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Bo Kim Nov 01. 2020

좋은 어른이 되겠다는 다짐

‘선’을 말해주는 좋은 어른이 이 사회는 더 많이 필요하다.

10월이 되면, 이제는 세상에 없는 누군가가 생각난다. 한 번도 만나본 적 없지만, TV나 인터넷만 키면 늘 볼 수 있었던 사람. 그 사람이 우리를 영원히 떠나기로 결심했을 때, 나는 치앙마이에 있었다.




그날은 오전부터 일이 있어서 시내에 나갔다. 아침부터 비가 오더니 오후에는 도로가 침수됐다. 이게 치앙마이의 우기지. 몇 시간 지나면 물은 다 빠질터였다. 비가 와서 그런지, 몸이 으슬으슬했다. 근처 카페에 들어가서 핫초코를 시켰다. 갓 나온 핫초코를 후후-불며, 휴대폰으로 포털사이트 어플을 켰다. 지금 한국은 무슨 일이 있으려나, 습관적인 일상이었다. 그 날도 평소처럼 1분간 포털사이트를 훑어보고, 바로 나올 수 있었다면 좋았을텐데. 점점 나른해지는 몸으로, 창가에 앉아 비오는 치앙마이나 구경할 수 있었다면 좋았을텐데. 


실시간 검색어에 뜨는 익숙한 이름과 그 뒤에 따라붙는 사망이라는 단어가 너무 이질적이었다. 뜨거운 핫초코를 손에 쥐고도, 순식간에 온 몸에 소름이 돋았다. 10월이 반이나 지났지만 밤에 잘 때도 에어컨을 틀어놓았는데, 급격하게 몸이 차가워졌다. 떨리는 손끝으로 계속해서 인터넷 뉴스를 확인했다. 설마, 설마. 핫초코는 원래의 온도를 잃었다. 손발이 시리고 몸이 떨렸으며 속이 메스꺼워졌다.      


나도 그 사회의 일부며, 방관자였다는 사실에 절망스러웠다.


그날 밤엔 불을 다 켜놓고도 아침에 잠들었다. 갑자기 너무 무서워졌다. 이 사회는 도대체, 어떤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기에 보호하고 아껴주어야 하는 젊은 청춘을 죽음으로 밀어붙였나.


인간을 도구화하는 것이 당연한 자본주의 사회 속에서 미디어가 개인, 특히 어린 여성을 소비하고 전시하는 방식이 얼마나 잔인하고 무책임한 지. 삶의 다양성을 인정하려 하지 않고, 자신과 다른 삶의 모습은 배척하는 끔찍한 결과가 무엇인지. 인간성을 상실하고 자정작용이 고장 난 사회의 모습을 직면하자 너무나 무섭고 절망스러웠다. 더욱 절망스러웠던 점은, 결국 나도 그 사회의 구성원이며 결국 방관자였다는 사실이었다. 젊고 보호받아야 하는 어린 사람을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쉽게 잠에 들 수 없었다.   


눈을 뜨면 고통이 사라져 있길 바랬던 건 아니었을까.


밤새 침대서 뒤척이다가 어떤 짧은 영상을 보았다. 고인이 된 그녀가 너무 환하게 웃으며 취재진들에게 인사하고 입국장 안으로 들어가다가, 다시 뒤돌아서 사람들을 향해 인사하는 짧은 영상. 그게 꼭, 남은 사람들에게 건네는 마지막 인사 같아서 울어버렸다.


다시 돌아보는 게 혹시 마지막 미련은 아닐까 싶어서. 삶을 마무리하려는 순간에도 혹시 이 시도가 실패하기를 바라지는 않았을까. 그냥 이 순간이 끝나길, 눈을 뜨면 고통이 사라져 있길 바랬던 건 아니었을까. 진짜 죽고 싶은 사람이 얼마나 되겠어, 가끔 절망 속에서 더 이상 앞날이 보이지 않을 때, 제발 눈 떴으면 이 괴로운 순간이 끝나길 바라는 거 아니야? 

 

 ‘선’을 말해주는 좋은 어른이 이 사회는 더 많이 필요하다.     


방관자에서 벗어날 수 없어 괴로워하다가, 되돌릴 수 없다면 반복하지 말아야 함을 깨달았다. 더 이상 가능성 많은 젊은 사람들을 잃고 싶지 않다. 나는 더는 어리지 않고, 이제 누군가를 지켜줄 수 있는 나이로 성장했다. 지금껏 받은 응원과 지지들을 나보다 더 어린 사람들에게 돌려주어야 한다. 젊고 어린 사람들을 잃을 수 없기에, 좋은 어른이 되어야 한다고 다짐했다. 


좋은 어른이 되고 싶다. 스스로가 자기 자신으로 살 수 있도록, 타인을 재단하고 정의하지 말고 그냥 있는 모습 그대로를 바라봐주는 좋은 어른이. 인간은 얄팍하고 단편적인 존재가 아니니까. 복잡하고 다방면으로 사고하며, 그 가능성이 어디까지인지 예측하기 힘들다. 삶의 모습은 100% 일치할 수 없고, 각자의 삶이 있다. 누군가를 자신의 사고방식대로 재단하고 끼워 맞춘다면, 갈등이 발생하고 가능성을 잃고 만다. 내가 언제나 정답이 될 수 없음을 인지하고, 누군가의 말에 귀 기울여줄 필요가 있다. 나와 다른 누군가도 존재한다는 사실을 부정하지 말고, 나와 다른 습관이나 삶의 태도를 비난하지 말아야한다. 그것이 다름에서 오는 다양성이고, 그 다양함이 풍부해질 때 사회 구성원들이 다채롭게 성장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개인이 접할 수 있는 경험의 폭이 넓어지고, 스스로의 세계는 확장되는 것이다. 


 되돌릴 수 없다면, 반복하지 말아야 한다. 좋은 어른이 되기 위해서는 나부터 선을 확신하고, 희망을 발견해야 한다.앞으로도 좌절할 일들이 많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을 발견해야 한다. 세상은 살아가기 힘들고, 때로는 괴롭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능성이 많고 아름다운 곳이라고 말할 수 있는 좋은 어른이 되고 싶다. 지지와 응원을 지속적으로 표현하고, 안전한 울타리가 되어주는 어른으로.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살아도 된다는, 자신의 모습으로 삶을 살아가도 안전하다고 말하는 좋은 어른으로. ‘선’을 말해주는 좋은 어른이 이 사회는 더 많이 필요하다.



작가의 이전글 초콜릿 한 움큼의 행복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