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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 Kim Apr 09. 2021

시선을 바꾸니 보이는 것들

관찰을 하고 애정을 갖게 된 순간 특별한 존재로 바뀌게되는

벚나무 한 그루가 눈에 들어온 날


작업실 스튜디오 옆에 벚나무  그루가 피었다. 높이는 2m 될까? 복도로 나오면 마주하는 통유리창으로 벚나무 가지들이 보였다. 어둠 속에서 조명을 받은 꽃잎들을 보다가 자연스럽게 창가 앞에 놓여있는 소파에 았다.


의자 등받이에 팔을 괴고 비스듬하게 앉았다. 조금은 나름한 눈빛으로 두꺼운 유리창 너머의 벚나무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정문 쪽에 심어놓은 억새풀과 고요한 성수동의 밤거리까지 시야에 혔다. 창가 아래로 시선을 내리자 창틀과 1 바닥에 떨어져있는 꽃잎들이 보였다. 나는 요즘 이런 것들에 시선을 뺏긴다. 바빴다면 그냥 넘어갔을 모든 것들에. 오늘 분량은  썼고, 사람들은 모두 돌아간  11. 창문에 이마를 맞대고, 벚나무를 관찰하기 시작했다.


벚나무는 어린  같았다. 아직  컸는지 벚꽃 잎들은 듬성듬성 피었다. 꽃보다 잎사귀들이  많은  같았다. 줄기와 밑둥도 얄상했다. 동네 공원에 있는 벚나무들은 전부 허리가 굵었는데. 키도 얼마나 큰지 목을  빼고 올려다봐도 꽃잎은 항상  곳에 있었다. 그래서인지 작업실에  벚나무가 조금  귀여웠던  같다. 뭐야, 이렇게 작고 날렵한 모습으로 여기 서있었어? 기특하네.


문득 내가 벚나무를 올려다보는게 아니라
정면으로 마주하고 있음을 알았다.


벚꽃잎은 스튜디오 창가 3층에 설치한 초록색 조명을 받았다. 조명을 받으니 꽃잎이  예뻐보였다.  따뜻한 날이었는데 창밖의 벚나무 가지들이 계속 흔들렸다. 자연풍 때문인지,  공장 에어컨에서 나오는 바람 때문인지는   없었다. 그저 내가   있었던 것은, 내 눈에 보이는 것들. 인조처럼 너무 선명한 초록색 잎사귀, 바람이  때마다 빠르게 떨리던 작은 가지들, 아래쪽으로 향해 터져있는 꽃잎들, 아직 열리지 않은 분홍색 봉오리, 하늘로 올라간 가지들. 나는  앞의 벚나무의 모든 것을 찬찬히 하나씩 바라보았다.


그러다 문득, 아래쪽으로 향한 꽃잎들에 시선이 멈췄다. 무언가 어색했다. 원래 벚꽃이 아래를 향해 벌려져있나?  기억속의 벚꽃은 , 머리 위에서 활짝 펴있었는데. 꽃잎 안에 그라데이션으로 피어난 진한 자주색까지 전부 봤던  같은데.


 올려다보던 벚나무를 정면에서 바라보던  순간임을 깨달았다.


관찰을 하고 애정을 갖게 된 순간부터 특별해진 존재


 벚나무 아래에서 고개를 들고 올려다봤기 때문에, 벚꽃이 활짝 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벚꽃은, 터지는 거였다. 아래쪽이 터져서 주머니처럼 열렸다.  시선이 벚꽃보다  위로 가니까   있었다. , 벚꽃은 터지는 거구나. 팝콘처럼 터지는 거구나. 그게 그냥 너무 좋은거다. 이렇게 초록색 잎사귀를 가진 나무가 언제부터 여기 있었지? 이렇게 가느다란 몸통에서 뻗어나온 얇은 줄기들을 가진 나무  그루가 언제부터 여기 있었지? 물론 내가 오기 전부터 있었다. 다만 내가 벚나무의 존재와 인지한  지금이었을 뿐이다. 4개월 넘게 작업실을 다녔지만, 스튜디오를 지나다닐 때도 나의 시선이 향한 곳은 아마,  키를 벗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시야가 바뀌니 많은 게 달라졌다. 창문 하나를 두고 벚나무를 가까이서 본 적도 처음이었고, 위에서 내려다 본 적도 처음이었다. 그러나 그게 전부인 걸까? 벚나무 한 그루에서 나는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릴 수 있었다. 그러나 그 날은 달랐다. 창문에 닿아있는 벚나무에서 시선을 뗄 수 없었다. 단지 시선에 걸렸다는 이유가 아니라 벚나무가 궁금해져서 자세히 바라보고, 살펴보게 되자 많은 게 바뀌었다. 그냥 스쳐지나갈 수 있는 존재였지만, 호기심과 관심을 가지고 애정을 준 순간부터 새로움이 보이고 갑자기 특별해진 것이다.  


갑자기 눈앞의 벚나무가 너무 사랑스러워졌다. 그냥 바람에 떨릴대도 떨리고, 시간이 되서 꽃을 터트렸겠지만 벚나무에 애정이 가고 마음이 갔다. 그냥 너무 기특하고, 좋고, 되게 잘 자란 것 같고...마음이 벅차고 기뻤다. 새로운 시선으로 나무 한 그루를 바라보았을 뿐인데 이렇게 행복해도 되나? 할 정도로. 자기의 속도대로 살아가던 벚나무가 세상 하나뿐인 특별한 존재가 됐다.


 , 집에 가는 길에 수많은 벚나무들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고개를 들고 만개한 꽃잎을 바라보았다. 줄기가 무거울 정도로 아주 활짝 피었다. 당연히 나는 오늘 내가 마음을  스튜디오  벚나무가 생각났다. 그리고  벚나무가, 아직 꽃이  피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았다. 느리네, 느려. 게으른 벚꽃. 나는 작업실  벚나무에 별명을 붙였다. 게으른 벚꽃. 게으르다구, 알고 있어? 근데 기분이 좋은게, 이렇게 '게으른 벚꽃' 하고 나무를 떠올렸을 뿐인데, 내일은 얼마나  꽃이 폈을까, 비는  맞았을까, 잎사귀는 아직 청록색일까, 궁금해서 빨리  벚나무가 보고싶은 것이다. 게으른 벚꽃  그루가 참으로 느리게도 내게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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