 웬 횡재인가. 이날 점심은 식당에 안 가고 Heli Deck에서 처음 보는 산해진미와 고급 샴페인을 원 없이 먹었다.
하루는 부장님께서 부르신다. 선체 공장에 일본에서 엔지니어가 방문을 하는데, 통역을 할 수 있겠냐고 물으신다. 공장 내부에는 여러 공정이 있는데, 블록의 곡면을 제작하는 코너가 있다. 수십 개의 봉 지지대 높이를 조절하여 설계 도면상의 곡선을 만드는 베이스를 형성한다. 이 외에도 여러 기술이 필요한 장비나 장치가 많은데, 초기 설비 시 일본 엔지니어의 도움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고, 주기적으로 방문하여 사후 관리에 도움을 주는 것이다. 부장님의 부름은 부탁이 아닌 명령이다. 감히 거절을 할 수가 없다. 아직 자신이 없는 일본어이지만 죽이 되던 밥이 되던 일단 부딪혀 보는 수밖에 없다. 점심시간이 지나 공장에서 일본 엔지니어를 만났다. 인사를 하고 개인적으로 부탁을 했다. 오후 3시에 부서 회의가 있는데, 그때 내가 통역을 맡았고 아직은 일본어를 잘 모르니 천천히 아주 천천히 이야기를 해달라고 했다. 또한 기술적 단어나 표현을 못 알아들으면 재차 다시 말해 달라고 할 것이니 답답하더라도 이해를 해달라고 사전에 양해를 구했다. 오후 3시가 되었다. 부장님, 차장님, 과장님 그리고 모든 관리직 사원들이 착석한 가운데, 일본 엔지니어가 앞에 나와 화이트보드에 그림을 그려가며 문제점과 개선안에 대해서 설명을 시작했다. 그 옆에 서서 통역을 맡은 나는 당연히 한 번에 못 알아듣는 말들이 많았다. 그럴 때마다 다시 한번 이야기해달라, 이 말은 그런 뜻이냐, 좀 더 쉽게 설명을 해달라 등등 여러 요구를 하였다. 다행인 것은 아무도 일본어를 모르기에 이런 요청을 하는 것조차도 서로 대화를 하는 것으로 보였다는 것이다. 긴장된 상황 속에서 두 시간이 금방 흘러 회의가 종료되었다. 잘 한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망한 것도 아닌 거 같았다. 참석자 대부분은 '수고했다' '일본어 잘한다' 칭찬을 해주셨다. 그리고 며칠이 지났다. 부장님께서 부르신다. 해외사업부 전무님이 찾으니 가보라고. 잉? 한 번도 뵌 적이 없는 높은 분이 왜 나를? 본관 전무님 방으로 갔다. 전무님께서는 따뜻하게 나를 맞아주시며 여러 가지를 물으셨다. 일본어는 어디서 배웠는지, 영어는 얼마나 하는지, 지금 하고 있는 일은 무엇이고 만족하는지. 여러 가지 대화를 나눈 후, 마지막으로 한 말씀해주신다. 현재 하고 있는지 잘하고 있고, 때가 되면 같이 일 해보자고. 방을 나서며 얼굴에 미소가 지어진다. 역시 누군가에게 인정받는다는 건 참 기분 좋은 일이다. 부장님께 다녀왔다고 하니, 좋지 않은 얼굴로 말씀하신다. "뭐래? 너보고 오래? 누가 보내준대?" 부장님께서도 나를 잘 봐주신 거 같다. 어느 날 부장님께서 개인적으로 부르시더니 아르바이트를 해보라 하신다. 부장님 아들이 고등학교 1학년인데, 전문학교인지 일본어가 전공이다. 과외비는 넉넉히 줄 테니 저녁에 와서 아들 일본어를 가르치라는 것이다. 당연히 거절을 할 수가 없다. 그렇게 시작된 과외를 약 6개월 정도 하였고, 그 사이 호랑이 같던 부장님과는 다소 친해지는 계기가 되었다.
현재 IMF 시절, 모두들 허리띠를 졸라매던 시절이다. 정부 차원에서 금 모으기 운동이 벌어졌고, 회사에서도 집에 있는 금을 모두 가져와 팔으라는 분위기였다. 방송가에서도 근검절약하는 개인이나 기업을 대상으로 여러 가지 프로그램을 마련한다. 오늘은 우리 회사에 MBC에서 촬영을 온다. 프로그램명은 '엄마 어디가?' 일요일 인기 프로그램인 '일요일 일요일 밤에'의 한 코너로 전원주 씨가 엄마 역할을 맡았고, 홍록기 씨와 게스트 연예인이 함께 출연한다. 우리 회사에 오는 목적은 점심시간 식당에서 회사 직원들이 잔반을 남기지 않는 절약정신을 보여준다는 콘셉트이다. 이날 1년 선배가 인터뷰를 하기로 미리 이야기가 되어 있었고, 점심시간이 되어 식당에 들어서니 수많은 카메리와 마이크 그리고 스태프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오늘의 게스트 연예인은 신인 걸그룹 '핑클'이다. 녹화가 시작되고 정해진 순서에 의해서 촬영이 진행되었고, 홍록기 씨가 마이크를 들고 우리 쪽으로 인터뷰를 하러 다가온다. 그런데 홍록기 씨가 인터뷰를 하기로 약속된 선배가 아닌 나한테 갑자기 마이크를 불쑥 들이밀었다. 너무 당황스러웠지만 스태프들과 카메라가 나를 이미 촬영을 하고 있던 터라 아니라고 하기도 애매해서 즉흥적으로 질문에 대답을 했다. 인터뷰를 하고 있는 동안 핑클 멤버 4명은 내 뒤로 와서 어깨를 주무르는 것이 느껴졌다. 지금도 간혹 술자리에서 이야기하곤 하는데, 핑클이 어깨 마사지를 해주었다는 것은 큰 행운이자 추억이 되었다. 나중에 TV 방송으로 보게 되었는데, 지금 생각해도 웃음이 절로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