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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 Kim Oct 24. 2021

일상과 창작, 이중성 혹은 다중인격

'창작하는 자아'와 '일상을 살아가는 나'의 혼란과 분리, 그리고 성장

글을 쓸 때면 매일 바뀌는 기분 때문에 조울증을 의심하고, 평소와는 다른 모습 때문에 한때 자아분열에 대해 고민했다. 감정에 휘말리고, 엄청난 감정적 소모과 기복을 겪으며,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것이 비효율적이라고 느껴졌다. 제일 이해되지 않는 건 힘들다는 걸 알면서도 그렇게 살아가는 나 자신이었다.


포기하는 게 제일 쉬운데, 포기가 안 됐다. 창작하는 자아가 나를 극으로 몰아붙이는 것이 가학적으로 느껴지면서, 그 감각에서 새로운 사실을 발견할 때 희열감을 느꼈다.


일상의 나는 대부분의 것을 무던히 넘기고, 기복이 거의 없으며, 안정적이고 가능성에 관대하며 스트레스를 거의 받지 않는다. 창작하는 자아는 정 반대다. 예민하고, 집요하며, 기복이 굉장히 심하고, 가끔 괴팍하며 스트레스를 몰고 오며, 높은 확률로 폭주한다.




 처음 싹을 틔운 창작하는 자아는 아주 작았다. 일상의 모습에 언제든 파묻힐 크기였다. 그러나 창작하는 자아는, 극도의 슬럼프와 불안감을 연료삼아 쑥쑥 성장했다. 내게는 최악이었던 순간들에서 빠져나오면, 창작하는 자아는 이전과는 다르게 무럭무럭 자랐다. 일상이라는 온실안에 있던 창작하는 자아는 어느새 일상을 덮어버리는 온실 자체가 되어버렸다. 일상이 잠식된다는 느낌은 공포스러웠다.


자기가 알지 못하던 모습을 직면하면, 두렵다. 내가 모르는 새로운 상태의 나는 어디로 튈 지 모르니, 사실상 공포 그 자체다. 창작하는 자아는 분명 나였지만, 동시에 낯선 존재였다. 예민하고, 집요했으며, 바닥이 어디인 지 알 수 없는 감정의 근원을 향해 나를 무지막지하게 끌고갔다. 물론 그 뒤를 책임지지는 않았다.


극으로 치닫는 감정적 소모와 정신적 충격 속에서 겨우 살아나오면, 일상의 나는 넝마가 됐고 글은 어느정도 완성됐다. 이 과정과 상황을 명료하게 확인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어서 답답했다. 분명 내가 맞는데, 동시에 내가 아닌 낯선 존재에게 나를 전부 내어주고, 휘둘리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결국엔 이중인격에 대해 생각했다. 아무래도 내가, 정신분열 오고야 만 거라고.



정신분열은 누구나 겪을 수 있는 흔한 일이다. 그러나 막상 내가 당사자가 됐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딱히 좋지는 않았다. 지킬 앤 하이드, 아이덴티티, 찰리와 숨바꼭질 등 이중인격과 관련된 영화들과 결말이 떠올라서 괴로웠다. 부모님께는 뭐라고 말씀드려야 하는지, 친구들에겐 뭐라고 말해야 할지 고민하다보면 가슴이 답답해졌다.


당시 작가들이 쓴 글쓰기 관련 에세이를 미친 듯이 찾아 읽었다. 분명 누군가는 내가 지금 겪는 감정에 대해 이미 써놨을 것 같았다. 다행히 많은 작가들이 이중성과 이중인격에 대해 이야기했다. 마가렛 애트우드가 쓴 <글쓰기에 대하여>의 이중성 챕터를 읽으며 심하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맞아, 내가 이래. 도러시아 브랜디의 <작가수업>에서는 이중성이야 말로 작가의 능력이자 천재의 특징이라 말했다(설마 내가 천재?).


사실 습작 초기부터 이중성에 대한 이야기를 수없이 많이 들었지만 그 때는 창작하는 자아는 무시할 만큼 작아서 와닿지 않았다. 창작하는 자아가 성장하고 낯선 모습에 불안함을 느끼는 시기가 오고 나서야 궁금해졌다. 지금 내가 제대로 살아가고 있는건지, 뭐가 잘못된 건 아닌지. 오래 전부터 글을 써온 사람들이 자신의 창작을 하면서 느꼈던 불안함이나 희열에 대해 기록으로 남겨주었기에 후대를 살아가는 나는 굉장한 위안을 받았다. 나만 이런게 아니라는 공감대 형성이 너무나도 필요했다.


더 이상 나는 자아분열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다. 그냥 이중성이 뚜렷한 두 개의 자아를 가진 사람으로 성장했다. 이게 전부다. 처음이야 낯설었지, 창작하는 자아는 이제는 익숙한 존재가 됐다. 아마 내가 엄청나게 노력한다면, 내가 원할 때만 나오게 할 수 있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처음 직면하는 모습들에 나는 계속해서 낯선 모습에 대해 불안함과 공포심을 느낀다. 그러니 일상과 창작의 균형을 잡을 수 있는 많은 장치들을 만들고, 훈련해야 한다. 창작하는 삶을 유지하면서도, 일상이 완전히 잠식당하지 않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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