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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추현호 Sep 24. 2022

일본 전시회 및 골드만삭스 부사장 미팅

노브레이크 테크놀로지

일본 도쿄 '오다이바(お台場)'에서 대규모 IT 전시회가 열린다. 2000년도에 들어서면서 전 세계적으로 IT붐이 폭발적으로 일었고 날고 긴다는 기업들이 한자리에 모여 각자의 아이디어와 기술력을 선보이는 자리다. 한국은 당시 김대중 정권하에 IT산업 부흥을 위하여 많은 노력을 하고 있었다. 그 일환으로 정부 차원에서 기술력 있는 벤처기업을 모아 해외 전시회 참관 지원을 하였다. 노브레이크 테크놀로지의 기술력은 이미 검증이 된 상태라 무난하게 지원 대상이 되었고 일본 비즈니스 확대를 꿈꾸는 나에게는 절호의 기회가 온 것이다. 사전에 준비할게 많았다. 노브레이크의 대표 상품인 'CrazyWWWBoard'의 완벽한 일본어화가 우선이었고, 다음은 각종 소개 팸플릿이나 카탈로그 등을 기획하고 번역 후 프린트물로 준비해야 한다. 심지어 조금이라도 관람객의 눈을 끌기 위해 각종 소품 제작과 의상까지도 맞춘다. 약 한 달간의 준비후 드디어 결전의 장이 열리는 도쿄를 향해 출발했다.


도쿄 신바시 역에서 모노레일을 타고 30분 정도 들어가면 종착역에 국제전시장이 있다. 전시회 일정보다 며칠 앞서 도착한 우리 팀은 부스(Booth)를 할당받고 미리 기획을 한대로 준비를 마쳤다. 드디어 전시회가 시작되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입장하여 성황을 이루었는데 요즘 IT붐이 일본에서도 확산 중임이 여실히 느껴졌다. 우리 부스를 방문하는 관람객 역시 많았는데 당연히 모두를 기억할 수는 없다. 나중의 커넥션을 기약해야 하기에 명함을 받아두어 추후 개별 방문 감사 이메일을 보내는 것이 좋은 생각이다. 카탈로그나 샘플 CD를 가져갈 때 명함을 넣는 통을 마련하여 자연스럽게 자취를 남길 수 있도록 유도했다. 나와 일본의 이 과장은 일본어로 'CrazyWWWBoard'에 대해서 열심히 설명을 하였다. 특히 동경전력에 납품을 한 것을 앞세웠는데 이는 제품의 신뢰성에 도움을 주기 위함이었고 역시 그러하였다. 젊음과 의욕이  뭉쳐 눈에서 자신감 레이저빔이 발사될 정도다. 뭘 해도 신이 나고, 하루 종일 소리치며 서 있어도 피곤함을 느끼지 않는다. 이렇게 정신없이 시간이 흘러 나흘간의 전시회 일정 중 첫 날을 무사히 마쳤다.


전시회 둘째 날이 밝았다. 이날도 역시 문전성시를 이루며 많은 관람객을 맞이하였다. 어제와 같은 방식으로 팀원이 합심하여 열심히 회사 및 제품 홍보를 하였다. IT시대를 대변하듯 여러 유명 기업에서 다양한 신기술을 도입한 하드웨어 및 소프트웨어를 선보였다. 그중 하나가 바로 WiFi. 지금이야 너무 일반화되어 있는 무선 인터넷 기술이지만 2000년도만 해도 혁명적인 인터넷 접속 방법이 아닐 수 없었다. 무선 기술이 발달함에 따라 무선 단말기도 진화를 하였는데, 대표적으로 PDA와 휴대폰이다. PDA 시장은 Palm사와 HP사가 각자의 OS를 기반으로 격돌하고 있었고, 휴대폰은 비록 지금의 스마트폰과는 비교가 안 되는 수준의 폴더폰이 주를 이루었으나 그 안에서 여러 가지 앱을 활용한 다양한 서비스를 선보이고 있었다. 오후가 되어 전시회 전체 큰 이벤트가 진행되었는데 유명 인사를 초청하여 기조연설을 하는 것이었다. 여러 유명 인사가 단상에 올랐는데, 그중 눈에 띄였던 인물은 '손정의(손마사요시)'의 친동생과 골드만삭스 부사장이다. 손정의 동생 '손태장'씨는 '인디고'라는 벤처기업을 설립하여 제2의 손정의가 탄생하는 것이 아니냐는 캐피털과 업계의 주목을 받고 있는 인물이다. 수많은 관중 앞에서 그의 연설이 끝나고 다음으로 일본 골드만삭스 부사장이 단상에 올랐다. 다는 알아듣지 못했지만 그의 연설은 뭔가 간단하면서도 힘이 있었고 기억에 남을 만큼 호소력이 있었다. 외모도 출중하여 한눈에 호감이 갔으며 왠지 이 사람과 친구가 되고 싶다는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하게 되었는데, 그 생각이 나를 단상 뒤로 이끌었다. 연설을 마치고 내려오는 부사장에게 다가가 무턱대고 인사를 했다. 한국에서 온 벤처기업 직원이라 소개하고 명함과 제품 CD를 건넸다. 약간 당황하는 모습이었으나 웃는 얼굴로 받아주셨고 거기다 명함까지 받았다. 지금이라면 절대 할 수 없는 무대포식 접근 방식이라 그때를 생각하면 헛웃음만 나온다.


무사히 전시회를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와 모아두었던 명함을 정리하였다. 모두에게 방문 감사 이메일을 보내면서 다시 한번 회사 및 제품 홍보 사이트를 첨부한다. 여러 명함 중 단연 눈에 띄었던 건 골드만삭스 부사장. 그에게는 좀 더 장문의 이메일을 보냈는데, 현재 일본에서의 비즈니스 진행 상황도 설명하며 기회가 된다면 꼭 한번 만나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답장이 왔다. 도쿄로 오라고. 심장이 쿵쾅거렸다. 한국의 작은 벤처기업 직원이 세계적인 투자회사인 골드만삭스 일본 부사장을 개인적으로 만나는 것이다. 조만간 일본 출장 스케줄을 잡아 연락을 드리겠다고 답장을 보낸 후 이 인연을 어떻게 어떤 식으로 발전시켜 나갈 것인가 고민을 시작했다. 몇 주후 일본 출장이 잡혀 사전 연락을 통해 골드만삭스 부사장과 미팅을 잡았다. 건물 앞에 도착하면서부터 그 웅장함에 뭔가 압도당하는 느낌이었고, 마중 나온 여비서를 따라 회의실로 향하는 내부 인테리어 또한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뭐랄까 미래시대에 온 듯한 착각이 들 정도였다. 한참을 안내받아 회의실로 들어갔는데, 회의실 또한 영화에서만 보던 최신식 시설을 갖추고 있었다. 잠시 후 부사장이 나타났다. 나와 일본법인의 이 과장은 정식으로 명함을 건네며 인사를 하고 착석하였다. 전시회에서 처음 만났을 때 노브레이크 제품 CD와 카탈로그를 드렸는데 보신 모양이다. 회사에 대해서 몇 가지 질문을 하고 제품에 대해서도 궁금한 점을 몇 가지 물어보신다. 그중에 인상에 남는 것은 CrazyWWWBoard가 PC버전만 존재를 하는데 휴대폰에서도 사용이 가능한지, 더 나아가 모바일 앱 형식으로 개발이 가능한지에 관한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업계 선두 주자들은 이미 그때부터 모바일 시대를 예견하고 있었으며 그에 맞추어 사업방향과 인맥을 형성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여러 이야기가 오간 후 부사장께서는 마지막으로 솔직한 말씀을 해주셨다. 우리를 초대한 가장 큰 이유는. 도전적인 젊음이 보기 좋아 응원을 하고 싶어서! 전시회에서 아무런 약속도 없이 무턱대고 다가와 회사와 제품을 홍보하는, 어찌 보면 앞만 보고 달려드는 젊은 황소의 느낌을 받으셨단다. 본인도 젊을 때 그럴 때가 있었고 가끔 그때가 그립다고. 그런 젊은 혈기를 응원해주는 것이 첫 번째 목적이고, 동경전력에 납품을 할 정도의 기술력은 인정되니 모바일 버전이 나오면 그때 다시 한번 만나자고 하신다. 이날의 미팅으로 사실 난 많은 것을 배웠다. 비즈니스가 커 나갈수록 지켜야 할 형식과 절차가 있다는 것과 향후 모바일 시대가 대세가 될 것이라는 예언자의 팁 등등. 무엇보다도 29살 나이에 일반 대기업이라면 아직 신입이라 꿈도 못 꾸는 좋은 경험을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큰 행운이 아닐 수 없다. Boys Be Ambitio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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