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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HY Jun 10. 2022

삶의 즐거움

한 때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책이 베스트셀러였다. 

책을 사 보니 제목이 다 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가히 21세기 최고의 제목이라 할 수 있다. 제목이 문제를 진단하고, 제목이 위로하고, 제목이 그 어딘가에 숨을 쉴 공간을 마련했다. 

거기가 어딘지 모른다는 게 함정이지, 하옇튼 청춘은 잠시라도 위로를 받기는 헸겠다. 


오십 대 중반이 되어 그 책을 다시 생각해 보니 ‘그럼 청춘만 아프단 말인가?’ 분연히 일어나지 않을 수 없다. 교양 있게 말하자면 의도치 않게 드러난 무지이고, 청춘을 다 거쳐 이 나이까지 온 입장이고 보면 기만이다, 너도 아프냐? 나도 아프다. 넌 마음만 아프냐? 난 몸도 마음도 다 아프다, 많이 아프다.


오십 대는 육체의 마모에서 비롯된 온갖 퇴행성 질병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나이이고 나는 그 직격탄을 맞았다. 시력 청력이 약화되고 퇴행성 관절염이 친구다. 어느 날 새로운 진단을 받고 병원에서 돌아온 날, ‘여보 이제 나를 질병 콜렉터라 불러줘’ 하며 키득키득 웃었더니, 남편이 걱정과 한심함이 반반 섞인 표정으로 ‘좋냐?’ 묻는다. 


물론 안 좋다. 내가 그토록  좋아하는 잠을 제대로 못 자는 데 그럴 리가. 그런데 신기하게도 막 슬프거나 화가 나거나 하지도 않는다. 난 그냥 노화를 내 몸의 변화과정으로 그럭저럭 받아들이고 있는 듯하다. 초경을 시작할 즈음, 주변의 친구들이 축하받을 일이라며 호들갑을 떨거나 무슨 순진무구의 시간은 끝나고, 여성성이라는 깊이를 알 수 없는 신비의 세계로 들어가는 듯 상념에 빠지는 모습들이 낯설었던 것처럼 말이다. 그 변화나 이 변화나 새로운 변화다. 난 그저 그렇게 받아들이고 있다, 지금까지는. 내가 계속 초연할 수 있을지, 결국은 나를 쇠락케 하는 이 몸의 반란에 우울해할 것인지는 나도 궁금하다.


신기하게도 아직은... 

잘 움직여지지는 않지만, 아직은 움직이기는 하는 팔과 다리가 고맙다.

아침저녁으로 들리는 새소리, 

시력이 나빠져도 하나 놓칠 것 없는 서쪽 하늘에 길게 누운 노을, 

9월이 오면 집안 구석구석 은은한 실존을 알리는 천리향, 

멀리서도 알아차리는 새싹의 기운 등

몸이 예전 같지 않아도 놓치는 건 별로 없다.


오히려 느려지고 성능 떨어진 몸은 귀한 걸 잘 알아차린다.

내가 기울어 가니 나보다 하찮은 게 별로 없다 (아직도 있긴 있다는 얘기).

많은 것이 감사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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