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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정한 여유 Nov 19. 2024

빽빽하게 채울 줄 알았던 착각 [요란했던 10월]

10월의 결산을 11월을 마쳐가는 즈음에 하는 것은 과연 어떤 의미가 있을까. 역대급으로 정신없었던 10월을 덮어놓고 싶었던 마음을 더 이상 모른 척할 수가 없다. 10월을 결산하지 않으면 11월 결산도 할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11월의 목표 중 하나는 11월 결산 글을 11월이 다 가기 전에 쓰는 것이다. 그러려면 10월 결산을 해야만 한다. 마주하지 않는다고 없어지지 않는 것이라면 빨리 마주해야 한다. 알면서도 자꾸만 회피하고 싶은 것은 용기가 없어서일지도 모른다. 더 이상 뒷걸음질 칠 수 없어 10월을 돌아본다.




10월은 매우 바쁘고 정신이 없었다. 어디서 그런 의욕이 샘솟았는지 뭘 많이도 신청했더란다. 매번 신청하고 도전하는 것이 늘 하는 것이었는데 10월 했던 것들이 유독 스케일이 컸던 것 같다. 그것들이 마구 겹쳐있으니 제대로 해내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을지 모른다. 결과가 뻔히 보였지만 해내고 싶은 마음에 쳐내지 않고 그대로 밀고 나갔다. 하지만 그것은 예고된 쓰나미였고, 제대로 된 대비책 없이 무방비 상태로 있었던 나를 폐허로 만들었다.

출판사에서 진행한 매일 글쓰기 프로그램, 작가님이 진행하는 글쓰기 수업, 출판 과정에 대해 배우고 실습하는 과정, 브런치 북 연재, SNS에서 신청한 여러 인증프로그램, 필사 모임과 독서 모임이 네댓 개씩이었다. 매일 써야 하는 글이 2-3편씩 되었고, 하루에 인증을 몇 개씩 했는지 모른다. 지나고 나서 인증을 했던가 기억이 나지 않아서 다시 들어가 보고, 인증한 줄 알고 넘어갔는데 안 하고 넘어가기도 했다. 매일 아침 눈앞에 산더미 같은 일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한 치 앞을 보지 못하는 어리석은 자가 만든 고난의 산처럼 느껴졌지만, 처음에는 의욕을 가지고 하나씩 하나씩 치워갔다. 시야가 훤해질 때쯤 다시 쌓인다. 마감과 과제가 주는 위력을 믿는다. 꼼꼼하고 완벽하지 못한 성격 탓에 질보다 양이라고 믿는다. 어찌어찌 꾸역꾸역 하다 보면 분명 성장할 거라고 믿었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니라는 말은 혹시 이럴 때 쓰는 말이 아닐지 의문이 들었다. 끝이 보이지 않는 할 일에 조금씩 지쳐서 한계에 다다르고 있었다. 의욕에 넘치던 월초의 나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겨우겨우 하고 있었다. 백지장 같던 과제지만 하나둘씩 쌓이더니 천근만근이 되어 나를 짓누르고 있었다. 결국 10월 말에 난 제대로 몸살이 났다.


<10월의 목표>
계단 오르기, 글 응모 3편, 감사일기 완주, 매일아침 다이어리에 할 일 적기, 브런치 응모하기, 집 정돈하기

계단 오르기 8일, 글 응모 0편, 감사 일기 미완주, 할 일 적기 5일, 브런치 미응모, 집 정돈 전혀. 이것이 나의 처참한 10월이었다. 이걸 마주하기 싫어서 자꾸만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결산 글을 쓰지 않았다. 물을 하루에 2-3L씩 마셨는데 턱에 구멍이 뚫린 듯, 몸속으로 제대로 들어간 물은 한 방울도 없었다. 여기저기 소문날 정도로 요란했지만, 도착지에서 살펴보니 빈 수레였다는 사실. 하하하하하하. 그저 웃는다. 다만 바라는 것은, 물을 붓고 부어도 남아있는 것은 없지만 스쳐 지나가면서 콩나물을 키우듯 어떤 것에는 도움이 되었기를 하는 것이다. 어떤 실패도 실패에서 끝나는 것은 없다고 한다. 그 실패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지, 무엇을 얻어낼 것인지가 중요하다. 목표를 달성하는 것은 실패했지만 목표를 이루려고 노력했던 과정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비록 훌륭한 결과물이 없어도 애썼던 시간까지 못난 것은 아니다. 읽던 책에서 발견한 구절에 용기를 낼 수 있었다.


깨달음의 길을 따라가면 거기에는 그런 것들이 실패도, 당신이 만들어낸 결과도 아님을 알게 될 겁니다. 해야 할 질문은 결과를 만들어내고 있느냐 아니냐가 아니라 자신이 만들어낸 결과로 무엇을 하느냐는 것입니다.
『인생의 태도』웨인 다이어.  


<11월 목표>
11월 결산저널 11월 전에 쓰기, 자기 전에 할 일 적어보기, 다음 독서 모임 계획하기, 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하는 일의 균형점 찾기, 일찍 일어나면 모닝페이지 써보기, 지하철에서 내려서 걸어보기

10월에 뻗어버린 결과, 11월 목표에는 틈을 두려 했다. 아무리 하는 과정이 중요하다지만 과정만을 위해 목표를 세우는 것은 아니다. 해냈을 때의 뿌듯함을 위해 조정해 본다. '일찍 일어나면'이라는 단서를 붙여보기도 하고 '걸어보기'라며 시도에 무게를 두기도 했다. 가장 하고 싶은 일은 '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하는 일의 균형점 찾기'일 것이다. 아직도 나의 한계와 능력을 알지 못했다는 것이 부끄럽기도 하지만 뻗어봐야 아는 것도 있다. 뻗어봐야 그 끝을 볼 수 있고, 닿은 그 끝을 슬쩍 밀어볼 수도 있다. 역시 뭐든 해봐야 안다. 아직 해내지 못해도 괜찮다. 해봐야 해낼 수 있다. 나는 해내는 중일 것이다. 해내기까지 한걸음이 남았을지, 백 걸음이 남았을지는 모른다. 중요한 것은 시작 전보다는 도착지에 가까워졌다는 것이다.




<월간 여유>에 글을 12개를 모두 쓰고 나면 한 해가 간다. 글 1개에 한 달의 시간과 마음과 생각이 담겨있다. 결산글을 통해 정리하며 다음을 바라볼 수 있는 소중한 기회였다. 글이 아주 유용한 정리 도구라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는다. 이렇게 의외의 곳에서 정리를 배운다. 그러다 보면 다른 정리도 잘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슬며시 기대한다.

남은 날보다 지난 날이 더 많은 11월이다. 글 쓰며 그 사실을 다시 깨달을 수 있어서 참 다행이다. 곧 11월 결산글로 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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