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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 Kim Dec 10. 2023

그때의 내가 맞다.

그러니 선택했으면 그냥 해. -  <듄>을 보러 가기까지. 

새벽 4시에 잠들고서 일어난 일요일 오전. 아직 덜 잔 것 같아서 이대로 두어 시간 빈둥거리면 딱 좋겠다고 생각하는데, 이상하게 찝찝했다. 어젯밤, 뭔가 해야 하는데 그냥 잠든 것 같은데............


아 맞다, 아침 10시 반 영화 취소! 


지난주 목요일에 통신사 할인으로 <듄>을 예매했다. 영화관에서 상영할 때는 못 보고, 몇 개월 전에 OCN에서 나오는 걸 조금 봤는데 너무 멋있었다. 이건 꼭 영화관에서 보고 싶다고 생각했고, 분명 듄 2 개봉시기에 맞춰 1도 재개봉해줄 것 같았는데 그게 요즘이었다. 


이건 꼭 봐야 해! 


재개봉이라 그런지, 시간이 아침 10시 전 아니면 밤 10시 이후였다(극단적이야.). 새벽 3시에 집에 오고 싶지 않아서 오전 시간으로 예매를 했다. 그리고 계속해서 이어지던 평일 저녁 일정들. 상담, 송년회, 집들이, 가족 생일까지 하고 나니 그냥 일요일엔 아무것도 안 하고 쉬고만 싶었다. 영화고 뭐고, 다 필요 없어. 


'누워있으니 너무 좋다. 영화는 취소해야지.'


하는 생각으로 새벽 4시까지 뒹굴다가, 그냥 잠에 든 것이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서 시계를 확인했다. 오전 10시 10분. 보통 영화는 20분 전까지 취소가 된다. 침착해, 침착해.....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컴퓨터를 켜서 통신사 예매창에 들어갔다. 


- 취소가능 시간이 지났습니다. 


하지만 영화 취소는 10시까지였고, 관람시간 전에 현장에서 취소를 하라고 적혀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빨리 가도 상영시간 전까지 영화관에 도착하는 것은 무리였다. 


'그냥 12500원 버릴까?'


버리긴 뭘 버려! 영화관이 나한테 해준 것도 없는데. 나만 영화관에 돈을 퍼주을 수는 없는 일이다. 게다가 통신사 이벤트로 2D는 8500원에 관람할 수 있는데, 듄은 특별관이라 12500원이었다. 이렇게까지 스페셜 관에서 보려고 한 건 아니었지만 그냥 버리기엔 좀 아까웠다. 그리고 오늘 영화를 안 보면, 괜히 억울하고, 나의 실수를 인정하기 싫어서 듄을 영원히 안 보게 될 것 같았다. 그래서 그냥 세수만 하고, 선크림 바르고 후드티랑 츄리닝 입고 슬리퍼 신고 밖으로 나왔다. 일단 끊어놓은 거, 돈 버리는 것보단 영화를 봐야겠다. 




영화관은 꼭대기층에 있었다. 광고시간을 감안해도, 이미 인트로 5분은 지나간 후였다. 그냥 돈을 내가 미리 지불했으니 보러 '왔다', 하는 거 말고 딱히 기대감은 없었다. 


그런데 웬걸?! 


상영관에 들어갔는데 완전 낯설었다. 일단 스크린은 엄청나게 컸고, 좌석이 리클라이너였다. 좌석 앞 뒤 공간은 널찍했고, 좌석 끄트머리에는 마치 인터넷에서 본 비행기 비즈니스 클래스 좌석처럼 칸막이가 있었다. 



우오와. 


이래서 정가 19000원이었구나. 슈퍼플렉스 짱이다. 오늘 영화 안 보러 왔으면, 이런 상영관이 있다는 걸 아주 나중에 알았을 게 분명했다. 왜냐면 나는, 2D로 보러 다니니까. 영화값이 너무 비싸서 통신사 이벤트나 문화의 날, 아니면 조조로 보게 되는데 조조도 10000원이니 말 다 했다. 그런데 19000원 영화? 혼자서 볼 리가 있나. 나는 엄청나게 신기해하며, 내 좌석으로 갔다. 


이미 영화는 시작하고 있었는데, 내가 TV로 봤던 부분이었다. 그런데 TV로 볼 때도 앞에 5분? 10분 정도는 못 봐서, 결국 나는 <듄> 인트로는 이번에도 못 보게 됐다. 그럼 한 번 더 보러 오지 뭐. 일단 나는 처음 보는 의자에, 신나서 풀썩 앉았다. 오, 푹신푹신. 


옆에 버튼이 있어서 만지작 거렸다. 다리 부분도 올리고, 거의 누웠다. 집에서만 누울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영화관에서도 누울 수 있다니..... 좋다. 돈도 안 버렸고, 새로운 문화 체험도 하고. 그렇게 누워서 영화를 보는데, 목이랑 허리가 아팠다. 좌석이 없어서 거의 끄트머리에 잡았다. 게다가 화면은 너무 커서, 약간 어떻게 해도 불편했다. 자리를 잘 잡아야 하는구나. 나중에는 중앙석에서 봐야지. 


아침을 안 먹어서, 귤 두 개랑 동생이 사다준 오메기떡 냉동한 것을 가져왔다. 다리 피고 앉아서, 아플 때면 다리 접고, 뒤척거리며, 귤 까먹으며 영화 봤다. 



<듄>은 진짜 잘 만들었다. 이래서 계속 1위 하고 있었구나. 그때도 IMAX관에서 보는 거 추천하던데, 큰 스크린에서  편하게 보니 너무 좋았다. 티모시 살라메야 콜마넴부터 참으로 무기력한데 활기 있네, 생각했고 폴의 꿈에 나오는 소녀. 어디서 많이 봤는데, 스파이더맨에서 봤구나.... 하고 이름이 뭐더라.... 하면서. 크레딧 올라갈 때 알았다. 젠다이어. 맞아 맞아, 그 이름이었어. 


12세 관람가라 그런지, 잔인한 장면들을 자극적으로 표현하지 않았다. 충분히 상상할 수 있게끔 연출했다. 그리고, 운명. 폴은 예지 된 자로 나오는데, 이게 마냥 좋은 게 아니다. 그 대가가 있다. 또 자신이 계획적으로 탄생됐다는 것을 알고 괴로워하고. 또 자신 때문에 우주 전생이 일어날 것을 알고는 괴로워하고. 이야기에서는, 주인공을 극단으로 끌고 가야 하는데, 처음에 나왔던 폴의 평화, 가족은 모두 깨진다. 그래야 각성하지. 잔인한데, 이래야 이야기가 산다. 근데 한 사람의 인생이라 생각하면 너무나도 잔인하다. 동시에 그래, 이 정도는 시련을 줘야, 각성하고 뭔가 미래를 개척하겠구나, 싶었다. 


영화가 끝나고 나서도 사람들이 나갈 때도 나는 리클라이너를 누렸다. 다리 뻗고 있으니 너무 편해. 크레딧 올라가는 상영관에 가만히 누워(?)있자니, 최근에는 잘 만든 영화를 연속으로 보게 돼서 너무 뿌듯했다. 휴가 첫날에는 <괴물>을 봤고, 어제는 <윤희에게>를 다시 봤고, 오늘은 <듄>. 다 너무 잘 만든 영화들이다. 사실 무슨 영화를 고르든, 영화를 보는 것은 그 자체로 하나의 경험이다. 그런데 좋은 경험하는걸 선호하지? 


상영관을 나오면서 오늘 영화 보기 너무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제 게으름 피우다가 영화 취소하지 않은 나 자신, 잘했다. 그전에, 영화를 예매했던 나 자신, 너무나도 잘했다. 오늘 영화를 취소하거나, 귀찮다고 안 보러 왔으면 나는 슈퍼플렉스 관을 체험할 기회도, 좋은 영화를 볼 기회도 좀 늦춰졌을 거다. 아니면 안 하게 되거나. 언젠가는 하겠지만, 그 기회를 날리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과거의 내가 한 선택들은, 맞다. 그때는 분명, 너무나도 신나서 한 선택들이니까. 보고 싶던 영화가 재개봉해서, 영화를 예매하는 일. 이건 내가 너무나도 원한 일이었다. 하지만 귀찮다고 아침에 취소하려고 했던 일. 이것도 분명 내가 원한 일이지만, 영화를 보고 싶다는 마음이 더 컸다. 게다가 취소도 못 했고. 그래서 과거의 나의 선택을 따랐는데, 결과적으로 너무 잘한 일이었다. 


오늘 내가 원래 하려던 선택은, 게으름 혹은 귀찮음. 내가 오랫동안 품었던 마음(듄 재개봉하면 꼭 영화관에서 봐야지!)을 훼방하는, 나의 도전과 선택을 방해하는 마음이랄까? 어쨌든 도전이 이겼어. 그래서, 꼭 다음에도 하고 싶은 게 있으면 미리 해놔야겠다고 생각했다. 생각해 보면 6월에 대만에 갔던 것도, 10일 전에 비행기 티켓을 예매해 놔서 그랬다. 출발 3일 전에 너무 귀찮고 가기 싫어서 취소할까 말까 계속 고민했었는데, 그때도 그냥 떠나서 좋았다(고작 10일 사이에 무슨 일이 있던 거야.).


즉흥적이고 충동적으로 뭔가 선택할 때가 종종 있는데, 그때는 그 선택이 무조건 맞다. 무조건 해야 하고, 이거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으로 선택한다. 그걸 당장 실행에 옮길 때도 있고, 오늘처럼 예약이나 예매를 하고 실행하는 날을 기다릴 때도 있다. 당장 하면 다른 생각이 끼어들 틈이 없다(힘든데? 이상한데? 뭐지? 하면서 서 계속해야 함.) 그런데 텀이 있으면, 자꾸만 훼방꾼들이 내 마음에 끼어든다. 


-귀찮지?

-피곤하지?

-그냥 하지 마

-다음에 해

-오늘 편히 있어 

-취소해 


등등. 


무시하면 좋지만, 그러기엔 몸이 피곤할 때가 많다. 귀중한 휴일은 가끔 가만있고만 싶다. 그래서 그냥 생각을 말아야 한다. 그때 내가 좋아서 한 거니까, 그게 맞다. 그냥 해. 오늘 내가 영화를 본 것은, 목요일에 설레는 마음으로 예매를 했기 때문이다. 그날의 나를 져 버져도 되는데, 그러면 과거의 내가 조금 슬퍼하지 않을까?(미안, 너무 쉽게 져버리려 했다.) 그때 분명, 너무나도 분명한 이유가 있어서 선택한 것일 텐데. 


오늘 영화관에 가지 않았다면, 이런 생각하지 않았을 거다. 그런데 오히려 돈 버리기 아까워서 영화관에 갔기 때문에, 내가 포기했다면 날렸을 기회를 직접 경험했는데, 그게 너무 좋았다. 그리고 슈퍼플렉스 경험한 것도 너무 좋았다. 난 이런 상영관이 있다는 것도 오늘 알았다. 매번 가는 영화관이었는데, 알 게 여전히 많다.  


이 세상엔 아직도 내가 모르는 게 너무 많고, 경험할 것도 넘쳐난다. 그러니까 뭔가 결정하면, 그냥 해야 한다. 귀차니즘과 게으름이 공격할 틈이 없게 그냥 행동해야 한다. 그래야 낯선 경험도 계속해서 할 수 있고, 새로운 자극으로 나 역시 계속 재미나게 살 수 있을 테니까.  


과거의 내가 한 것은, 일단 맞다. 그때는 그 선택을 한 이유가 있다. 그러니 뭔가 그때의 선택에 대해 원망하고 불만 갖고 그러지 말고, 그냥 하자. 다 이유가 있다. 귀찮음과 게으름이 훼방해도, 그냥 하자. 한숨 쉬고 으---!!!! 하고는 그냥 하면 된다. 사실 새로운 도전이나 낯선 경험이 별거 인가? 이렇게 선택한 것을 하면 된다.  


그러면 그때의, 과거의 내가 내가 심어놓은, 선택이라는 씨앗이, (그게 좋든 싫든) 낯선 경험으로 커서, 오늘의 나는 또 뭔가, 새로운 사실을 깨닫게 된다. 세상에 대해, 나에 대해 해하나 더 배울게 늘어난다.


완전 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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