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마음 한 곳에 깊은 구덩이가 생긴 것처럼 한없이 슬퍼지는 순간들이 있다. 여느 때와 다름없는 퇴근길에서, 평범한 토요일 저녁 침대 위에서처럼 정말 아무런 이유 없이 갑자기 말이다. 요즘 들어 내가 그렇게 슬퍼질 때는, 약 15년 전의 유년시절이 떠오를 때다.
한 일주일 전쯤 운전을 하다 적신호에 걸려 신호를 대기하고 있었다. 횡단보도를 건너는 사람들을 보던 중 어떤 아이를 봤다. 대략 12살쯤으로 보이는 평범한 초등학생 여자아이. 방학에도 학원 다니느라 바쁘구나~하던 도중 불쑥 과거의 추억이 떠올랐다. 대부분의 맞벌이 가정 아이들이 그랬듯이, 나는 소위 '학원 뺑뻉이'를 돌았다. 엄마도 아빠도 집에 7시는 훌쩍 넘어야 들어오니 아이가 혼자 집에 있지 않게끔 보육시설 대신 학원을 여러 군데 보내는 풍습이다. 사실 그 시절에도 내가 자라고 지금도 살고 있는 동네에서는 그런 일이 당연했다. 그날은 신기하게도 아빠가 나를 학원까지 데리러 왔다. 아직은 아빠가 회사를 다니고 있던 때여서, 아빠는 검은색 정장을 입고 서류 가방을 들고 있었다. 신기했던 점은, 내가 혼자였다는 거다. 내 여동생은 나와 한 살 차이가 난다. 그래서 여동생과 나는 내가 초등학교를 졸업해서 부득이하게 생활 패턴이 달라지기 전까지는 항상 어느 곳이든 함께했다. 내가 학원을 옮기면, 동생도 옮겼다. 동생이 학원을 그만두면, 나도 그만뒀다. 그러니까 그날은 신기했다. 항상 동생과 함께 다녀야 하는 내가 아빠랑 단 둘이 집으로 돌아왔다. 어렸을 적 나는 사랑에 고팠는지 아니면 이기적이었는지 외동이 되기를 꿈꾸는 날들이 많았는데, 그날은 그 꿈이 실현된듯해 기분이 좋았다. 살짝은 쌀쌀한 밤공기에 아빠랑 나란히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마음을 들뜨게 해서 조잘조잘 학원에서 있었던 일을 얘기했다. 시험을 봤는데 speech랑 speak를 헷갈려서 하나 틀렸다고 아쉬웠다고 얘기했던 기억이 날 만큼 그날 나는 기분이 좋았다. '그래 그런 일이 있었지~'하고 떠올리던 나는 15년 전 그 쌀쌀하고 기분 좋던 밤에서 다시 운전대를 잡고 있는 현재로 돌아왔다. 시간 이동을 하듯이 순식간에. 그리고 불현듯 슬퍼졌다. 이제 60이 다 되어가는 아빠는 30이 코 앞인 딸을 마중 나올 일은 없을 거다. 마중을 나오더래도, 예전의 그 아이가 그랬듯 하루 일과를 조잘조잘 들떠서 떠들지는 못할 테다. 난 이젠 더 이상 연년생인 동생을 짐덩이처럼 끌고 다니는 맏언니가 아니어서, 외동이 된 기분에 설레지도 않을게다. 어떻게 해도, 그 예전으로 돌아갈 수는 없다.
또 며칠 전에는 양치를 하고 잘 준비를 하고 있었다. 전기장판 위에서 몸을 웅크리고 차가운 공기가 데워지길 기다리고 있었는데, 어두컴컴한 공기 속에서 또 갑작스레 슬퍼졌다. 어렸을 적 나는 할머니와 같은 방을 썼다. 나의 친할머니는 삼 남매 중에서도 내가 첫 손주여서 그런지 나를 특히나 아꼈다. 방이 세 개인 우리 집에 친할머니, 친할아버지가 오셔서 지내실 때면 나는 항상 할머니, 할아버지와 같은 방을 썼다. 10살 무렵에는 현관문 앞 작은 방을, 또 13살 무렵에는 안방 맞은편 방을. 할머니는 나를 강아지라고 불렀던 것 같다. 날씨가 조금은 후덥지근해지는 시기면 할머니는 내가 잠에 들 때까지 머리 맡을 부채질 하며 머리를 쓰다듬어 줬다. 통신사에서 나눠줬던 둥그렇고 큰 부채로 살랑살랑 머리맡에 바람을 일으켜줬다. 때로는 노래를 불러주기도, 때로는 이야기를 나누기도, 또 때로는 아무런 말 없이 어린 손녀를 지켜보았다. 손녀가 쌔근쌔근 잠에 들 때까지 할머니는 부채질을 해줬을 거다. 그래서 그 무렵 나의 여름밤엔 열대야가 오지 않았다.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내가 중학교에 입학하기 전 막내아들을 위해 먼 타국으로 이민길에 올랐다. 이제는 머리가 하얗게 세어버린 나의 조부모님은 명절 때에나 눈물 콧물 흘리며 영상 통화로나마 안부를 묻는 사이가 되었다. 그마저도 할아버지의 건강 악화 소식과, 작은 아버지에 대한 안 좋은 얘기가 들리며 언젠가부터는 명절에마저 연락이 닿지 않게 되었다. 그러니까, 그 시절의 따뜻하고도 시원했던 여름밤은 돌아오지 않을 테다.
왜 요즘 들어 그 시절, 내가 초등학교 3~4학년 시절이던 때의 일을 떠올리면 마음이 공허해지는지 모르겠다. 마흔몇에서 쉰몇이 되어버린 아버지 때문인지, 검은 머리에서 흰머리가 되어버린 할머니 때문인지. 아니면 아무것도 몰랐던 아이가 걱정이 하도 많아져 약까지 먹게 되었기 때문인지. 그리움인지 슬픔인지 아니면 둘 다인지. 시간이 이대로 멈추었으면 좋겠다. 돌아갈 수 없다면, 이대로라도 멈추었으면 좋겠다. 이 순간마저 그리워하지 않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