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거 왜 이래? ....꽃이 ... 아니, 이걸 잘랐어? 언제? " 내 눈을 믿을 수가 없었다. 꽃은 이미 꺾여서 풀숲에 버려져 있었다. 간절히 기다리던 흰민들레꽃임을 알 텐데 그 짧은 찰나에 댕강 잘라버리다니..
이웃 어르신의 텃밭에는 매년 봄마다 흰민들레꽃이 피었다. 안팎으로 노란 민들레만 지천인 우리 집과는 달리 순수 토종인 하얀 민들레꽃들의 맑은 자태는 그저 부러울 뿐이었다. 한뿌리라도 얻고 싶은 마음과는 달리 어려운 어르신이었기에 오며 가며 바라보기만 했다.
우리 집으로 민들레씨가 날아와 뿌리를 내릴 까 하는 마음으로 하얗게 핀 민들레꽃을 보며 손을 모으기도 했다. 노란 민들레와는 달리 흔히 만나기도 힘들거니와 내게 필요한 약효도 가지고 있다고 하니, 그 귀함을 더 소망했다. 하지만 집마다 골을 타고 수시로 넘나드는 바람은 우리 집 마당만 피해 가는지 나의 소망을 들어주지 않았다. 그렇게 이사 후 맞이 한 세 번째 봄, 운수 좋은 날이었다.
드디어 흰민들레꽃이 피었다. 허리를 숙여 몇 번을 확인한 후 남편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려고 집으로 들어가려는데 지난밤 비바람에 쓰러 진 붓꽃들이 보였다. 여기저기 누워 있는 붓꽃을 세우기 위해 남편을 밖으로 불러냈다. 그러는 동안 흰 민들레꽃이 피었다는 얘기를 전하는 것은 까맣게 잊은 채 밖으로 나온 남편과 함께 쓰러진 붓꽃들을 살피는데 여념이 없었고 얼추 일을 마무리할 즈음에야 흰민들레꽃의 존재가 떠올랐던 것이다.
깊은 탄식이 연신 세워 나오는 나를 보며
"그럼 빨리 얘기를 했어야지....... 붓꽃 세우면서 주변 풀들 정리하다가... 괜찮아 또 필 거 야..."
심통 맞은 한숨은 눈치 없는 봄햇살에 실려 묵직하게 내려앉았다.
"꽃이 피기를 얼마나 기다렸는데, 이제 겨우 우리 집에 피었는데...."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던지는 남편의 위로는 얄미웠지만 모르고 한 일을 더는 뭐라고 할 수 없었다. 금세 말라가는 꽃이 안타까워 얼른 꽃병에 꽂았다.
귀해서 더 간절한 마음이었을까. 천지에 귀하지 않은 꽃들은 없을 테지만 유독흰민들레를 기다리는 마음이 곡진하다. 팔월한낮, 봄을 마중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