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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머티 Apr 19. 2023

"반복각막짓무름"과의 만남 (feat. 나뭇가지)

"반복각막짓무름"과의 사투 (1)


01


지난 주말에 제주도에 내려가 부모님과 고사리를 뜯다가, 밟고 지나간 억센 나뭇가지가 튕겨져 올라오는 바람에 눈알이 약간 긁히는 사건이 있었다. 눈 깜짝할 새 벌어진 일에 정신을 차려보니, 오른쪽 눈 아래가 약간 흐리게 보이는 것이 아닌가.


이따금씩 눈이 따끔한 기분이 들어서, 한쪽 눈으로만 고사리를 마저 뜯다가 이만하고 내려가자는 부모님께 얘기해, 감사하게도 일요일에 영업중인 약국에서 안약과 안연고를 사서 몇 차례 바르고 잠이 들었다.


다음 날, 눈동자가 찢어지는 듯한 괴로움이 찾아와 새벽 4시 쯤 잠에서 깨어 거울을 보니 눈이 심하게 충혈되어 있었다. 부랴부랴 안약을 다시 넣고, 혹시나 도움이 될까 물도 벌컥벌컥 마셨다.


그 외에 어쩔 도리가 없어 다시 누워 잠을 청하고는 아침이 되자마자 미리 찾아둔 안과로 운전해갔다. 운전해주시겠다는 어머니의 말씀에 1.2km 밖에 안되는데 별일 있겠어 대차게 집을 나서서는, 시도 때도 없이 한 쪽눈을 계속 껌뻑거리며 5분 남짓한 거리를 운전해갔다.



02


작은 동네 병원에 도착해 400km는 떨어졌을 주소와 이름을 적어내니, 5분 쯤 뒤에 진료실로 들어오라하였다. 연로하신 선생님께서는 본인보다 더 오래되었을 돋보기 같은 장치로 내 눈을 들여다보시더니 혀를 끌끌차시며, 각막에 기스가 났고 이물이 끼어들어갔는데, 이물을 빼려면 각막을 벌려야 하니 통증이 상당하실 것이란다.


설명은 했고 자 그럼, 하면서 시작된 시술은 정말이지 괴로웠다. 몇 분이었을까? 아니면 몇 십초정도 였을까? 마취도 없이 느닷없이 진행된 이물제거 시술은 코로나로 시름시름 앓는 그런 아픔과는 다른 성질의 것이었다.


정신을 차리고 두 뺨에 흐르는 주룩주룩 흐르는 눈물을 닦고 있으니, 의사선생께서는 이제부터의 관리가 매우 중요하니 아무것도 하지말고 누워만 있으라 하시고, 간호사는 항생제가 포함된 처방전을 내어주었다.




03


도심지의 병원 건물 1층에 으레 약국이 있는 것과 달리, 시골의 약국은 병원에서도 한참이나 걸어가야있었다. 이쯤이면 안약 장사는 안하겠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원망 섞인 의구심마저 들었다.


다치지 않은 눈을 후레쉬 삼아 한걸음씩 걸어가본다. 한쪽 눈이 아프면, 나머지 한쪽 눈으로 잘 걸어갈 수 있을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길을 찾느라 한 쪽눈을 돌리는 동안, 아픈 눈도 함께 돌아가며 눈꺼풀에 쓸려 또 다시 눈물이 난다.


벽을 타고 기어가다 싶이해 겨우 도착한 약국에 처방전을 내고, 눈을 감고 약국의 일상 ASMR을 잠시 듣다보니 내 약이 나왔다. 처방전으로 구매한 진짜 안약을 몇 방울 넣고, 소염제와 항생제가 든 알약을 바로 먹고서는 다시 벽을 손으로 더듬으며 걸어나왔다.




04


너무나 쓸데없이 눈이 부셨다. 약국에서 한 5미터를 걸어왔을까, 너무 아파서 다시 약국으로 가서 눈 아플때 진통제는 안먹습니까? 물어보니 방금 먹은 약에 진통제가 있단다. 안도감과 함께, 쓸데없이 5미터를 허비했다는 생각이 들며 주차장으로 기어갔다.


주차장에 도착해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도저히 안되겠으니 여기로 와달라고. 구조요청을 보내고서야 온 몸에 긴장이 풀렸다. 도보로 30분 정도 거리였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엄마가 도착하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은 것 같다. 숨이 차 하는 엄마의 목소리가 들렸고, 눈에서는 따가워서 그런지 계속 눈물이 났다.




05


집에 도착하니, 아빠가 별일이 다있다며 얼른 들어가 쉬어라 그런다. 한쪽 눈만 떠도 너무 아프다고 그러니, 옆에서 듣던 엄마가 이경규 씨 눈알 돌리는 것이 묘기는 진짜 묘기였구나 하면서 거든다.


마치 각막이 너덜거리고 있다는 상상까지 들면서, 아무것도 하지않고 대낮부터 누워있었다. 이 시간에 누워있던 적은 별로 없었지만, 신기하게 잠이 또 오곤 해서 몇 번을 졸았다 깼다.


저녁을 먹고서는, 마침 월요일이라 야구경기가 없어 다행이라는 생각을 잠깐 하고 가족들과 적당한 대화를 하고서는 다시 잠이 들었다. 새벽에는 다시 또 눈이 뻑뻑해 깨어보니, 저녁에 비해 다시 눈이 충혈되어 있었고, 안약을 듬뿍 넣고 물을 마시고 잠을 청했다.


누워서 따뜻하게 이불을 덮고 가만 생각해보니, 일단 '이물'이 빠졌다는 것이 감사하고, 원래의 거주지인 동탄에 모레 아침 비행기로 돌아가므로, 근처의 병원에 들러 한번 더 확인하면 되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살짝 입꼬리가 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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