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발 그만 좀 하세요
요즘 나는 학교로 출근하지 않는다.
그럼 이직을 했느냐?
안타깝게도 이직을 꿈꾸기만 한다.
나는 최근에 병가를 쓰고 요양 중이다.
나에게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줄 알았다.
모순적이게도 언젠가 내 차례가 올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지금 당장은 아닐 것이라고 착각했다. 아주 오만한 착각이었다.
학기 초부터 그 일들은 시작되었다. 그 두 부모들은 어린 내가 만만해 보였는지 아니면 어린이집에서의 버릇을 못 버렸는지 그렇게나 나에게 요구하는 것들이 많았다. 이것을 교육해라, 저것을 교육해라. 왜 내 딸한테만 그렇게 행동했냐. 등등.
저기요, 이 반 담임은 저고요, 당신 딸만 미워할 만큼 제가 한가하지는 않아요. 미처 못했지만 대나무 숲에서 임금님 당나귀 귀 외치듯이 한번 말해본다.
자기보다 어리고 애도 안 키워본 아무것도 모르는 교사 나부랭이가 감히 자신의 명령을 듣지 않아서일까, 어디 감히 교사가 학부모를 하늘 보듯 떠받들지 않아서일까.
학기말이 될수록 그 두 엄마들의 요구사항은 더 커져만 갔다. 그래도 학기말이니까 참았다. 두 달만 더 보면 끝이니까.
어느 날 오전 교감 선생님의 개인 쪽지가 왔다.
'선생님, 수업 마치고 상담실에서 얘기 나눌 수 있을까요.'
내가 업무를 실수했나, 내년 반 편성 때문에 하실 말씀이 있나, 머리에 수십 개 물음표를 던지며 상담실에 들어갔다.
교감 선생님은 사실 확인을 먼저 하겠다며 여러 질문을 하셨다. 학부모에게서 익명으로 민원 전화가 들어왔다며. 뻔하지만 얼토당토않은 이야기들 뿐이었다. 나를 모르는 사람도 놀랄 만큼 어이없는 이야기들. 아마 본인도 부끄러운 줄 아니까 익명으로 전화한 게 아니었을까? 아마 본인은 익명이라고 생각했겠지. 학교 비상 연락망에 없는 번호로 전화를 했으니.
그런데 저기요, 세상에 그런 민원 넣을 사람은 놀랍게도 당신들밖에 없답니다.
별 일 아니라고 생각했다. 조금 화가 났을 뿐이었다. 그런데 내가 나를 잘 몰랐나, 나는 그날 이후로 매일 눈이 퉁퉁 부어 지냈다. 밤마다 몇 번씩 깼다. 하지도 않은 일로 민원을 받는 게 너무 억울했다. 그 부모들이 그렇게 학기 초부터 날 가만두지 않았는데도 난 그들의 딸들을 그렇게 아꼈는데. 왜 그들은 날 작정하고 괴롭히는지 너무나도 속상했다.
속상한 마음을 추스르던 어느 날 또 기상천외한 이야기를 들었다. 그들이 나에 대한 악의적인 소문을 퍼뜨리며 학부모들 사이에서 편을 만들고 있다더라. 소문의 내용은 일명 기분상해죄. 천한 교사 따위가 지대하신 학부모님의 기분을 상하게 만들었으니 이런 하늘마저 노할 짓을 보았나. 교사로서 나의 자격을 깎아내리기 위해 그들은 학교 밖에서도 다분한 노력을 하고 있었다.
점점 그 아이들의 눈치를 보게 됐다. 오늘은 어떤 거짓말이 생겨날까. 아니 혹시 이 일들이 다 나의 잘못은 아닐까. 내가 더 깍듯이 대접했어야 했나? 원래 교사란 그런 것이었나? 그들이 나를 홧김에 아동학대죄로 신고해 버리면 어떻게 하지. 아, 나는 내년에 다시 아이들과 즐겁게 학교 생활을 할 수 있으려나.
결국 나는 이 모든 것들을 이기지 못하고 도망치고 말았다. 이토록 나약하다니. 이상한 학부모들이네! 하고 훌훌 털어버리면 될 걸 몇 날며칠을 잠도 못 자고 울기만 하다니. 이런 정신 상태로 선생을 할 수 있겠어? 요즘같이 흉흉한 시대에.
병가에 들어간 지 오늘로 나흘이 되었다. 그 사건 이후부터 지금까지 증약은 두 번을 했다. 끊었던 수면제도 다시 처방전에 올랐다. 부모님께는 말씀을 못 드렸다. 혹시 이 직업을 추천한 자신을 원망하실까 봐.
잠시 도망치기는 했지만 3주 뒤 나는 다시 그 교실로 돌아가야 한다. 그 학부모들의 시뻘건 눈총을 다시 받아내야 한다. 그들에 대한 현재 나의 감정은 글쎄. 화라고 해야 할까 절박함이라고 해야 할까 억울함이라고 해야 할까.
얼마 전 방영된 pd수첩 전주 초등학교 편을 오늘에서야 봤다. 그동안은 내가 버티지 못할 것 같아 보지 않았는데, 하필 유튜브를 켜놓고 잠든 사이에 자동재생되고 말았다. 억울한지 화가 나는지 아니면 겁이 나는지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잔뜩 성이 난 얼굴로 주먹을 불끈 쥐고는 굵은 눈물방울을 주룩주룩 흘려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