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전문적이고 개인적인 견해
영화 음악 책 등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은 허세를 부려봐도 없는 사람이지만, 그래도 나름 애정은 있는 사람으로서 짤막한 글을 남겨보고자 한다.
탕웨이와 박해일 주연의 영화, 헤어질 결심. 사실 두 배우 모두 딱히 그렇게 관심이 있는 배우는 아니다. 탕웨이? 음 현빈? 박해일? 아 은교? 정도의 관심과 인식. 게다가 내가 좋아하는 장르의 영화도 아니다. 나는 클리셰로 범벅된 로맨스 코미디를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거든. 비현실적이고 유치한 사랑 이야기들. 그냥 사람들이 하도 극찬을 해대길래 봤다.
성질이 급해서인지 영화의 결말을 알고 보는 걸 좋아한다. 누군가는 끔찍하다고 생각할 만한 취향이다. 그래도 영화의 결말을 알고 감독이 어떻게 결말까지 스토리를 끌고 나갈지 유추해보는 시간들이 재밌다. 그러나, 이 영화는 결말을 모르는 채로 봤다. 박해일이 형사구나, 탕웨이는 용의자구나. 박해일이 탕웨이를 좋아하게 되는구나. 정도만 알고 관람했다. 당시 직장일이 좀 바쁘기도 했고, 이 영화에 대해 큰 기대가 없기도 했다. 올해 들어 내가 제일 잘한 선택이었다.
포스터가 대단히 독특하다는 생각을 했다. 포스터로만 보자면 절대 이 영화의 분위기를 추측할 수 없을 테다. 포스터만 보면 꼭 여주인공의 어장에 갇힌 남주인공이 좌충우돌 심경의 변화를 겪다 결국 클리셰의 법칙에 따라 여주인공과 진실된 사랑을 나누게 되는 로맨틱 코미디 같달까. 딱 내가 좋아하는 그런 이야기.
막상 영화를 다 본 후에 다시 살펴보니 포스터 여기저기에 영화의 장면들이 숨어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마치 이스터에그처럼. 아마 영화를 보지 않았다면 정중앙의 박해일은 누구를 또는 무엇을 그렇게 망부석처럼 기다리듯 찾는 건지, 우측의 여인은 인사를 하는 건지 열매를 따는 건지 아리송하게만 느껴졌을 것이다.
쓸데없는 말이 길었다. 사실 내 글이 대부분 쓸데없지만. 영화 얘기로 들어가 보자면, 거의 첫 장면부터 영화의 온도가 느껴진다. 어라, 웃긴데, 웃어도 되나..? 웃어도 되는 건가, 웃으면 안 되는 건가 고민하게 된다. 형사 둘이 티격태격하는 건 웃긴데, 아니 그래도 사람이 죽었는데 게다가 저렇게 사실적으로 담아내는데 내가 웃어도 되나? 내가 느끼기에 영화의 전반적인 분위기가 그랬다. 웃어도 되는 건지 웃으면 안 되는 건지 안개가 낀 듯 알쏭달쏭하다가 말미에 아주 큰 운석이 나를 쿵하고 덮친 것처럼 끝난다. 오래간만에 아주 충격적인 영화를 만났다. 충격적으로 좋은 영화.
영화의 개연성을 제일 중요하게 여기는 나로서는, 사실 이 영화가 그렇게까지 개연성이 뛰어나지는 않다. 왜 갑자기 해준은 서래를 사랑하게 되었는지, 또 서래는 왜 해준을 사랑하게 되었는지, 서래는 왜 그런 결혼을 선택했는지. 서래는 왜 그런 결말을 택했는지. 평소의 나라면, "갑자기 왜?"하고 놀라며 질색하는 표정을 지었을 테다. 그럼에도 헤어질 결심을 관람하며 모든 사건의 전개가 납득이 가고, 인물의 마음에 깊이 공감할 수 있었던 이유는 단연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와 섬세한 연출이다. 고급스러운 초밥 세트에서 핫도그 달랑 한 개로 변했을 때 그 찰나의 눈빛, 유리에 비친 취조받는 용의자의 얼굴을 잡는 카메라, 경찰차로 용의자를 연행하는 형사치고는 감정적인 온도의 표정 등이 그 간격을 모두 메워버린다. 마치 서래가 있는 구덩이의 모래들처럼. 언제라도 무엇이라도 틈이 있었느냐는 듯.
누군가가 이 영화는 무조건 세 번은 봐야 한다 그랬다. 어느 것에도 그 정도의 열정을 담는 사람은 아닌지라 미처 그러지는 못했더래도, 기회가 닿는다면 아무래도 또 보게 될 것 같다. 아니, 또 봐야 할 것 같다. 헤어질 결심이라는 영화를 영원한 미결로 남기고 싶지는 않을 테니까.
P.S. 헉! 하고 놀랬던 대사.
왜 그런 남자를 만났느냐고 책망하듯 묻는 해준의 말에, 서래가 답하기를.
"어떤 남자와 헤어질 결심을 하려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