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HY Jun 12. 2022

가지 않은 길

자기 계발서의 인기와 함께, 토크 콘서트같이, 말로써 사람들을 감동시키는 얘기꾼들이 인기다. 자기 분야에서 성공한 사람, 어려움을 이겨낸 사람, 독특한 아이디어를 가진 사람, 이도 저도 아니면 말하는 게 전문인 사람들이 나와서 당신의 잠재력을 일깨우라고, 당신이 낭비하고 있는 시간과 돈이 새는 구멍을 찾아보라고, 적극적으로 투자하고 공격적으로 인간관계를 맺으라고, 그래서 성공하라고, 부를 이루라고, 행복을 쟁취하라고 설득한다. 나는 성격이 괴팍해서인지 자기 계발서는 물론, 마치 부흥회 하듯, 울리고 웃겨 돈을 벌어가는 이런 얘기꾼들의 메시지에 좀 냉소적인 편이다.

 

며칠 전에도 토크 콘서트를 들을 기회가 있었다. 그는 로버트 프로스트 (Robert Proust)의 ‘가지 않은 길 (The road not taken)’이란 시를 인용하며 자신의 성공담의  대미를 장식했다. 한마디로 자신은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택해서 이런 성공에 이를 수 있었다는 말이었다. ‘가만있어 봐, 이 시가 그런 뜻이었나’ 의아해하면서 프로스트의 시를 다시 읽어보고 해설들을 찾아보았다. 그 사람이 인용한 것처럼, 이 시는 선택의 중요성, 잘못된 선택의 회한에 대한 시라는 해설이 대세였다. 정말 압권은 이 시가 기회비용, 즉 선택한 길의 가치가 선택하지 않은 길의 가치를 넘어서야 경제적 효용 가치가 있다는 경제학적 개념을 다루고 있다는 해설이었다. 시를 읽는 사람들의 다양한 정신세계가 흥미로울 뿐이다. 


‘가지 않은 길’의 여러 번역본 중 피천득의 번역이 가장 좋아 여기 옮겨본다. 


가지 않은 길

노란 숲 속에 길이 두 갈래로 났었습니다.
 나는 두 길을 다 가지 못하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면서,
 오랫동안 서서 한 길이 굽어 꺾여 내려간 데까지,
 바라다볼 수 있는 데까지 멀리 바라다보았습니다.

그리고, 똑같이 아름다운 다른 길을 택했습니다.
 그 길에는 풀이 더 있고 사람이 걸은 자취가 적어, 아마 더 걸어야 될 길이라고 나는 생각했었던 게지요.
 그 길을 걸으므로, 그 길도 거의 같아질 것이지만.

그날 아침 두 길에는
 낙엽을 밟은 자취는 없었습니다.
 아, 나는 다음 날을 위하여 한 길은 남겨 두었습니다.
 길은 길에 연하여 끝없으므로
 내가 다시 돌아올 것을 의심하면서….

훗날에 훗날에 나는 어디선가
 한숨을 쉬며 이야기할 것입니다.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다고,
 나는 사람이 적게 간 길을 택하였다고,
 그리고 그것 때문에 모든 것이 달라졌다고.


가을이 깊어가는 어느 날, 두툼한 재킷을 덧입고 산책을 나간 당신을 상상해 보라. 사방이 아름다운 단풍으로 물들어 있고 어젯밤 내린 비로 촉촉한 낙엽이 산길을 울긋불긋 장식하고 있는 그런 날이다. 조붓한 오솔길을 따라가던 당신은 갈림길을 만난다. 똑같이 아름다운 길 중 하나를 택했고, 당신은 몇 번의 이런 망설여지는 선택을 하며 산책을 끝맺었다. 


산책에서 돌아온 당신에게 든 생각이 ‘오늘 선택은 정말 좋았어. 최고의 길을 택해서 오늘 산책은 성공적이었다고 할 수 있어’ 일까? 아마 쇼핑을 갔으면 그럴 수도 있었을 것이다, ‘A 시장에 가길 잘했어. 반값 세일을 했거든. B 시장은 30% 밖에 세일을 안 했는데, B 시장부터 갔었으면 거기서 살 뻔했어’처럼. 그러나, 그것이 산책에서 돌아온 사람의 반응일 수는 없다. 산책에서 돌아온 당신은 아마 이렇게 말할 것이다, ‘정말 아름다웠어. 간밤의 비로 단풍의 색은 더욱 깊어져서 마치 공기마저도 색깔이 있는 것 같았어. 아! 단풍이 바람에 날려 땅에 내려앉을 때는 황홀하기까지 했어. 너도 같이 갔었으면 좋았을걸’. 한편, 당신은 이런 생각도 들 것이다. ‘다음엔 다른 길도 가봐야지… 그쪽도 정말 아름다울 거야. 그런데 가을이 가기 전에 시간을 낼 수 있을까?’ 아쉬움과 그리움이 교차하며 가지 않은 길이 마음에 담길 것이다.


이 시는 선택에 관한 것이 아니며, 기회비용에 관한 것은 더더욱 아니고, 우리의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란 말을 해주려는 것도 아닌 것 같다. 이 시는 산책을 닮은 삶에 관한 시인 것 같다. 우리의 삶은 이성적으로 생각해서 선택한 것과, ‘느낌적인 느낌’으로 선택한 것뿐만 아니라, 공간적∙시간적 제한으로 선택되지 않은 그 어떤 것도 아우른다. 산책 중 선택하지 않은 길이 아쉬움과 궁금함을 불러와 그 산책의 감정을 마무리하듯, 삶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많은 경우, 가지 않은 길은 가야만 했던 길도 아니고, 가면 좋았을 길도 아니며, 결코 가서는 안 되었던 길도 아니다. 그 길은 인생이라는 지도에 담긴 미답의 영역, 당신 인생의 아마존이다. 그래서 당신은 ‘길은 길에 연하여 끝없으므로 (다시 돌아온다는 것을) 의심하지만…’ 당신이 눈길을 주었던 그 길은 당신을 쉬게 하고, 가끔은 울게 하고, 무의식 중에 입에 물게 되는 미소가 될 수도 있다. 결국, 당신은 그 길을 영 모른다 할 수 없을 것이다.   


피천득이 번역한 프로스트의 시를 읽다 보니, 그의 글 중 ‘인연’이라는 수필이 문득 생각난다. 피천득은 춘천에 있는 성심여대로부터 출강 제의를 받고 일본에서 지었던 작은 인연을 추억한다. 동경의 성심학원 초등부에 막 입학한 아사코를 만난 때는 그가 열일곱 살이 되던 해였다. 아사코는 그를 오빠처럼 잘 따르는 귀여운 여자아이였다. 십여 년이 훌쩍 지나 두 번째 만났을 때, 아사코는 바야흐로 젊음이 만개한 성심여학원 대학부 3학년, 스무 살 처녀가 되어 있었다. 피천득은 잠시 그녀와의 결혼을 꿈꾸었으나, 그뿐이었다. 십수 년의 세월이 다시 흘러 아사코는 피천득의 인생을 다시 한번 가로지른다. 그러나 아사코는 ‘백합처럼 시들어 가’는 가정주부가 되어 있었다. 결국 그들은 ‘절을 몇 번씩 하고 악수도 없이 헤어졌다.’ 마지막 만남 후에 피천득은 그녀와의 재회를 후회하며, ‘세 번째는 아니 만났어야 좋았을’ 것이라 생각한다 (인류의 첫사랑이 무너지는 보편 진리를 여기서도 만난다). 그럼에도 성심여대로부터 출강 제의를 받았을 때, 그는 그 제의를 수락한다. 성심여대는 세월에 사위어 가는 아사코뿐만 아니라, 처음 만났던 일곱 살의 아사코와 스무 살의 아사코도 한꺼번에 기억에서 일으켜 세웠을 테니까. 그 기억은 불가피하게 청춘의 피천득도 불러와 어린 아사코 앞에 세울 것이다. 가지 않은 길에는 박제된 시간도 있다.  


작가의 이전글 벗님내방 인생동행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