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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나린 May 31. 2023

기사를 썼더니, 손가락질이 돌아왔다

< 고래와 거짓말 >

기획 기사를 준비 중이었다.

꽤 쌀쌀한 바람을 맞으며 바닷가 언덕을 올랐던 기억이 어렴풋이 나는 걸 보면, 아무래도 신년호에 내놓을 기획물이었나 보다.

나고 자란 작은 지방도시에서 지역일간지 기자로 밥벌이를 한다는 건 없던 애향심도 솟아오르는 일이다. 박봉에도 펜대를 쥐는 최소한의 명분이었다. 어쩌면 그것이 기자의 사명감이란 거창함보다 현실적일 것이다.


공장을 지나고 또 지나야 만날 수 있는 낡고 작은 바닷가 마을. 공장이 벽처럼 둘러싼 도심의 섬 같은 그 마을은 나의 아버지가 뛰어놀았고, 아버지의 아버지가 고깃배를 몰았던 곳이다.

지금은 꽤 많은 관광사업이 진행 중이지만, 그때만 해도 마을을 둘러싼 청사진이 오락가락했다. 초고층 전망대를 세운다거나, 유스호스텔을 짓는다는 계획은 수십억원에서 수백억원의 추정 예산과 함께 발표되기 무섭게 엎어지길 반복했다.


진심으로 그 마을이 잘 되길 바랐다. 도심 유일한 관광자원이기도 했고, 개인적인 애정이기도 했다.

응원의 마음을 담아 기획물을 발제했다. 유행처럼 번진 스토리텔링에 편승 관광사업에 엮을 마을의 이야기를 찾는 기획물이었다. 훗날 가수가 된 소년이 이 마을 앞바다 갯바위에 앉아 인어 같은 소녀를 그렸다는 이야기같은 것들.

마을에서 이빨이 세다는 남성은 흔쾌히 인터뷰에 응했다. 그는 어린 시절 뛰놀던 동산을 오르는 내내 쉬지 않고 말했다. 꽤나 가파른 경사에도 숨 한번 헐떡이지 않았다. 그의 마음은 한껏 들떠 있었다. 동산 꼭대기에서 바라본 바다가 예뻐서였을까, 그를 향한 카메라에 흥분한 탓일까.


"안 그래도 지난주에 우리가 다 같이 일본 다녀왔잖아. 고래 본다고. 2마리를 새로 들여올 거거든."





생태관 수족관에는 이미 4마리의 고래가 있었다. 수컷 2마리, 암컷 2마리.

그런데 또 고래를 들여온단 말인가. 그렇게 규모가 큰 수족관도 아니었다. 취재수첩에 마구잡이로 물음표를 눌러 그었다. 이번 기획물과는 결이 달랐지만, 그냥 지나칠 수는 없는 내용이었다.

수컷 고래 2마리를 구매해 옮겨오는 데만 2억원의 예산도 이미 편성돼 있었다.

수족관은 지자체 산하 기관이 운영했는데, 기관 담당자들은 서로 짜기라도 한 듯 말을 아꼈다.

전화통화에서 그들은 불쾌과 귀찮음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내년에 수컷 고래 2마리를 데려오실 계획이신가요?"

"아, 예."

"이미 고래 4마리가 있는데, 또 추가로 데려오는 이유가 뭔가요?"

"아, 음. 그냥 뭐, 필요해서요."

"그럼 지금 수족관에 고래 6마리가 살게 되는 건가요?"

"그렇네요."

"지금 있는 애들은 다 건강한거죠?"

"예, 그렇긴 한데요.. 기사를 꼭 쓰셔야 겠어요? 환경단체가 반발할 것 같은데요."


'수족관이 새 식구 맞이에 나선다.'

연말에 보도된 기사는 무미건조했다. 단맛과 쓴맛 가운데 굳이 따지자면 단맛에 가까웠다.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았던 기사는 일주일이 지나 해가 바뀐 뒤에야 갑자기 들끓었다.

환경단체는 비판 성명서를 내고 기자회견을 했다. 수족관은 고래들이 살아가기에 비좁은 공간이라고 지적했다.


'지난해 수족관에서 태어난 새끼 고래가 죽었다.'

회견문 내용이 이상했다.

작년에 새끼 고래가 죽었다는 건 처음 듣는 내용이다. 새끼 고래가 죽은 일이 있긴 했지만, 알려진 건 재작년의 일이었다.

혼란에 빠진 기자실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됐다.

대여섯명의 기자들이 나눠져서 취재를 시작했다. 소속된 매체의 경쟁보다 아귀가 맞지 않는 사실관계를 파악하는 게 먼저인 분위기였다.





하나둘씩 확인되는 내용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재작년 새끼 고래가 죽은 뒤 얼마 안돼 어미 고래는 다시 임신과 출산의 과정을 겪었다. 하지만 새끼 고래는 태어난 지 일주일도 채 되지 않아 폐사했다. 수족관은 시설정비를 이유로 6개월 동안 문을 닫았다. 새끼 고래의 탄생과 죽음은 문서 한장으로도 남지 않았다. 상급기관 보고는 당연히 없었다.

비극은 시설 휴관 중에도 벌어졌다.

고래들은 암수 구분 없이 한 수족관에 있었는데, 암컷을 두고 수컷 2마리의 전쟁이 시작된 거다. 큰 상처를 입은 수컷 1마리는 한달가량 치료를 받다가 죽어버렸다.


새끼 고래는 태어난 적도 없는 생명으로 잊힐 뻔했다.

숨진 수컷은 소리소문 없이 일본에서 건너오는 고래들로 대체될 뻔했다.

수족관 뒷마당 화단 아래 이들의 사체와 함께 묻어버린 끔찍한 진실들이었다.


책임자들이 고개를 숙였다. 고래 2마리의 반입 계획도 철회했다.(물론 시간이 흘러 다시 들여오긴 했다.)

불과 며칠 전 나에게 4마리의 고래가 모두 건강하다고 거짓말을 한 이도 기자회견 단상에 서있었다. 새끼 고래의 폐사 사실을 확인했을 때도 "절대 그런 일 없다"며 딱 잡아떼던 이도 있었다.

"왜 거짓말을 하셨어요?"

그들을 향해 물었다. 이미 엉망진창인 이 상황에서 그들이 내놓을 현명한 답변은 없는데도, 계속 물었다.

대답을 구하는 질문이 아니었다. 질문을 빙자한 비난과 질책이었다.

난리통의 상황도, 기사도 이제 막 종점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몇개월 뒤 이직 제안을 받고 신문사를 옮겼다.

같은 지방도시의 지역일간지니, 쉽게 말하면 경쟁 신문사였다.

스카우트 형태의 이직에도 형식적인 면접은 필요했다. 사실상 인사에 가까운 자리에서 나는 새 직장 상사들의 면면과 함께 귀를 의심할 질문을 마주해야 했다.


"그렇게 요란했다면서? 여기서도 계속 그러면 안 될 텐데."


'요란'이란 건 고래 사건을 말한 거다.

그 일로 지자체와의 대립이 꽤 오래 이어지긴 했다.

사건의 은폐는 단순히 산하 기관이 결정할 수 있는 게 아니었고, 결국 지자체 차원의 문제였다. 하지만 연일 계속되는 비난 여론에도 책임지고 사과하는 이는 없었다. 기관도, 지자체도 뒷짐을 지고 있었다.

출입기자단은 보이콧을 결정했다. 지자체의 홍보성 보도자료를 모조리 거부하겠다는 이 결정을 회사 데스크에도 전했다. 대부분이 혈기 넘치는 젊은 기자들이었다. 지자체와 회사의 관계가 안중에 있을 리도, 그럴 필요성을 느끼지도 않았다.

지자체와 출입기자단의 팽팽한 기싸움이 이어졌다.

기자단은 최종 책임자인 단체장의 사과를 공식적으로 요구했다.

불과 몇달 전만 해도 언론사에 몸 담았던 공보특보가 홍보담당 공무원과 기자실을 오가며 진땀을 뺐다.

하지만 회사의 경영도 신경쓰지 않는 기자들이 각별한 안면도 없는 특보에 전관예우를 차릴 만큼 유연할 리도 만무했다.


어렵사리 단체장과 기자단의 면담이 이뤄졌다. 항의방문에 가까운 면담에서 단체장의 얼굴은 시시때때로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그는 기자들의 질문에 눈을 흘깃거리거나 툴툴거리며 겨우 대답했다. 기자들과 눈조차 마주치지 않는 것으로 불편한 심기를 거듭 드러냈다.

면담 뒤 그는 본인 대신 기관 담당자들을 사과 기자회견장에 세웠다. 자신은 절대 서지 않는 그 카메라 앞으로.


세간에는 내가 기자들을 부추겨 상황을 악화시킨 장본인이라는 말이 떠돌아다녔다. 이 때문에 단체장이 내게 단단히 마음이 상했다는 말도 고명처럼 덧붙었다.


신문사를 옮긴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뒷담화가 돌고 돌아 내 귀에까지 닿았다.

전 직장 데스크가 새 직장 데스크에게 웃으며 했다는 말.


"걔 진짜 컨트롤 안 되는 애인데, 감당할 수 있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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