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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근 Apr 06. 2024

휴식_2

동현 씨의 휴일

 동현 씨는 아직 물기가 남아있는 머리카락을 만지작 거린다. 헤어 스타일이 마음처럼 잘 만들어지지 않아 동현 씨의 미간이 좁혀진다. 몇 분 정도 머리와 씨름을 한 뒤 책상 위에 있는 선크림을 집어 들어 얼굴에 바르고 시간을 확인한다. 12 시 02분. 이제 나가면 된다. 마지막으로 거울 앞에 선다. 옷도 잘 골라 입었고 머리도 마무리되었지만 동현 씨는 오늘따라 자신이 어색해 보였다. 운동으로 붓기는 많이 가라앉았어도 아직까지 남아있는 숙취 때문인지 얼굴은 칙칙해 보였다. 그 칙칙한 얼굴 때문에 평소에 좋아하던 옷도 유난히 따로 노는 기분이 들었다. 아직 외출하기 전인데도 불구하고 동현 씨는 하나부터 열까지 마음에 드는 게 없었다. 거울을 보면 볼수록 점점 나갈 의욕이 사라졌다. 이제 한 시간 뒤면 소개팅으로 여자를 만날 텐데 동현 씨는 이미 신경 썼던 머리를 헝클어버리고 이불속으로 들어가고 싶었다.

 ‘그냥 가만히 있는 거였는데, 괜히 소개팅 받는다고 해서.’

 동현 씨는 일주일 전 다시 친구에게 전화를 건 순간을 후회했다.


 어느 주말 저녁,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었다. 친구는 거두절미하고 자신이 알고 있는 간호사가 있으니 소개를 받아보지 않겠냐고 물어보았다.

 “몇 살인데? “

 “우리보다 네 살 어려.”

 “어떻게 생겼는데?”

 “예쁘장해. 애도 착하고. “

 그래? 동현 씨의 목소리에는 힘이 없었다. 그 시큰둥한 반응에 친구는 관심 없냐고 물었다. 동현 씨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전 여자친구가 생각났다. 그리 길었던 인연은 아니었지만 그녀와의 이별은 동현 씨에게 큰 충격을 남겼다. 이미 헤어진 지 반년도 더 된 이별. 하지만 아직 자신에겐 새로운 누군가는 너무 이른 선택이란 생각이 들었다.

 ”미안한데, 나 지금은 누굴 만나고 싶지 않다. “

 그렇게 말하자 친구는 곧바로 이유를 물었다.

 “야, 혹시 지현이 때문에 그런 거야?”

 전 여자친구의 이름이 언급되자 동현 씨는 그저 아니라고 했다.

 “아니긴 무슨, 걔는 만날 얘가 아니었다니까.”

 친구는 동현 씨와 그녀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고 있었다. 한 동안 결혼 걱정에 전전긍긍하던 동현 씨는 마음에 맞는 짝을 찾기 위해 외적으로도 내적으로도 부단히 노력했던 걸 그의 친구들도 잘 알고 있었다. 그렇게 노력하던 동현 씨는 어느 날 독서 동호회에서 지현을 만났다. 처음 이야기를 나눌 때부터 자신과 가치관이 많이 닮았다고 생각한 여자. 그리고 충분히 매력적이었던 그녀를 보자 동현 씨는 그녀가 자신의 짝이라는 확신을 가졌다. 그리고 사내로서 결단을 내린 그는 이심전심으로 그녀에게 대시했고 결국 바라던 대로 그녀와 연인이 되었다. 원하던 이성과 연인이 되자 동현 씨는 자신감이 물씬 차오르기 시작했다. 예쁜 여자친구를 보며 새삼 자신이 능력 있는 남자가 된 기분이 들었고, 노력하면 안 될 것 없다는 생각에 어깨는 으쓱해졌다. 순조롭게 진행되던 만남에 이대로 밀어붙이면 그녀와의 결혼도 할 수 있을 거라 자신했다.

 관계의 초반, 처음엔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점을 감안하여 동현 씨도 결혼 이야기를 미뤄두기로 했다. 하지만 한 달 두 달이 흐를수록 걱정은 동현 씨의 연애가 순조롭게 진행되게 가만히 두질 않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동현 씨는 자신이 무언가를 하지 않으면 지현과의 관계는 정채 될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결혼 적령기의 자신에겐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단 생각이 몰려왔다.  또다시 걱정에게 휘둘린 동현 씨는 얼마 안 가 지현을 이리저리 부추기며 결혼을 압박하기 시작했다.

 처음 동현 씨가 은근슬쩍 결혼을 언급했을 때, 지현의 반응은 애매모호했다. 지현은 항상 동현 씨의 의견을 받아주는 듯 생각하는 표정을 지었다. 여자를 많이 만나본 남자라면 그게 거절의 의사인 줄 알았을 테지만 안타깝게도 여성의 화술과 설득에 서툴렀던 동현 씨는 지현의 반응을 ‘고려 중’으로 해석하였다. 자신이 지현과 만남을 시작했을 때처럼 노력하면 결혼도 순조로울 것이란 믿음에 지현을 만날 때마다 자신과 지현의 미래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지현은 표정은 점점 굳어갔다. 중간에라도 지현의 그 사소한 변화를 눈치를 챘다면 동현 씨는 말을 멈췄을 테지만 ’ 지현과 자신의 미래‘에 푹 빠져있던 동현 씨는 그 사실을 알지 못했다. 그리고 동현 씨가 지현의 감정을 알아차리게 되었을 땐 이미 너무 늦었었다. 결국 지현은 만난 지 몇 개월이 채 되지 않아 동현 씨가 부담스럽다며 그에게 이별을 고했다. 너무 순식간에 일어난 이별에 동현 씨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며칠 뒤 그나마 정신을 차렸을 땐 다 자신의 잘못이라며, 다그친 게 일을 냈다며 그녀를 붙잡아 보려 연락하려 했지만 그녀는 이미 동현 씨를 전부 차단해 버린 뒤였다. 미련에 울부짖던 동현 씨는 어떻게든 지현을 되찾아보려 애썼지만 얼마 되지 않아 그는 헤어진 지 일주일도 되지 않아 그녀가 다른 남자와 연애를 시작했다는 소식을 동호회의 지인으로부터 들을 수 있었다.

 “사람은 사람으로 잊어라, 동현아”

 전화기 너머로 친구가 말했다. 동현 씨에게는 그만 체념하라는 뜻으로 들렸다.

 “알았어. 생각해 볼게.”

 동현 씨는 얼버무리며 친구와 전화를 끊었다. 전화를 끊은 뒤 동현 씨는 가슴에 무언가 얹힌 듯 답답함이 느껴졌다. 찝찝한 이 기분에 동현 씨는 입에 담배 한 대를 물었다. 친구에겐 감흥 없이 말했지만 사실 마음이 마냥 편치 않았다. 지현과 헤어진 이후 한 동안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고 싶었던 동현 씨였지만 이제 그의 나이는 삼십 대 중반을 바라보고 있다. 주변을 둘러보면 친구들의 반 이상은 이미 결혼을 했거나 결혼을 약속한 짝이 있었다. 지금 바로 누군가를 만나기 시작한다고 하더라도 아마 2년 후에나 결혼할 수 있을 것이다. 더군다나 나이를 먹을수록 이성을 보는 눈은 점점 까다로워졌다. 괜찮은 사람은 이미 다 짝이 있으니 빨리 움직여야 한다는 충고도 들은 적이 있었다. 꼬리를 물어오는 생각에 동현 씨는 갑작스레 마음이 조급해졌다. 지현과의 관계를 휘두르던 걱정들이 다시 동현 씨를 휘두르려 하고 있었다.

 이런 마음으로 새로운 누군가를 만나더라도 그 사람에게 온전히 집중하기 힘들 것 같았지만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는 게 세상이라 했던가, 계획은커녕 동현 씨는 자기 자신의 생각조차 마음대로 흘러가게 둘 수 없었다. 이럴 때일수록 여유로운 자세로 판단해야 하지만 이전 연애로 자신감을 잃어버린 동현 씨에게 여유는 이미 사치품이었다. 분명 연애보다 자신감 회복에 집중하고 싶었을 터인데 결혼에 대한, 미래에 대한 압박감이 밀려오자 이번 소개팅을 놓치면 안 될 것 같아 또다시 마음이 조급해져 왔다. 전화를 끊은 지 얼마나 되었을까, 동현 씨는 이미 핸드폰을 집어 들어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잠시 후 친구는 동현 씨에게 소개받을 여성의 전화번호를 남겨주었다. 번호를 저장하자 메신저에 그녀의 프로필이 떴고 동현 씨는 바로 사진을 확인했다. 화면 속 간호사는 꽃나무 아래서 기분 좋은 듯 웃고 있었다. 사진으로도 선명히 보이는 보조개 덕에 꽤나 귀여워 보이는 여자였다.

 “지현이 닮았네.”

 동현 씨는 혼자 중얼거렸다. 충분히 매력적인 여성이었지만 동현 씨의 마음은 그렇게 동요되지 않았다.


 어느덧 손에 운전대를 손에 잡고 천천히 약속 장소로 향하는 동현 씨였다. 날씨가 좋아 창문을 내리고 달리니 기분 좋은 바람이 볼을 스치고 지나간다. 시내 중심부에 가까워질수록 차가 더 막힌다. 시간은 12시 48분. 내비게이션의 도착시간이 1시 8분을 가리킨다.

 [죄송해요. 차가 많이 막혀서 조금 늦을 것 같아요.]

 여자에게 문자를 보낸 후 핸드폰을 내려놓는다. 창 밖의 차들은 마치 주차장에라도 온 듯 일절 움직일 생각을 않는다. 시간은 약속 시간을 향해 빠르게 흐르고 있었지만  동현 씨의 표정은 오히려 평온하다.

 평온하다. 동현 씨는 지금 이 순간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된다. 창문 너머로 다시 바람이 불어온다. 동현 씨는 잠시 동안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도로 위의 차들을 바라본다. 머릿속이 텅 비어져간다. 생각들이 사라져 간다.

 [좀 쉬어.]

 아침에 확인하지 않았던 재현의 문자가 생각난다. 이제는 좀 쉬라던 재현의 말. 걱정들이 사라지는 지금 어젯밤 재현과 나눴던 말을 다시 생각해 보려던 찰나, 앞의 차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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