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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나린 Jun 22. 2023

보이는 것을 믿지 마세요

기자들의 입맛

어린아이가 떠났다.

육신의 마디마다 핏빛이 흐드러졌다.

작디작은 몸에 멍이 들지 않은 곳이 없고, 부서지고 쓸린 상처들은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하고 잊혀졌다.

아이의 계모가 경찰에 붙잡혔다. 수년동안 지속된 계모의 폭력을 묵인하고 방치해 온 아이의 친부도 검거됐다.

세상은 아이의 죽음을 슬퍼했고, 무자비한 계모에 분노했다.


그해에는 유난히 많은 아이들이 하늘의 별이 됐다. 한반도 지도에 장난질이라도 하듯, 전국 곳곳에서 학대사건이 터져 나왔다.

끔찍한 일들이 반복됐다. 다시는 일어나지 않길 바라는 간절함을 세상은 비웃었다. 그것은 기억이 희미해질 때 즈음 불쑥 나타나 세상을 흔들었다.

매 순간 각성시켰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에 '괴물을 무찌른 주인공들은 행복하게 살았습니다'같은 동화 속 헤피엔딩은 없다고. 지금 여기는 끝나지 않는 악몽 같은 거라고.


세상 모든 죽음에 태연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게다가 그것이 어린 생명이라면. 그 생명의 빛을 꺼트려버린 이가 자신의 유일한 울타리라 믿었던 보호자라면.


인터넷 카페가 생겼다. 답답함에 응어리진 분노가 모여들었다. 내 것과 네 것이 쌓여 연대했다. 공감과 연민은 행동으로 이어졌다. 사람들은 학대사건이 벌어진 사건의 도시를 오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이 도시에서는 집회를 하고, 저 도시에서는 재판 방청을 했다.

천리길을 움직이게 하는 힘은 마음속에 부채처럼 쌓인 '무한한 사회적 책임감'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사람들이 모이면 '리더'가 필요하다. 같은 마음으로 모인 이들도 사정은 다를 수밖에 없으니,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집단, 그중에서도 구심점 역할을 할 '리더'가 세워지는 건 자연스러운 수순이다.

인터넷 카페에도 언젠가부터 대표로 불리는 존재가 생겼다.

기자들의 입장에선 반가운 일이었다. 그는 기사를 완성하기 위해 필요한 말을 해주는 사람이었다.

그것은 더이상 적당한 멘트를 해줄 적당한 인물을 찾아 방황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었다.

집회와 재판이 끝나면 기자들과 카메라는 대표를 찾았다. 당연한 일이었다. 여론의 반응을 살피는 짧은 인터뷰가 반복됐다.


경험이 쌓여 능력이 되었을까. 처음엔 어눌했던 대표의 언변이 어느 순간 매끄러워졌다. 가려운 곳을 긁어주듯 원하는 답변을 척척 내놨다. 때론 거창하다 싶은 말도 서슴없이 나왔다.

기자들은 달라진 대표의 모습을 좋아했고, 나 또한 그러했다. 그 모습이 내 일, 다시 말해 기사 쓰기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고개를 갸웃거릴 일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개인적으로 부담스러웠을 뿐, 업무적으로는 오히려 편했다.

그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서는 하나도 관심이 없었다. 인터넷 카페에 모인 평범한 사람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것이 그의 역할이었고, 그 역할을 맡은 이에 대한 검증은 불필요한 일이었다.





아동학대의 처벌을 강화하는 법이 만들어지고, 학대 아동을 보호할 수 있는 제도 개선 논의도 급물살을 탔다.

조금이나마 유의미한 변화가 일어날 때, 온라인 카페는 분열됐다.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말들로 서로를 비난하고 헐뜯었다. 카페 대표 세력과 학대아동의 유족을 포함한 반대 세력으로 나눠져 맹렬하게 대립했다. 누군가가 폭로하면, 반박해명하며 다시 폭로하는 일들이 벌어졌다. 카페 강제탈퇴와 재가입, 반발, 다시 강퇴. 보고만 있어도 속 시끄러운 싸움은 끝끝내 고소고발로 번졌다.

이 카페, 이 모임의 의미가 퇴색되던 순간이었다.


여론 형성이라는 제 역할을 다 했으니, 그만하면 됐다 여겼다. 이제 관심을 거둬야 편했다.

잊고 있던 기억을 끄집어낸 건, 다른 도시의 지역일간지 기자였다.

최근 아동학대 사건으로 인터뷰할 만한 사람을 찾고 있는데, 인터넷 카페 대표는 추천할만하냐고 내게 물었다.

나는 선뜻 대답하지 못하고 우물쭈물거렸다. 그가 아동학대 사건에 대해 깊이 있는 인터뷰를 할 정도의 전문가란 생각은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고심하다 아동학대 사건을 분석해 백서를 발간한 대학교수나 사건 조사 담당자를 찾는 편이 나을 것 같다고 답했다.


나의 얄팍한 생각과는 별개로 그는 이후로도 계속해서 언론에 소비됐고, 성장했다. '전문가'가 된 그를 보며 많은 생각이 스쳐갔다.





작은 도시에서 벌어지는 일이라는 건 뻔하디 뻔하다.

그래도 신문은 매일 찍어야 하고, 지면 수는 정해져 있다. 종잇값이 아깝다고 줄일 수도 없고, 잉크값 핑계로 빈 지면을 내놓을 수도 없다.

면을 채울 글을 쓰는 것, 그것도 좋은 글을 쓰는 게 신문쟁이 기자의 일이다. 기사만 안 쓰면 기자만큼 좋은 직업도 없다는 되지도 않는 헛소리를 하면서도 어떻게든 하루를 때우려면 글감을 찾아야 한다.


매번 일이 터져라고 빌어댈 수는 없으니, 이미 벌어진 일을 크게 키우는 것도 기자의 능력이다.

침소봉대의 대명사라고 해도 별 수 없다.


기존 취재로 이미 방향이 정해진 기사가 영 힘이 없어 보일 때가 있다. 기사를 키우기에는 취재 분량이 절대적으로 적은 경우도 있다.

이대로 기사를 마무리지어도 아무런 문제는 없지만, 기사 끝에 적당한 멘트 한두마디만 붙으면 딱 좋겠다 싶다. 기사의 완성도를 위해 살짝 뿌리는 MSG같은 것.


휴대전화의 연락처 목록에서 적당한 인물을 고른다. 어떤 단체 소속으로 적당한 직위의 직함까지 갖추고 있으면 더할 나위 없다.

전화를 걸어 사정을 설명한다. 이런저런 일들이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시느냐.

문제는 대부분 상대방이 그 일들에 미처 관심이 없어, 전후 사정과 맥락을 잘 모른다는 데 있다.

당황할 필요는 없다. 설명해주면 되는 일이니까.

인터뷰 짬밥을 꽤나 먹은 이들은 장황하게 늘어놓는 내 말속에 이미 정답이 있다는 걸 알고 있다.

"기자님이 적당하게 말을 골라 써주세요"라고 답하는 이들도 있다.


때론, 소위 '그림'을 만들 수 있도록 '조언'이랍시고 미끼를 던지며 싸움을 부추긴다.





시간과 장소, 방식, 멘트, 그림마저도 기자들의 입맛에 맞춰진 것들이 '기사'가 됐다.

그렇게 포장된 것들이 세상에 나와서 사람들에게 소비됐다.

치밀한 이해관계의 결과물. 종종 일어나는 물밑 협상과 막후 조종.

밖에서 보면 이상한 일들이 안에 있을 땐 그저 일상적인 '일'이었다.


앞뒤 순서가 어찌 됐든 벌어지는, 벌어진 일이었다.

그래서 나는 지금 소설 쓰고 앉아있는 게 아니라, 기사를 쓰고 있는 거라 몇번을 되뇌었다.


그래야 일을 할 수 있었다.

기계적으로 일을 한다는 건, 마음 한켠의 불편함이 닳고 닳아 무뎌지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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