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잠에 들 수 없었던 새벽녘, 요란한 휴대폰 안전안내문자 울림에 놀라 벌떡 일어났다. 밤새 많은 비가 올 거라는 소식은 예보를 통해 알았지만 막상 퍼붓는 빗소리에는 속수무책으로 불안이 밀려왔다. 북상하던 비는 경기북부와 수도권에 집중되어 밤새 쉼 없이 쏟아부었고 아침 뉴스는 시간당 100미리라는 어마 어마한 수치를 알려 주고 있었다. 서로의 안전을 걱정하는 문자들이 오고 가는 사이 잠시 소강상태를 보이기는 했으나 이미 이곳저곳에서 비 피해는 속출하고 있었다.
어른이 되어 맞이하는 비는 걱정:낭만으로 치자면 7:3 정도라고 해야 하나.. 무작정 내리는 비를 찰박찰박 뛰어다니며 해맑게 즐기기에는 피해의 무게가 결코 가볍지 않았다.
며칠 동안 내리던 비로 인해 우리 집과 경계였던 이웃의 돌벽이 무너져 내려 큰 돌들이 마당을 덮친 적도 있었는데 가족들 중 누구라도 다칠 수 있었던 피해였었다. 또 배수에 문제가 생기면서 마당 한켠으로 차오르는 빗물을 빼내려 퍼붓는 비를 맞으며 동분서주한 적도, 천장 여기저기서 떨어지는 빗물 때문에 집안 곳곳에 양동이를 놓아두기도 했던 적도 있었는데, 불과 1년 전의 일들이었다. 다행히 무너진 돌벽은 튼튼한 석축으로 다시 쌓았고, 빗물이 속절없이 차오르던 마당은 배수로를 다시 판 후 물이 잘 빠지도록 작은 돌들을 깔았으며, 지붕은 전문가를 불러 방수처리를 다시 해야만 했다. 차근차근 비피해 준비를 무리 없이 잘 해낸 것 같지만, 예정에 없던 많은 지출에 휘청거렸으며, 인건비라도 줄이기 위해 부부는 비피해 준비를 위한 강도 높은 노동을 했다. 그러니 비가 그리 달갑지만은 않을 터였다.
하지만, 비에도 지지 않고 해맑았던 어린 시절도 있었다. 시골집 옆으로는 폭이 50미터가 좀 안 되는 너른 개울이 있다. 평상시에는 한없이 평화로운 물놀이 장소였지만 장마철이나 태풍의 시기, 마을 어른들은 잠을 이루지 못하며 불침번을 서야 했다. 둑이 넘치거나 터지면 집들이 물에 잠기기 때문이다. 아저씨 아주머니들은 모두 한 마음이 되어 둑에 모래를 넣은 포대를 켜켜이 쌓아가며 불어난 물이 넘어오지 않기를 바랐다.
평상시 개울물은 무릎정도면 충분했지만 큰 비가 내릴 때면 그 깊이는 가늠이 어려웠고 온갖 것들을 집어삼키려는 빠른 유속의 검붉은 흙탕물은 공포일 수밖에 없었다. 그 모습을 대하는 어른들의 깊은 한숨과는 달리 어린 우리들은 넋을 놓고 바라보게 하는 신비한 구경거리였다. 넘실거리는 급류 위로 떠내려 오는 윗동네의 물건들이 무엇인지 서로 알아맞히기도 하면서 건져내고 싶다는 생각도 했으며, 둑방 가까이 가지 못하게 하시는데도 기어코 구경하겠다고 나가 있기도 했다. 심지어 윗마을에서 소가 떠내려 왔다는 소리를 듣고도 그 광경을 이야기로만 들어서 몹시 아쉬워했으니 말문이 막힐 정도로 철이 없던 시절이었다.
어느 해는 개울건너마을과 연결된 다리가 끊어졌었다. 다리를 건너야만 학교를 갈 수 있었는데, 며칠을 퍼붓던 비에 개울물이 무섭게 불어났고 빠른 물살을 이기지 못한 다리는 두 동강이 나고 말았다. 둑방에 서서 끊어진 다리를 바라보며 어떤 마음이었을까.. 괴물이 되어 버린 개울물 때문에 우리 집이 잠길까 두려워하면서도 학교를 못 가게 된 것을 내심 좋아했었다고 이제야 슬그머니 터놓는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정말 아찔한 순간들이었다.
휴대폰으로 계속 안전안내문자가 오고 있다.
‘호우 주의보 발령, 하천 주변 산책로, 계곡, 급경사지, 농수로등 위험 지역에는 가지 마시고, 하천 범람에 주의하세요! 대피 경고를 받으면 즉시 대피 하세요’
뉴스는 어느 곳은 도로가 잠겨 통행이 불가능하고, 어느 지역의 아파트 지하주차장은 침수되었으며, 조난당한 분들을 구조했다는 기사를 연신 내보내고 있다. 매번 경신하는 기록적인 폭우로 인해 비피해가 없기를 바란다는 말이 한없이 가벼울 정도로 피해의 무게가 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 곳이든 큰 피해가 없기를 간절히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