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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 Kim May 23. 2024

들키지 않아서 다행이야

알아서 몰래, 이렇게 커서 다행이야

만약 내가 어렸을 때, 

내가 솔직하게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두에게 말했다면 나는 지금처럼 자랄 수 있었을까?

그러니까 그들이 묻지 않은 것까지 전부 얘기했더라면.


사람들은 다 변한다고 하는데 변하지 않는 게 있다면 그건 자기 자신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다 변한대. 

'모든 것은 변한다'는 사실 말고는 다 변한대.

그럼 자기 자신도 변한다는 건데, 나는 아직 동의하기는 힘들다.


나의 상황은 변해도 나라는 사람의 정체성이나 기질이 변하지는 않아.

그런데 변화할 수는 있지.

성장하거나 변용하거나, 숨거나 드러내거나. 

상실하고 시련을 겪을 수 있지만 다시 찾는게 모험이야.


그러니 결국엔 자기도 변한다고 말한 사람은 변하지 않은 무언가가 없던 사람이 한 말 아닐까?

변하지 않고 싶은, 혹은 변하지 않는 무언가를 가져본 적 없는 사람.


그런 사람의 말을 진리라고 받아들이는 거 아닐까? 왜냐면 다들 변해버려서. 

자기만 그런 거면 너무 외로울 테니까.

사실은 내가 나만 이런 것 같아서 외로워했던 것처럼.  




나는 변하지 않는 무언가와 항상 함께하고 있는데, 그것은 갑자기 어제나 그저께 생긴 게 아니다.


내가 아주 어린 시절, 내가 글을 읽기 시작하던 때, 

내가 만화영화를 보기 시작하던 때, 혼자 책을 읽기 시작했을 때, 

내가 쪼그리고 앉으면 지금 내 무릎에 정수리가 닿을 시절, 그때부터.

내가 질문이란 걸 할 때부터. 

40초에 하나씩 질문을 하던 그 시절부터.

허구란 존재하지 않고 모든 것이 현실이던 그때. 

그때부터 쭉 이렇게 살았는데. 



모르는 걸 알아내는 것은 재밌었다. 

어른들이 원하는 모습으로 사는 건 어렵지 않았고 솔직히 제일 쉬웠다.

그건 내가 재밌어하고 결과를 만드는 것들이야말로 어른들 입장에서는 아이들이 해주길 바랐던 것이니까.

어른들이 원해서 공부를 잘한 게 아니고 내가 재밌어서 한 것의 결과와 그들이 원하는 목표가 일치했다.


공부를 하려고 하는데 어른들이 공부하라 그러면 갑자기 재미가 없어지고 화가 나서 책만 읽었다.

그래서 어른들은 공부하라는 말을 안 했다. 

가만 놔두면 자기가 하고 싶을 때 해야 한다는 걸 알아서. 

그렇지만 나는 그냥 놔두면 종일 교과서 보고 쉬는 시간에 뛰어놀고 그랬다. 

답이 뭔지 궁금해서. 

내가 재미있어서.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모범생이 된 건데  

그러고나니까 사람들은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지 굳이 묻지 않는다.

그리고 내가 무슨 말을 해도 다 포용해 준다.

왜냐면 모범생은 사고를 치지 않으니까? 

굳이 사고칠 일도 없고. 


어려운 것도 없고 두려운 것도 없어서 사람들이 묻는 것에 뭐든 다 솔직히 말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내게 질문할 수 있는 것만 했다. 본인들이 아는 한에서. 

본인들이 볼 수 있는 것까지만 보고 현실이라 믿을 수 있는 것 안에서.

내가 책을 읽고 어떤 생각을 하는지, 매일 어떤 우주를 여행하고 오는지 이런 건 묻지 않았다. 


친구들도 마찬가지였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오늘 나올 급식, 요즘 관심 있는 사람, 우리의 관계 뭐 그런 거지 

내가 읽는 책, 내가 그 책을 읽고 한 생각, 이런 건 아니었다.  


나도 굳이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말할 필요를 못 느꼈다.

하루종일 학교 다니고 친구들하고 놀고 이것저것 배우고 학습하기 바빴으니까. 

경시대회나 체육대회, 음악이나 미술 등 대회란 대회도 다 나가야했다.


밤이 돼야 겨우 혼자 있을 시간이 생겼다. 


집으로 돌아와 TV에서 만화영화를 보던 그때.

새로운 모험들과 매 순간 만나던 그때. 

 

그리고 잠들기 전 방에 있던 그때.

이제 조용히 혼자 책을 펼치고, 문장을 따라 읽어가던 그때. 


하루종일 살던 세계와 동떨어지는 평온하던 그 시간.



아주 어린 시절부터 그랬던 것처럼, 

나는 내가 습득하고 받아들이는 모든 것들을 그냥 놔두었다. 


이것이 상상인지 현실인지 허구인지 허상인지 공상인지 몽상인지 

이런 이름을 붙이지 않고 그냥 따라갔다.

책에서 만화영화에서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바짝 붙어서 따라갔다.

주인공이 되어 여행했다. 


그것은 밥을 먹고 숨을 쉬는 것처럼 너무 당연한 일이었다.

그냥 나 혼자 조용히, 매일 밤 나 혼자서 내 방 안의 문을 열고 어디론가 가는 일. 

어딘가에 존재하는 수많은 우주를 여행하는 일.


몇년 전부터 평행우주나 다중우주에 관심을 가졌는데, 이제보니 매우 당연한 일이었다. 

내가 그런 세계관에서 살았으니까. 

판타지에 관심 있는 것? 그런 일상을 사는게 판타지 그 자체였다.

어쩌다 글을 쓰는거지? 했는데 지금 이 직업이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결과였다. 

늘 내가 사는 현실과 겹쳐보이는 또 다른 무언가가 있었어.


내 인생 자체가 누군가에게는 판타지일테지만. 

내게는 이것이 내 세상이고 진짜인데.


모든 것이 가능하고 그것을 허구라 단정지은 적 없는 세계.






그래서 나는 지금 너무 혼란스럽다.


내가 허구라고 이름 붙인 적 없던 것들에 대해서

이제는 그건 내 현실이 아니야,라고 말해야 하는 것 같아서.


모든 것이 뒤섞이고 무한의 가능성 안에서 살면 내가 너무 힘이 든다.

말할 수 없고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너무 많이 생긴다. 


무한의 자유와 무한의 가능성은 저주일 수 있다.

왜냐면 내 삶이 유한하니까.


인간이 얼마나 유한하고 유약하고 연약한 존재인지

상실을 통해 알게 되었고, 

그것은 행성처럼 날아와 내 세계의 대충돌을 가져왔다.


대종말.


거기서 살아남아 생존자가 된 지금,

나는 지금처럼 살아간다면 앞으로 힘이 들 거라는 것을 느낀 것 같고. 






많은 것이 얽히고 복잡해졌다.

나는 그 안에서 분리를 시작한다.

내가 좀 더 편하게 살기 위해서.


그리고 이제야 사람들의 말이 이해되기 시작한다.

여전히 순수하구나. 해맑아서 그래. 때 묻지 않아서 그래.

그럴 때마다 내가 들었던 의문은 

모두가 그럴 때가 있었으면서 왜 나만 그렇다고 말하고 넘어가는 거지? 였는데.

내 의문점은 하나도 해결이 안 되고 그저 '네가 남들과 달라서 그래'라고 넘어가버렸으니까.

나만 그런 게 아니고 다들 그랬고, 그럴 수 있잖아. 왜 나만 다르다 그래.


하지만 지금은 그들도 딱히 내 고민에 대해 해 줄 말이 없었다는 것을 느낀다. 

그냥 세상이 다 그래, 우린 거기에 맞춰 변했어, 왜 너만 변하지 않아? 라고 말하고 싶었을지도.




학교 수업이 끝나고 집에 와서 엄마가 해주던 간식을 먹고 

교과서를 몇 번 본 다음에 잠들기 전 스탠드만 켜놓고 책을 펼치던 그 시절. 

그 어둠과 그 방과 나는 늘 함께였고 여전히 마음만 먹으면 그곳으로 갈 수 있는데.


하지만 며칠 전부터는 

그 방에 있는 나를 지켜볼 수 있을 만큼 거리감이 생겼고

손을 뻗으려 해도 책에 집중한 과거의 나는 돌아봐주지도 않고

목소리도 나오지 않아서 입을 다물고 점점 작아지는 그때의 나를 그냥 바라본다.

내가 있던 곳에서 자꾸 어디론가 점차 멀어진다.


그게 올라가는 건지, 내가 동아줄에 매달려 있는 건지, 그건 모르겠지만 어디론가 계속 올라간다.  


어디로? 어디로 가는 거야? 




만약 그때,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사람들이 알았다면.

무언가 잘못됐음을 느끼고 본인들 기준에 따라 내 생각을 바꾸려고 노력했겠지.

왜냐면 계속 그렇게 사는 건 힘들테니까.

그러면 나는 내가 잘못된건가?라고 생각하고 모든 것에 흥미를 잃었거나

사람들이 원하는 기준에 맞춰 자라는 척 하거나 그랬을거다.


누구도 묻지 않았고 나도 뭐라고 말하지 않았지만 결국엔 시간이 오래 유지될 있어서 다행이었다.

태어난 채로, 훼손되지 않은 채로 오래. 


한때는 그게 너무 외로웠지만 이제는 그게 행운이라면 행운이겠지.  

기질이든 적성이든 본성이든 순수성이든

갖고 태어난 그 고유의 특성을 오래 유지하기 얼마나 힘든지 나는 이제야 알겠거든. 

그 다름과 다양성이 존중되고 유지되기가 얼마나 힘든지도. 

비슷비슷해지는 걸 택하는게 제일 슬프지만 편하다는 것도.


그래서 요즘의 나는 무척이나 답답하고 혼란스럽고 말할 곳도 없어서 갑갑하지만

(왜냐면 내가 정리가 안 되는데 누구한테 무엇을 말할 수 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드는 생각은 하나.


들키지 않아서 다행이야. 

알아서 몰래, 이렇게 커서 다행이야. 


내가 스스로 알아낼 수 있을 때까지 들키지 않아서 다행이야. 

내가 선택할 수 있을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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