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봄나린 Sep 21. 2023

나는 관종이었다

날고 기어도 지역일간지 기자는 할 수 없는 일

기자는 경쟁에 익숙하다. 익숙해야만 한다. 매체는 매체와 경쟁하고, 그 속에서 뛰고 있는 기자는 다른 기자와 경쟁한다. 나의 경쟁자는 경쟁 매체의 기자일 수도 있지만, 때론 같은 매체의 기자가 되기도 한다. 늘 비교 우위의 평가를 받고, 거기서 성취감을 얻는다. 그렇게 기자가 된다. 오랜 기자 생활에서 좀처럼 숨겨지지 않는 특유의 오만함은 여기서 오는 게 틀림 없다. 내가 다른 기자보다 더 낫다는 거만하기 짝이 없는 생각 말이다.


기자 수가 많은 중앙일간지에선 매일 기사를 쓰지 않는다고 하지만, 손이 빠듯한 지역일간지의 기자는 단 하루도 빠지지 않고 매일, 그것도 수많은 기사를 쏟아낸다. 그 중에는 분명 품이 들고 그만큼 애정이 있는 기사도 있고, 단독 기사도 있고, 흔히 말하는 특종 기사도 있다.

그런 기사를 쓴 날 밤에는 좀처럼 잠들지 못했다. 괜한 긴장감에 휩싸이는 시간들이었다. 자정에 가까워진 시간까지 눈이 빠지길 기다려 내 이름 석자가 달린 기사가 포털과 홈페이지에 올라오는 것을 확인해야 잠이 들었다. 혹여나 오탈자가 있진 않은지, 기사 헤드라인이 의도와 다르게 달리진 않았는지 두눈으로 확인해야 했다.(많은 이들이 기사의 제목과 소제목을 취재기자가 작성한다고 생각하지만, 이는 편집기자의 업무영역이다.)


누군가는 애살이라고 했고, 누군가는 욕심이라고 했다. 애살이든 욕심이든 그렇게해야 잠이 들었다.

거의 매번 꿈을 꿨다. 내 기사를 본 사람들의 반응같은 것들이 나오는 꿈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다음날 출입처에 가면 사람들이 뭐라고 할지 가라앉지 않는 기대감에 잠이 들었으니.

대부분 꿈은 현실로 펼쳐졌다. 얼굴을 마주친 출입처 사람들이 "기사 잘 봤다"고 인사했고, 만나지 못한 이들의 짧은 문자메시지도 있었다. 같은 출입처에 나오는 다른 기자들도 한두마디씩 얹었다. 지역방송 기자들이 내 기사를 보고 리포트를 준비하기도 했다.

뿌듯함에 어깨는 끝없이 올라가고 목은 뻣뻣해졌다. 이 맛에 기사 썼지. 비록 하루살이지만.





나는 우물 안의 개구리였다. 그걸 깨닫는 건 어렵지도, 그리 오래 걸리지도 않았다.

이 도시의 시민 대부분은 내가 어떤 기사를 썼는지 알지 못했다. 내가 기사로 쓴 일이 벌어졌는지조차도 알지 못했다. 나의 친구도, 내 부모님도 마찬가지였다.

괜찮았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뉴스에 관심을 가지는 것은 아니니까. 저마다의 삶을 살아내느라 바빴고, 나도 내 일을 하는 것뿐이었다.


그렇다고 해도 그 현실을 숫자로 마주하는 것이 괜찮다는 건 아니었다.

나에게 신문사 홈페이지 관리자 권한이 주어진 날이었다. 제한된 권한이었다. 신문사로 온 제보나 비밀 댓글 정도의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수준.

가장 관심을 끈 것은 홈페이지 귀퉁이에 있는 인기기사였다. 인기기사는 몇명이 본 기사일까. 몇명이 클릭한 걸까. 기사 헤드라인 끄트머리에 달린 괄호 속 숫자를 보는 내 눈을 의심했다. 겨우 채운 세자릿수.


지역일간지의 독자는 이 도시에 살고 있는 시민들이다. 전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중앙일간지와는 규모의 경쟁이 성립되지 않는다. 그런 전제를 바탕에 두고서도, 내 눈앞의 숫자는 믿기 힘들었다. 이 도시의 시민 1%는커녕 0.1%, 혹은 0.01%도 되지 않는 숫자.

간혹, 아주 간혹 1만 단위의 클릭수를 기록하는 기사도 있었다. 그런 날에는 데스크의 입꼬리가 귀에 걸렸다. 싱글벙글 웃으며 "이야~ ○ 기자, 제대로 한건 했다"라는 말을 칭찬이라고 던졌다.

정작 내겐 다른 기사 옆에 달린 숫자들이 더 먼저 와닿았다. 수십명도 보지 않는 기사들.

나는 무슨 기사를 쓰고 있는가. 누가 읽을 기사를 쓰는가. 내 기사는 누구를 위한 것인가.

아무리 되뇌여도 내 기사의 소비자는 몇몇의 공직자와 관계기관, 동종업계 종사자들뿐이었다.

결국 나의 기사는 수요 없는 공급이란 말인가.





국민참여재판은 종일 이어진다. 짧게는 한두달, 길게는 몇년씩 걸리는 재판을 하루에 몰아서 진행하는 거다. 1박 2일로 진행되는 국민참여재판도 있다는데, 내가 경험한 재판 중 가장 긴 시간은 17시간 정도였다.


그날 국민참여재판은 늙은 부부의 이야기였다. 늙고 병든 남편은 세상을 떠났고, 그의 아내가 법정에 섰다. 남편을 죽음에 이르게 한 살인 혐의였다. 남편은 온 몸에 상처를 입고 숨졌고, 아내는 힘 없는 남편이 홀로 넘어지며 생긴 상처라 주장했다. 노부부 둘만 사는 집안에서 벌어진 사건의 목격자는 없었다.

검찰은 증인으로 나선 전문가들의 입을 빌려 아내의 주장을 조목조목 반박했다. 아내의 진술대로 남편이 홀로 넘어졌다면 결코 생길 수 없는 상처들이 주검의 구석구석에 남아있다고. 아내의 변호인도 증인을 세워 반론했다. 검찰의 주장은 정황상 주장일 뿐이라고.

재판은 설득의 과정이다. 그날 배심원들의 설득에 성공한 건 검찰이었다. 한밤중까지 이어진 재판은 아내가 반평생을 함께 한 남편을 죽음으로 밀어넣었다는 결론으로 마무리됐다.


그날 나는 홀로 법정 방청석을 지켰다. 검찰과 변호인 측 증인과 그들의 증언, 공방의 쟁점, 배심원의 평의와 평결, 최종 재판부의 판결까지. 마감시간을 불과 20여분 남기고 난 판결을 정리한 기사를 밀어넣었다. 식사도 건너뛰고 한참 늦은 퇴근을 하면서도 괜시리 뿌듯했다. 집에 돌아와 남편에게 재판의 에피소드를 이야기하는 내내 스스로도 내 얼굴이 상기돼 있다는 걸 느낄 정도였다.


다음날은 휴일이었고, 이른 아침 걸려온 전화 한통에 침대에서 겨우 상체만 일으켰다. 평소 알고 지내던 중앙일간지 기자였다. 조간 신문에 실린 재판 기사를 잘 봤다며, 기사 내용 몇가지를 재차 확인했다. 성실하게 답했고, 그렇게 전화를 끊었다.

어깨가 으쓱하며 전날의 피로가 사라지는 기분이었다.

한두시간 뒤, 그 기자의 기사가 포털사이트 메인에 내걸린 걸 보기 전까진 그랬다.


내가 몇시간은 더 전에 썼던 기사였다. 내가 기사를 잘못 구성한 걸까. 문장이나 사실관계가 부족한 걸까. 토시 하나하나 비교할수록 허탈해졌다. 읽고 또 읽을수록 결론은 하나였다. 내가 지역일간지 기자여서, 내 기사가 지역일간지에 실린 거라서. 하루 종일 법정을 지킨 것도, 볼펜이 손가락마디가 짓눌려 아픈 것도 모르고 취재수첩 몇장을 써내려간 것도 나였는데.


한때는 다른 기자가 내 기사를 받아써주길 바란 적도 있었다. 방송기자든, 통신사 기자든, 중앙지 기자든. 그래야 내 기사가, 그 기사를 쓰기 위해 애쓴 나의 노고를 인정받는 거라 여겼다.

대의적으론, 나와 내 기사가 인정받는 것보다 사실을, 혹은 진실을 더 널리 알리는 것이 더 중요하다 생각했다.

그러나 관심을 갈망하는 마음은 나누면 배가 됐다. 반복된 갈증은 더 깊은 좌절감을 남길 뿐이었다.


나는 누구를 위해 기사를 쓰는가. 나는 무엇을 위해 기사를 쓰는가.  

매거진의 이전글 기자보다 무서운 정치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