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우는 것 보다 어려운 비우는 삶
책장이 없는 좁은 책상의 책들이 자꾸만 쌓여만 갑니다. 오늘은 책들을 정리해 보겠다며 하나둘씩 끄집어내다가 눈에 띈 책 한 권. 분명 읽고 싶어서 산 책인데 이 책이 왜 여기서 나오지? 정리하다 말고 집어든 책 한 권. 발이 저려오는데도 움직이지 못하고 읽어 내려가고 있는 제 모습에 흠칫 놀랐습니다. 말로만 듣던 그러나 실천하지 못했던 미니멀리즘, 하지만 여태껏 들어왔던 미니멀리즘과는 조금 다른 느낌이었습니다.
그렇게 펼쳐 든 책을 읽다 말고 옷장 문을 열어보았습니다. 사계절 옷들이 뒤엉킨 빈틈없는 옷장 속 풍경은 미니멀라이프와는 아주 거리가 먼 모습입니다. 옷장 속은 꽉 차있지만 매일 출근할 때마다 뭐 입고 가지 고민하다가 아까운 시간들을 흘려보내기 일쑤였고 철이 바뀔 때마다 작년에 뭐 입었는지를 생각하게 됩니다. 옷장 문을 열었을 뿐인데 그간의 나의 행동들이 파노라마처럼 떠올랐습니다.
스티브 잡스처럼 마음에 드는 괜찮은 옷을 여러 개 사서 매일 입는 방법도 괜찮겠다 싶은 생각이 들더군요.
작은 꿈이 생겼습니다. 아니 꿈이 아니라 실천하고 싶은 것이라고 해야 맞을 것 같네요. 단출한 옷장을 만들어 보고 싶어 졌습니다. 옷장을 열었을 때 모든 옷이 옷걸이에 걸려있어서 한눈에 싹 들어오는 옷들, 뭘 입을까 고민하지 않아도 정갈하고 심플하게 걸려 있는 옷들을 아무거나 입어도 괜찮은 그런 옷장을 만들어 보고 싶습니다.
이번 여행을 마치고 나면 옷장 정리부터 해야겠습니다. 즐겨 입는 옷, 좋아하는 옷, 꼭 필요한 옷만 남기고 정리하기 그리고 그 옷들이 장롱 밖을 나갈 때까지 다시 채우지 않기. 너무 어려울 거란 생각이 들지만 꼭 해보고 싶은 버킷 리스트가 되어버렸습니다. 이 한 권의 책이 움직이지 않던 저를 움직이게 합니다.
지금도 여행 중이지만 호텔을 가게 되면 문을 열자마자 마음이 편해지고 아무것도 안 해도 된다는 해방감 같은 걸 누구나 한 번쯤은 느껴보셨을 거예요. 왜 집은 호텔방이 될 수 없는 걸까요? 아마도 호텔엔 불필요한 물건들이 없이 깨끗하고 정갈한 침구만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데요. 가득 찬 옷장과 냉장고 안, 여행 다녀올 때마다 사게 되는 작은 기념품들, 그리고 언젠가는 꼭 쓰게 될 것 같아 버리지 못하고 남겨둔 불필요한 물건들 이런 것 때문에 마음이 편해질 수 없습니다.
미니멀리스트를 간단히 정의하면 물건을 최소한으로 줄이는 사람이다. 그렇다면 얼마나 물건을 줄여야 미니멀리스트라고 할 수 있을까? 물론 구체적으로 기준을 정해도 그 기준에서 벗어나는 예가 있기 마련입니다. 그래도 정의를 내린다면 내가 생각하는 미니멀리스트는 이런 사람입니다.
자신에게 정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
소중한 것을 위해 줄이는 사람
미니멀리즘은 목적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그냥 심플하게 사는 삶 그 자체 인 듯합니다. 내가 생각하는 미니멀리스트는 자신에게 정말로 필요한 물건이 무엇인지 알고 있는 사람이며 남의 시선 때문에 물건을 갖고 싶어 하는 사람이 아니라 무엇이 소중한지를 알고 그 외의 물건을 과감히 줄일 줄 아는 사람입니다. 모든 것이 그렇듯 그래서 미니멀리즘에도 정답은 없습니다.
몇 개의 물건을 가지고 있어야 미니멀리즘인지. 100개? 1000개? 내가 가지고 있는 물건의 개수를 세다가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정말 많은 물건을 소유하고 있구나. 몇 년이 지나도 한 번도 꺼내보지도 않을 물건들을 참 많이도 가지고 있구나.
옷장 속의 옷들을 3분의 1쯤 정리하고 나니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버리는 것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버리기를 결심하기 까지가 어렵고 고민스러웠습니다. 버릴 옷과 입을 옷을 나누면서 언젠가는 입을 거라며 버리지 못한 옷들. 저자의 말처럼 그 언젠가는 영원히 오지 않습니다. 버리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버리고 다시 채우는 일은 반복하지 말아야 합니다. 버릴 수 있는 것도 기술입니다.
물건을 버리기 전과 최소한으로 줄이고 난 후의 삶은 어떻게 달라졌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