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말 잘 듣던 딸이었다>
나는 애견센터에서 근무하며 곧 3년 차가 돼 가는 반려견 훈련사다.
그 이전에는 회계학과를 전공하는 대학생이었고, 그 중간엔 공무원 수험생이기도 했고 유학생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전에는 동물을 사랑하던 초등학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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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엄마가 인정하실리는 없겠지만, 난 말 잘 듣던 딸이었다. 듣기는 잘했다. 원하시는 대로 해낸 적은 다만 없었을 뿐. 그게 항상 죄송했다.
대학을 정할 때 나름의 선택지가 있었다. 엄마와 담임선생님이 제시해 준 선택지로는 지방대 치위생학과와 인서울 여대의 회계학과가 있었다. 그래 공부를 썩 잘하진 않았다. 다니시라던 학원이나 독서실은 꼬박 다녔다만.
넌 수학은 그래도 좋아하지 않았니?
그 말에 응 그래. 회계학과로 가자.
그렇게 나름의 선택을 하게 되었다.
(나중에 알았지만 회계학과 수학은 아무런 관련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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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계는 이해되는 듯하다가도 뒤통수를 떼리는 싹퉁바가지 없는 과목이었다. 뭐 그냥 나랑 안 맞았다. 소심한 성격에 동기들과 잘 어울리지도 못했다.
그때도 나름의 선택을 했다. 사회성이 부족한 점이 더 괴로웠던 탓에 공부에 더 몰두하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첫 2학기엔 성적을 꽤 올렸었다. 철저하게 노력파였고 일주일 동안의 수면시간은 5시간 남짓이었다. 몸과 마음이 야위어갔다.
네가 그래도 영어는 좀 하지 않니?
2학기가 끝나갈 때쯤 이모가 달콤한 제안을 하셨다. 캐나다로 가서 공부해 볼 기회를 주신 것이다. 바로 휴학 신청을 하고 학생비자를 받아 어학연수를 갔다. 당시 나는 떠나고 싶었다. 무엇으로부터 도망치는지는 알지 못 한 채 그저 기뻤다.
다행히 생각보다 많은 것을 그곳에서 얻었다. 다양한 삶을 만났고 새로운 이야기들이 있었다. 다양한 사람들을 상대하는 법을 배웠다. 스스로 문제를 해결해야만 했고, 그러면서 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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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반 정도의 캐나다 생활을 마치고 돌아왔다. 아팠던 만큼 성장해 나는 꽤 밝아졌다. 동기들에게 먼저 다가가기도 했고 의욕이 돌아 공부도 더 잘 됐다.
공부에 자신감이 붙고 나니 새로운 목표가 생겼다. 세무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겠다고 집에 통보하고 학원 등록까지 순식간에 마쳤다.
이후 약 1년간의 모든 순간을 수험생으로 살았다.
시험 한 달 전부터 책상에 10분 이상 앉아있으면 식음땀이 나고 호흡곤란이 왔다.
이 주 전부터 음식을 삼키는 것이 힘들어 씹다가 모두 화장실에서 뱉었다.
그리고 시험 당일, 마지막 과목을 풀기 시작하려는데 공황이 왔다.
시험을 마치고 정신과 병원을 찾았고, 번아웃이 지속되어 생긴 우울증이라고 진단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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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심으로 나는 거기서 내 인생은 끝날 줄 알았다. 어쭙잖은 내가 감히 조언을 하자면, 아프면 병원 가자. 고집부리지 말고.
항우울제 잘 복용하고 상담받으며 내 인생은 그런대로 흘러갔다. 치료받으며 깨달았다.
나는 책임으로부터 도망치고 싶었다. 그리고 책임감을 배워서 다시 왔다. 처음으로 스스로 택한 길이었기에 책임감이 무거웠다.
그래 그랬을 뿐이다. 조금은 나를 이해하고 보듬어주었다.
세상에는 다양한 삶이 있다는 것을 기억해 냈다. 다시 도전할 에너지를 되찾고 나선 책을 많이 읽었다. 나의 관심사는 ‘나’였다. 무엇을 좋아하고 잘하는지. 어떤 것에 민감한지. 나의 기분과 생각을 관찰하며 시간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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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가 사소한 것에서 힌트를 얻게 되었다. 유튜브 알고리즘에 강아지 영상이 많이 추천된다는 점을 주목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냥 귀여운 강아지의 영상이 아니라, 강아지의 어떤 행동의 이유라던가 문제행동에 대한 올바른 대처방법 등에 관한 영상이 뜬다는 것이었다.
강아지를 키우지 않는데도 평소 유명한 훈련사의 영상을 꼬박 챙겨보았다. 어릴 때부터 그랬다. 초등학생인 나는 애니메이션보다 ‘세상에 나쁜 개는 없다’라는 TV프로그램을 더 집중해서 봤다.
이게 그렇게 재밌어?
응. 멋있어.
저 훈련사는 항상 다른 것을 볼 줄 알아.
그리고 말이 통하지 않는 강아지를 이해하고 같이 소통해. 그러고 나면 보호자가 달라져.
그게 재밌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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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고 살았다. 나는 무엇을 재밌어했는지. 다른 시각, 틀을 깨는 생각 같은 걸 좋아했다. 지금까지 좋아하고 있다.
바로 행동에 옮겼다. 유명 훈련사의 저서를 찾아 읽었다. 자격증을 딸 수 있는 돈을 모으고 훈련소를 찾아봤다. 강아지 놀이방 아르바이트가 있다는 것을 알고 바로 이력서를 넣었다.
신기하게도 유학을 갈 때처럼 도망치는 기분이 들지 않았다. 공무원을 준비할 때처럼 책임감에 눌리지도 않았다.
준비하는 과정은 상쾌하고 재미있었다. 작은 것에 성취감을 느끼며 하나씩 이루어 가는 내 모습을 칭찬했다.
아르바이트에 이어 더 큰 애견센터로 이직을 하며 내 월급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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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아르바이트를 제외하고 3곳의 애견센터에서 근무를 했고, 현재 4번째 애견유치원에서 선생님으로 근무하는 중이다.
누군가에게만 의존하며 스스로 살지 못했던 나는 이제 내가 좋아하는 일을 찾아 커리어를 쌓고 있다.
그렇다고 행복하기만 했을까. 일에 지치고 회의감이 드는 날도 있다. 일 말고도 무언가가 더 필요하다 느꼈고, 그래서 글을 쓰기로 했다.
많은 보호자님들을 상담하고 다양한 수업을 진행한다. 그러면서 겪는 내 경험들을 공유하고 싶다.
또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애견유치원에 대한 정보와 강아지에 대한 지식을 알려 도움을 주고자 한다.
보호자와 강아지를 변화시킨 그때 그 훈련사님처럼.
초등학생인 그때 그 내가 멋있다고 하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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