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 실력 향상기
호주로 떠나기 전, 나는 그 당시 유행하던 영어 공부법인 쉐도잉을 시작했다. 당연히 미드 '프렌즈'와 함께. 하지만 그것도 3화가 되니 지겹기 시작했다. 그들은 날 때부터 미국인인 것을. 꿈도, 생각도 영어로 할 텐데 미국인도 아닌 내가 왜 그들의 스피드를 따라가며 앵무새처럼 말을 달달달 외워야 하는 거지? 하는 반감이 들었다. 그렇게 발만 살짝 담근 쉐도잉 공부 후 호주에 입성했다. 난 어릴 적 가시밭길(?)이었던 스파르타식 영어 사교육의 힘을 믿어보기로 했다. 비행기에서 펜을 달란 내 요청에 패드를 주던 승무원과의 소통 오류는 그저 운이 나빴을 뿐이라며 자신감을 가져보기로.
숙소에서는 물론, 일터에서도 영어를 써야했기에 처음엔 정말 고역이었다. 게다가 호주인들은 영국의 영향을 받은 호주만의 독특한 악센트가 있는데, 호주식 악센트가 찐하게 스민 호주 아저씨들의 말들은 미국식 영어에만 익숙한 나에겐 도통 영어도 뭣도 아닌 외계어로 들릴 때도 허다했다. 일터에서 실수도 빈번했고, 그게 너무 쪽팔려서 실수한 테이블은 두번 다시 가기 싫고, 그런 내 자신이 답답하고 쪽팔려서 못견뎌했다. 발걸음은 물먹은 솜처럼, 식당 입구에서 한숨 대여섯번은 쉬고 출근했었다.
그렇게 고난의 한달이 지나가자 메뉴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을 더듬 더듬이나마 할 수 있게 되었다. (이것도 대본으로 정리해 쉬는 시간마다 한번씩 보고 그랬다) 두달 째가 됐을 땐, 영어 한마디라도 더 하려고 괜히 메뉴 설명을 해보기도 하고, 매일 쓰는 표현은 버퍼링없이, 틀려도 바로 고쳐서 말할 수 있게 됐다. 특히나 취약했던 영어 숫자(특히 예약 시간을 들을 때. 가끔 quarter past two(2시 15분) 등으로 다른 방식으로 말을 하는 사람도 더러 있었기에)도 익숙해졌다.
2달 반째가 되자, 기출 변형식 질문도 당황하지 않고 설명할 수 있게 됐다. 메뉴에 기본적으로 관심이 많고 웨이터를 하나의 전문 직업으로 생각하는 호주 손님들은 웨이터에게 엄청난 질문들을 해대기 때문이다.
예시1 ; 여기있는 맥주 중에 가장 적은 용량이 뭐야?
예시2 ; 이 메뉴엔 어떤 술이 어울려?
예시3 ; 이거이거 시킬껀데 둘이서 나눠먹기 충분해?
예시4 ; (같은 치킨요리) 이거랑 이거랑 무슨 차이점이야?
예시5 ; (한 요리에 여러 소스가 나오는 메뉴)이건 어떻게 먹어야하는거야?
예시6 ; 오늘 사이드 디쉬는 뭐야?
어쨌든 나는 실수를 밥먹듯 하면서 영어로 돈벌며 생존하기를 나름 성공적으로 마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이면에는 인정많던 사장님들이 있었기에 나도 한 곳에서 오랫동안 일할 수 있었다.
사장님들은 생일마다, 호주의 기념일마다 나에게 이런저런 이벤트를 해주셨고, 시급도 올려주셨다. 나는 호주생활을 시작으로 내 영어에 대한 자신감이 붙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