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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근 May 25. 2024

여름, 고통 그리고 생애 첫 위로.

유난히 뜨거웠던 여름, 그 고통의 날들과 내 삶의 최고의 스승.

 

북미의 새파란 하늘과 넓은 초원의 푸르른 잔디. 그 위로 피어오른 커다란 뭉게구름들. 뜨거운 태양의 온기를 담은 산들바람. 열댓 명의 사람들이 돗자리 위에서 즐겁게 웃고 떠드는 소리. 그 아름다운 풍경 속 한 여자가 같이 있던 무리로 벗어나 숨을 헐떡이며 불안해하고 있다.


 즐겁게 떠들고 놀던 자리. 그녀는 갑자기 심장이 빨리 뛰는 것을 느꼈다. 처음엔 별일 아니겠거니 하던 생각도 잠시, 그녀는 더욱더 빨라지는 심장에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왜 이러지?’ 불안해하던 와중, 그녀는 인터넷에서 스쳐 지나가다 본 심장마비 정보가 생각났다. 불안함이 엄습해 오기 시작했다. 마음이 요동친다. 그에 동하듯 그녀의 심장도 더 빨리 움직인다. 이제 자신의 심장소리가 귀에 들려오는 듯하다. 그녀는 무서워진 마음에 급하게 자리를 이탈했다.

 그녀는 어찌할 바를 몰라 안절부절못했고 심장은 여전히 빨리 뛰었다.

 ‘이러다 죽는 거 아니야? 어떡하지, 어떡하지?’

 그녀는 당황해 누구에게 도움을 청할 생각도 못하고 잔디밭 위를 서성였다.

 ‘뭐지? 왜 이러는 거지? 심근경색 같은 건가? 아프진 않은데.‘

 불 안정하고 날카로운 생각들이 그녀의 머리를 계속 스쳐지나갔다. 그녀는 여전히 계속 잔디밭 위를 걸었다. 그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들이 얼마나 지났을까. 이전까지 엄청나게 빨랐던 심장이 차츰차츰 안정을 찾아가는 것이 느껴졌다. 심장이 점차 차분해 짐에 따라 그녀의 날 선 생각들도 점차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녀의 숨소리가 점점 고요해진다. 이제 슬슬 주변이 보이기 시작한다. 한참을 걸었더니 그녀의 무리는 이미 사라진 지 오랬였다. 등 뒤로 땀 한줄기가 흐른다. 어딜지 모를 곳. 그녀 앞엔 자연이 아름다운 여름날의 풍경을 보여주고 있었다.

 뜨거운 바람이 다정하게 그녀의 머리를 훓어내렸다. 머리 위로 태양은 이글거렸고, 마치 하늘에 떠다니는 하나의 요새 같은 뭉게구름이 그녀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평화로운  풍경에 그녀는 이제 다시 안정을 찾았다. 원인 모를 심박수의 이상 신호. 그녀는 그렇게 기피하던 병원에 가야겠다고 다짐했다.

 

 



 “심장엔 이상이 없어요.”

 혈압을 재고 심박수까지 확인한 의사가 말했다.

 “그럼 심리적으로 이야기해봅시다.”

 의사의 말에 그녀는 좌절했다. 그녀는 의사가 그렇게 말하지 않기를 바랐었다. 그녀는 울 것 같은 표정으로 고개를 떨궜다.


 그날 초원에서 심장이 빨리 뛰는 걸 겪은 그녀는 집에 돌아와 병원에 가기 전 자신의 증상을 검색해 보았다.

 [심박수 빨리 뜀]

 간단한 검색어에도 구글은 성심성의껏 다양한 답변을 내놓았다.  

 ‘최근 20.30대 심장 질환 환자 숙 급증.’

 ‘운동을 효과적으로 하려면 칼로리 보다 심박수에 주목하라’

 ‘심장이 빨리 뛰는 일을 찾고 있나요?’

 무엇을 먼저 봐야 될지 모를 정도로 다양한 주제가 뜨던 중 그녀의 시선을 사로잡은 한 단어가 보였다.

 ‘공황 장애’

 처음 접해보는 단어에 그녀의 마우스 커서가 달칵거렸다. 새로운 페이지가 펼쳐졌고 그 내용은 이러했다.

 ‘현대 사회에서 심리적 불안을 호소하는 사람들 점점 많아져, 정신적 고통에 대한 경감심 더욱이 가중돼’

 ’ 공황 장애란 불안 장애의 일종으로서 심리적인 것이 작용하며, 불안을 느끼지 않아도 되는 상황에서 죽을 것 같은 불안을 느끼는 증상을 말한다.‘

  심리적 요인. 생각지도 못한 정보를 찾아냈다. 그리고 초원에서 느꼈던 날타로운 감정들이 스멀스멀 다시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건강문제라면, 약을 먹고 치료를 받으면 될 일이라고 간단하게 생각했던 그녀는 심리적 요인이라는 말에 난감했다. 어떻게 치료를 해야 되는지, 원인이 무엇인지 전혀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그녀는 다시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들을 제처 두고 부정하려 애썼다.

 ‘아닐 거야. 별거 아닐 거야. 요즘에 인스턴트 많이 먹었잖아. 그것 때문에 적신호가 온 걸 거야. 약 먹으면 나을 거야.’

 그녀는 스스로를 다독였다.


 하지만 지금 그녀 앞의 의사가 다시 한번 질문한다.

 “최근에 정신적으로 힘든 일이 있었어요? 견디기 힘들 일이라거나.”

 의사의 질문에 그녀는 고개를 더욱 떨궜다. 어떻게 해 될지 막막해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그녀가 대답이 없자 의사가 다시 한번 질문했다.

 “아니면 죄책감이 들었던 일이라던가…“

 “… 사실은.”

 의사의 반복되는 질문에 그녀는 자초지종을 털어놓았다. 몇 개월 전 해외 봉사활동을 다녀왔던 그녀는 그 활동지에서 팀장을 맡았었다. 겨우 23살의 어린 나이에도 자신보다 어리거나 나이가 많은 이들을 이끌고 10일 동안 지구 반대편에 있는 어느 개발 도상국의 고아원에 다녀오는 일이었다. 처음에 그들을 잘 이끌고 싶었다는 그녀의 생각과는 달리 활동을 끝내고 집으로 복귀하자 말자 팀원들은 뿔뿔이 흩어지게 되었다. 여행하는 내내 싸늘했던 분위기를 생각하면 당연한 결과였다.

 공항에 도착한 날 이후로 그녀는 많은 감정들에 시달렸다. 하지만 대부분 그녀를 괴롭혔던 감정은 분노였다. 왜 나에게 그런 일이 이어 나야 했는지, 그렇게 열심히 하고 잘해보려고 했는데 왜 일은 그렇게 밖에 될 수 없었는지. 손에서 흩어지는 모래처럼 이미 지나가버려 붙잡을 수 도 없는 것들에 대해 그녀는 원망하고 또, 분노했다.

 그렇게 지내기를 몇 개월. 그녀의 분노와 원망은 그녀를 기어코 병원까지 와 의사 앞에 모든 이야기를 털어놓게 만들었다. 그녀의 이야기를 들은 의사가 입을 열었다.

 “…. 원한다면 약을 처방해 줄 수 있어요. 하지만 먹게 된다면 의존도가 높을 거예요”

 그의 말에 그녀의 눈빛이 흔들렸다. 약의 중독성에 대해 걱정하는 그녀를 보자 그가 한마디 덧붙였다.

 “아니라면 언제든지 와도 좋아요. 이야기를 듣는 것도 일종의 치료가 될 수 있는 방법이니.”

  그녀는 의사의 말에 그저 고맙습니다라고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나 진찰실을 나섰다. 병원 로비로 나가자 리셉션 데스크의 간호사가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Miss, this is your receipt.” “여기, 영수증이에요.”

 “Oh, Thank you.” “아, 감사합니다”

 영수증을 받아 든 그녀는 그 금액을 보고 간호사에게 물었다.

 “I’m sorry, but is this right price? it seems like a bit expensive.” “죄송하지만 이 금액 맞나요? 조금 비싸보는 것 같아서요. “

 “oh, yeah. Since you are a foreigner without a provincial insurance, you have to pay the full price.” “네, 맞아요. 주정부 보험 없는 외국인이셔서 전액을 지불하셔야 돼요. “

 “oh…”

 그녀는 어쩔 수 없이 전액을 지불하고 병원을 나섰다. 구겨진 100 달러짜리 영수증을 손에 쥐고 그녀는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았다.

 의사를 만난 대략 20분의 시간 동안 그녀가 알아낸 건 그렇게나 아니길 바랐던 진단. 하나뿐이었다. 그는 그녀가 원한다면 언제든 병원을 방문해도 좋다고 했지만 구겨진 영수증을 보며 그녀는 그를 다시 만나지 못하리라 생각하며 집으로 향했다.  



-to be contin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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