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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나린 Apr 20. 2023

제 멋에 취한 구름 위 공상가

< 국문과, 신방과, 기자 >

지독한 평범함.

학창 시절의 나를 정의하자면 지지리도 평범해서 지독하기까지 할 지경이다.

눈에 띄게 공부를 잘하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예체능에 특출 난 재능도 없었다.

수학 문제집이 까맣게 얼룩지면 뿌듯해하다가도, 어른들의 눈을 피해 콜라와 소주를 섞어 홀짝였다.

모범생이라 하기에는 전교 석차가 부족했고, 반항아가 되기엔 겁을 덜 상실했다.


"답이 딱 떨어지는 수학이 좋아."

사칙연산 산수나 풀어대던 같잖은 말이다. 내 수학 지식은 고작 방정식에서 멈췄다. 기하와 벡터는 뭔지도 모른다.

그 가증스러움을 꿈에도 알지 못했던 부모님은 내가 수학교사가 되리라 기대했다. 고등학교 1학년 돌연 '문과'를 선택하리라곤 상상도 못 했으리라.




나는 평균을 조금 웃도는 내신점수로 등록금이 저렴한 지방 국립대에 입학했다. 전공은 국어국문. 인문사회 중에서도 굶어 죽을 걱정을 해야 한다는 소위 굶는과다.

다시 수험생으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기필코 다른 선택을 할 테지만, 그때의 나는 어느 대학이든 국문과로 진학하고 싶었다. 한치 앞도 내다보지 못하는 희미한 현실 감각은 나를 문송의 길 한가운데로 이끌었다.

한때는 출판사 직원과 도서관 사서를 꿈꿨다. 시나리오 작가나 소설가가 되는 모습을 상상했고, 시학에 빠져 대학원 진학 상담을 받기도 했다.


허세다. 분명 스스로에 도취된 허우적거림이었다.

종종 글을 쓰거나 책을 읽는 게 좋았다. 그 행위가 좋았던 것인지, 활자나 종이책 따위의 있어 보이는 것에 대한 집착인지는 알 수 없었다.


일편단심 국문학도는 아니었다. 졸업을 불과 1년 남기고 나는 신문방송학과를 기웃거렸다.

문득 신문기자가 뇌리에 박혔다. 통칭 언론인도 아니고 콕 집어 신문기자였다.

이유는 명확하지 않다. 정치에 관심이 많아진 그 시절 사회 분위기 탓이었던가. 그마저도 글을 쓰고자 하는 욕망이 뒤엉킨 건가. 자기 고향의 지역일간지를 기꺼워하며 얼굴이 상기된 지인에 대한 질투와 동경 때문이던가.

흐르는 시간은 나를 대학교 밖으로 밀어냈다. 더는 대학생이 아닌 신분으로 고향에 돌아왔을 땐 몽롱했다. 뒤통수라도 세게 때려줄 누군가라도 있으면 좋으련만, 그저 각자도생일 뿐이었다.




한달이 속절없이 지났다. 금빛 비단 없이 돌아온 고향은 유난히 춥고 서러웠다. 하루빨리 직장이라는 울타리 안으로 들어가고 싶었다. 몇장 되지도 않는 이력서와 자기소개서가 벌써 지겨웠고, 채용시즌이 아니었으니 그마저 낼 곳도 없었다.

여느 때처럼 온라인 채용공고를 뒤적거리다 지역일간지 수습기자 모집공고가 눈에 띄었다. 역시 인생은 타이밍이다. 그렇게 나는 수습기자가 됐다.


일과의 대부분은 낯선 이들에게 명함을 건네며 스스로를 소개하는 것이었다. 영업사원과 다르지 않았다.

이른 아침 경찰서를 시작으로 시청이나 구·군청, 기업체, 중간중간 다른 신문사와 방송사 선배기자들까지 만나다 보면 하루에 명함 수십장이 사라지는 건 예사였다. 같은 사람에게 몇번씩 명함을 건네는 얼 빠진 실수는 애교다.


저녁이 되면 술에 취했고, 낮에는 수면부족과 숙취에 시달렸다. 대학 새내기 때보다 더한 술자리가 반복됐다. 손끝의 글자 수보다 목구멍으로 털어 넘긴 술잔이 많았다. '음주가무'를 이력서에 쓴 게 화근이었다. 기자는 술을 잘 마셔야 한다는 편견이 만들어낸 네글자는 선배기자의 안주거리였고, 내 족쇄였다.


그런데도 나는 그런 내 모습이 싫지 않았던 것 같다. 솔직하게는 꽤 만족스러웠다.

휴대전화에 늘어나는 전화번호와 셀 수 없이 쌓인 명함의 무게가 그렇게 만들었을까. 청장, 시장, 전무, 상무, 회장, 대표라고 적힌 그 직함에서 우쭐함마저 느꼈던 것 같다. 내 것은 아니지만, 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것 같았다. 부끄러운 집단적 세뇌와 나의 착각일 뿐인데도 말이다.

수습 딱지를 뗐을 땐 세상까진 아니더라도 최소한 이 도시의 중심에 서 있다는 건방짐까지 더해졌다.

목이 뻣뻣해졌고, '기자님' 하고 부르는 아버지뻘의 존대와 그들의 호의를 당연하다 여겼다.


어느날 아버지가 말했다.

"새파랗게 젊은 네가 무섭다고 기자님, 기자님 하면서 고개 숙인다 생각하지 마라. 착각이다. 더러워서 그런다. 더러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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