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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 Kim Oct 24. 2021

주의: 접싯물에 코를 박을 땐 후드티를 입으세요

빳빳했던 후드티가 넝마가 되더라도


살다보면 그냥 지나쳐도 되는 일에 인생 전체가 흔들린다. 분명 남의 일이었다면 "정신차려"라고 말할 법한 그런 일들이럴 때 나는 마음 속 찬장을 열고 접싯잔을 꺼낸다. 그곳에 10ml가량의 물을 붓고는, 심호흡을 한 뒤 코를 박는다. 마음 속 찬장을 연 순간 나는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새드스토리의 비련의 주인공이다. 스스로 접싯물에 코를 박은게 아니라, 이 세상이 나를 절벽으로 밀어넣었다며 울부짖는다.  


자기 일에는 객관화가 어렵다. 사소한 감정도 기대감이라는 이유로 흔들리고, 인생이 휘말린다특히나 오랜 시간 집중한 것을, 매 순간을 외부의 시선으로 바라보기 거의 불가능하다. 많은 시간과 애정을 쏟은 만큼, 감정적으로 깊게 연결 된다. 분리가 힘들어서 이제 그게 곧 나 같다.


그것에 대한 거절이 거절하는 것 같고, 그것에 대한 비난이 를 비난하는거라 착각하기도 한다. 그러다보면 사소한 것에도 굉장히 감정적으로 반응하는 사람이 돼있다. 매 초 롤러코스터에서 떨어진다는 기분을 느낄 때. 겸허한 마음으로 접싯잔에 물을 따른다. 눈대중으로 하며 접싯물의 깊이를 가늠한다. 지금 내가 느끼는 감정은, 상대방이 어떻게 생각하든 나한테는 진실이다. 그러나 가끔 '나한테만' 진실인 왜곡된 상황이 연출되기에, 대응책이 필요하다.




나는 접싯물로 코를 박기 , 후드티를 꺼내 입는다. 등에  문장을 커다랗게 박아놓은 후드티다.


'이 후드티를 입고 있다면 저는 접싯물에 코를 박고 있는 중이니, 발견 즉시 누구라도 낚아채 주세요.'

 

'접싯물에 코박기 전용' 후드티는 외부와의 연결이다. 지금  상태가 딱히  좋은  같은데, 내가   아닌 일에 완전히 몰두하려는  같은데, 이게 맞는   봐달라는 SOS. 접싯물에 코를 박으러 들어가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이야기한다. 나의 상황을 말하고, 의견을 구한다. 나의 진실을 보거나 들었던 사람이라면,  내가 입은 후드티를 끌어당길 정도의 힘은 있다.


 후부터는 나의 몫이다후드티가 당겨져서 접싯물에서 얼굴을 들면, 나는 숨을 깊게 몰아쉰다. 얼굴에 물이 흥건한 채로, 숨을 헉헉 대며, 묻는다.

"대체 나한테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엉망이 되고 어지럽혀진 주변을 둘러보면서  묻는다.

"누가 이런거야?"


정신이 들고 그게 나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 부끄러워하면서도  정리를 해야 한다. 부끄러움과 수습은 다른 일이다내가 책임져야하는 건 분명하다. 남의 일에는 무심하지만 내 일에는 흔들리는 수많은 날들. 이렇게 흔들리는 순간들에도 나는 살아가고, 이 인생은 내것이 된다.  


나는  그랬든 다시 또 접싯물에 코를 박겠지만, 그게  어때서? 그냥  단계를 넘기고,  다음 단계도 넘기며 그렇게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살아나오면 되는  아닌가그 때도 SOS가 적힌 후드티를 입고, 힘껏 다이빙 하련다. 그 다음은? 무조건 탈출이다. 살아나오기만 한다면, 빳빳했던 후드티가 넝마가 되더라도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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