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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물 Jun 09. 2022

38세, 실업의 강을 건너며...

경제학이 해준 심리상담

그래, 나는 백수가 아니었다.  조바심내며 "백수"라는 단어를 국어사전에서 찾아보았다. 

백수: 명사 돈 한 푼없이 빈둥거리며 놀고먹는 건달.

그렇지.. 나는 자발적 실업을 하고, 하루 하루 나름의 방식으로 상처 받은 내면을 치유하고 있는 환자이자, 독서를 하고 클래식을 듣는 교양인이자, 하나밖에 없는 가족 구성원인 남편을 위해 집안일을하는 주부이다. 

그러니까 돈 한 푼없이 빈둥거리며 놀고 먹는 건달은 아니란 말이다!!  


30대 후반, 아이없는 기혼 여성, 벌써 여러번 실업을 경험하고도 다시 자발적으로 실업의 길로 들어섰다. 

그래도 서른 다섯살 까지는 꾀 이직 시장에서 먹혔었다. 나름 몇번의 이직을 경험하면서 급여는 올라가고 있었다.  


그 때 그 빛바랜 자신감이 고독한 대한민국 여성을 다시 꼬득였다. 회사에서의 갈등은 곧 트리거가 되어 다니던 회사를 때려치우고 기나긴 방황의 늪으로 제 발로 걸어 들어갔다.

잘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정도 회사는 금방 다시 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삼십대 후반의 1년은 곧 이십대로 치면 5년, 아니 10년을 의미할 수도 있다는 것을 모른 채 또 실업의 길로 들어서 버렸던 것이었다.


나의 바람과는 달리 시간은 제곱의 비율로 빨리 흐르고 나는 늙고 있었다.  

조급해 진다. 조급해 지면 올바른 상황 판단을 할 수 없는법.. 그렇게 옳지 않은 결정으로 또 몇 번의 적응에 실패하고 실업자가 된 나는 제대로 된 목표를 잃어버린 채 과거의 영광, 상처 속에 매일 매일 내 자신감을 갉아먹는 것이 직업이 되었다. 그런데 더이상 갉아먹을 자신감도 없어질 때, 바닥을 쳤으니 올라가는 일만 남았다는 말이 나에게 들어 맞았다.


신기하게도 내 영혼은 나름의 돌파구를 찾으려 하고 있었다. 조급증으로 뿌옇게 보이지 않아 생사확인 조차 되지 않던 자아가 가끔씩 선명하게 빛을 내며 생기를 되찾으려 했다. 

강아지를 기르기 시작했다.

성당에 열심히 다녀보려고 했고, 묵주기도도 바쳤다. 

하지만 꾸준히 마음을 두지 못하니, 운동, 자기계발관련 서적, 심리치료 서적을 읽었다.

그래도 진득하게 회사를 다니지 못하니, 목수, 귀농등을 알아보다가 자본과 체력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 다시 구직 사이트를 들여다 본다. 

아니다. 이렇게는 안되겠다. 

일기를 쓰자. 글을 쓰자. 그리고 제대로된 하루를 살자. 조급해하지 말고 지금 이 순간을 살고 있는 나를 선명하게 바라보자. 

조급함과 불안의 철창으로 나를 가두고 가만히 침잠하는 형집행을 멈추고 나의 자아를 해방시키리라. 


놀랍게도 해방의 계기가 된 책은 경제학 책이었다. 그동안 의도적으로 나를 치료한다는 명목하에 읽어왔던 심리학책, 자기계발서, 소설은 나에게 적극적인 동기부여가 되지 못했다. 

부끄럽게도 나는 조금의 공감도 할 수 없는 상태로, 누군가에게 시원하게 욕설을 하며 나의 불행을 점염시키고 싶은 바이러스와 같은 상태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연히도 남편의 권유로 읽어야 했던 오랫동안 미뤄와서 책상에 방치되었던 경제학 입문서가 나에게 뜻밖의 위로로 답답한 철창에서 제발로 걸어나올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던 것이다. 


그 경제학 책에서는 산업혁명이후의 인류의 정치경제학적 역사를 주제로 현재 자본주의 시장경제가 성립되게된 배경을 상세히 기술하였다. 

그 속에서 나의 실업상황은 오로지 나의 무능력, 비정치적인 사내 인간관계 때문이 아니었다는 나만의 기적의 논리를 차근차근 쌓아가고 있었다. 


이것은 단순히 미움받을 용기나 소통능력 이론과 같은 이른 바 정신적이거나 개인의 문제에서 해결책을 제시하는 책이 아니라, 이 사회의 부조리에 민감하고 용감하게 반응하는 개인의 정의, 반항과 연결지을 수 있는 문제 의식을 제시하였다. 


그렇다. 작은 바이러스 같은 일이 국가, 사회의 일로 커져버렸다. 그렇게 나의 실업에 대한 문제의식이 커지니, 반대로 나를 옥죄어 왔던 불안과 조급증이 조금은 해소된 것 같다. 

이른바, 나의 실업문제가 단순히 나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구조의 문제라면 개인이 거스르거나 깨부실 수 없으니 무기력해지는 게 맞는데 나는 놀랍게도 반대로 반응하고 있었다. 


왜 이런 반응을 하는 지 곰곰히 생각해 보았다. 

나는 그동안 큰 그림을 보지 못했다. 정치와 경제가 연결되어 있는 구조를 보지 못했다. 

경제입문학 책에서 배운 논리를 이용하여, 정치경제학을 개미와 같은 현대 사회의 개인의 일생에 적용해보았다. 개인이 일생동안 회사에서 하는 정치는 매출성장, 혹은 부진과 같은 회사의 큰 흐름 속에서 번성하거나 살아남는 방법이고, 경제는 조직속의 개개인의 역량, 기술이다.


나는 그 동안 경제만 보았다. 경제만 성장시키면 나라는 인간은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자격증을 따고 또 따고, 경력을 만들고, 화려한 언변을 위해 자기계발서를 읽었다. 그리고 아주 열심히 일했다.

하지만 내 옆의 동료, 회사의 정책, 타 회사, 국가 등에 관심이 없었다. 그져 소비를 부추기는 상업적 광고와 허세 가득한 글과 이미지, 선동하는 뉴스등에 끊임없이 현혹되어 왔던 것이다. 

경제는 정치위에 서 있다. 즉 국가적 기반시설, 공정한 법 집행, 정책, 치안, 행정이 없으면 열심히 일하는 개인인 경제가 독자적으로 성공할 수 있는 길은 없다. 


이제는 정치를 보자. "나"라는 회사를 이재용과 같은 대기업으로 성장시킬 수 있는 정치 기반은 없어도, 기품있고 존중받으며 건실한 중소기업은 될 수 있다. 

이용할 수 있는 주변 정치 세력과 정치 기반을 점검해 보아야 한다. 

착하기만 한 남편, 일년 남은 전세기간, 얼마 없는 통장 잔고, 사고뭉치 친정이 있지만, 나에게는 빛나는 자격증 몇 개와 나의 정신건강을 책임지는 반려견, 건강, 위험에 빠지면 낡은 밧줄이라도 던져 열심히 당겨 줄 가족이 있다. 눈물겹고 소중한 정치기반이다. 기억하자! 가용할 수 있는 정치기반과 세력을 통해 나라는 개인의 경제는 시너지를 낼 수 있다. 


혼자가 아니다. 외롭지 않다. 

시간은 제곱으로 빨리 가지만, 나에게는 가용할 수 있는 정치 수단을 통해 나의 경제는 번영할 수 있으리라. 

정치와 경제, 시너지 호과는 시간의 감가상각을 상쇄하고도 남을 것이다!! 

그러니 힘을 내고, 나와 나의 정치 기반을 믿고, 의지하고 키우자!    

내가 나의 정치를 포기하고 외면한다면 결고 경제는 번성할 수 없다. 

정치 경제는 하나이다.  나는 혼자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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