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Bo Kim May 16. 2024

옴짝달싹 할 수 없는 날

이것도 내 선택의 결과겠지만.

매번 같은 문제에 도달한다. 매번 같은 한계에 맞부딪힌다. 왜 나는 매일 글을 써야 하는 사람이면서 왜 어느 순간이 되면 모든 것을 다 놓고 싶어 하는 걸까? 왜 번아웃은 몇 개월을 기준으로 다시 돌아오는 걸까? 분명 이번에는 체력도 기르고 일상유지에 신경 쓰고 여러모로 장기전에 필요한 몸을 만들었다고 생각했는데. 왜 또 어느 순간 지쳐버린 걸까. 아직 써야 할 글이 너무나도 많이 남았는데.


자질의 문제인가 생각했다. 혹시 내가 소설가의 자질이 없는 건가. 하지만 나는 공모전도 수상하고 계약도 했고 프리패스로 연재도 할 예정이잖아. 그러니까, 예정이다. 일단 결과물이 나와야 하는데, 그 결과물을 내놓기 가까지 이렇게 스트레스를 받아야 하나, 생각한다. 


수명이 제일 짧은 직업군 1순위가 작가던데. 삶을 연료로 써서 다 태워버려서 수명이 단축되는 건가. 하지만 제일 장수하는 직업군 역시 작가인 것 같다. 어쨌든 자기가 하고 싶은 말 하면서 살 수 있으니까.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살면 마음은 편하니까 오래 살 수 있겠지. 그런데 이렇게 '하고싶은 것'을 하는 상태까지 가려면 일단 '해야하는 것'을 해야하고, 그걸 해내는 게 녹록치 않다. 왜냐면 해야하는 것은 솔직히 나보다는 읽는 사람을 생각해야 하므로 '나 이렇게 하고싶어!'하고 내맘대로 막 하면 안 된다. 


다 잊고 새로 시작하자고 했다.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다시 시작하다 보니 매일 건물을 하나씩 짓는 느낌이다. 나도 이렇게 처음 하는데, 신인이니까 이것저것 하는 것은 좋다고 생각한다. 정말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기초공사를 하고 건물을 짓고. 이걸 매일 한다. 그리고 다음에 언젠가 나올 무언가를 위해, 그게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순전히 감만 믿고 뭔가 복선이나 장치를 설치해 놓는다. 정말 순전히 감으로. 나중이 돼야 '아 맞다 그때 이걸 만들어놨지?'하고 매우 요긴하게 써야 하니까, 정말 미래를 내다봐야 하는 일인데 그 미래를 알 수 없다. 


음, 예를 들자면. 지금 작업 방식은 설계도가 없다. 그래서 일단 쓴다.  일단 건물을 올린다. 그러다 뭔가 '어 여기 하자 있는데?' 그럼 다 부순다. 그리고 거기서부터 다시 짓는다. 그리고 또 가다가 '어 여기 또 하자 있는데?' 그러면 또 부순다. 그리고 또 거기서부터 다시 짓는다. 10층까지 갔다가 하자를 발견하면 3층으로 다시 내려가서 다 부수고 올린다. 이런 식으로 4달째 쓰고 있다. 


장점과 단점이 확실하다. 장점은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 한계에 갇히지 않는다. 왜냐면 설계도가 없으니까. 가진 건 딱 하나. 목적에 맞는 건물을 짓는다는 목표. '빌딩을 짓는다' '학교를 짓는다' '백화점을 짓는다' 같은 것. 내 글로 치자면 장르를 명확히 하고, 캐릭터를 명확히 하는 것. 다행인 점은 장르와 캐릭터를 명확히 하는 작업을 몇 개월 거쳤더니 기반은 튼튼하다. 토지랑 지하는 완전 단단히 다졌다. 근데 지금 올리다가 다시 짓는 일을 무수히 반복해. 아주 많이. 아주, 되게, 정말 많이. 


단점은 속도가 더디다. 매우 더디다. 어렸을 때 동네 어른들이 산에서 직접 집을 짓는다는 얘기를 들은 적 있는데 '어떻게 직접 집을 짓지?'했는데 내가 그런 느낌이다. 목재를 고르고, 벽돌을 고르고, 전부 다. 하나하나 내 손으로, 장인의 정신으로. 이게 정말 좋다는 걸 아는데, 내가 익숙하지 않으니까. 시행착오가 정말 많이 걸리는 것 같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부딪히면서 많은 것을 배우고 있다. 


반응처리 속도는 빨라졌다. 이건 내가 성장하고 역량이 높아졌으니까. 컴퓨터로 치면 HDD에서 SD로 바뀐 거랑 비슷하다. 받아들이는 양은 많은데 처리 속도나 시간은 적어지는 것. 이건 아마 내가 글쓰기를 놓지 않는한 계속 빨라질 것이다. 


하지만 퀄리티를 유지하기 위해서 내가 지켜야 하는 속도가 있다. 내가 써야 하는 에너지는 한정돼 있으니까. 내가 느낄 때 이게 빠른 것 같지 않다는 생각이 들면 초조해진다. 옆건물은 막 엄청나게 빨리 올라가는데 나는 정말 천천히 올라가는 기분이니까. 하지만 나도 조급해져서 빨리 올리면 정말로 다 부서 야한다. 퀄리티가 안 나온다. 이건 내 역량의 문제기도 할 텐데, 어쩔 수 없이 속도를 높이고 싶어지는 마음이 든다. 


이런 수많은 선택들 중, 나는 늘 무언가 선택해야 해. 그리고 그 선택에 책임을 져야 한다. 캐릭터나 나나 똑같다. 무난한 상황과 무난한 선택을 좋아하는 독자는 많이 없거든. 하이리스크 하이리턴. 높은 강도의 갈등을 주고 치열한 고민 끝에 선택하는 캐릭터를 좋아하는 건 당연할 거다. 그만큼 공감되거나 응원하게 될 테니까. 


그래서 나는 요즘 자꾸 옴짝달싹 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이도저도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갇혔다는 생각이 든다. 가야 할 곳은 명확하고 가고 있고 가야만 하는데 좀체 움직이지 않는다는 생각이 든다. 고민하고 선택해야 할 게 너무나도 많다. 설계도를 매일 만들어야 한다. 틀리면 다시 만들고 지우고 고치고의 반복이다.


일찍 자고 좋은 음식을 먹고 운동을 하고 매일 글을 쓰고 있지만.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어떤 방 안에 갇힌 것 같은 생각이 든다. 그래서 벗어나고 싶고 이곳을 떠나고 싶지만. 떠난다고 한들 해결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알기에. 그냥 그 안에서, 혹은 곁에서 계속, 옴짝달싹 할 수 없어하는 것이다.


갈팡질팡하고 옴짝달싹 못하고, 뭔가 성장했지만 정확히 딱 집어서 보여줄 순 없고, 뭔가 하고 있는데 더 빨리 하고싶고, 빨리 보여주고 싶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는데. 이것도 내 선택의 결과겠지. 그리고 또 선택해야겠지.


그래서 어떤 날은 정말 힘이 하나도 들지 않고, 몸에서 열이 오르고, 아무것도 생각하고 싶지 않다. 



작가의 이전글 완전한 몰입으로 들어가는 문, 루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