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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비 Apr 02. 2024

엄마, '넌 특별해' 필터는 OFF할 때야

고슴도치도 제 새끼는 함함한다지. 우리 엄마 고슴도치는 참으로 그랬다. 그닥 행복하지 않던 결혼 생활을 보낸 우리 엄마는 나에게 어떤 '특별함' 필터를 씌워 당신 스스로 위로를 받았던 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필터'란 OFF하면 그만. 아버지와의 말다툼이 끝나면 엄마는 늘 조용히 책을 읽는 내 옆에 찾아와 '나중에 커서 뭐가 될거야?' 라고 묻곤 했다. 답이 정해진 질문처럼 느껴졌다. '서울대 가서 선생님 할거야' 그냥 엄마가 좋아할 것 같은 대답을 했다. 집안의 냉랭한 공기와, 엄마의 측은한 눈빛이 '그래, 그게 정답이야'고 말하는 것만 같았다.



그러나 살아갈수록 나는 특별하지 않다는걸 매 순간 느꼈다. 그러나 우리 엄마는 아니었다. 끊임없이 엄마 고슴도치가 되어 나에 대한 기대치를 낮추지 않았다. 그래서 난 '도달할 수 없는 나'에 닿으려 열심히 내 인생을 허우적댔다. 결국엔 특별할 것 없는 경험 제로인 사회초년생으로써 월200 인생을 시작할 때도, 지긋지긋한 무한 야근에서 벗어나 퇴사를 질렀을 때도, 우리 엄마는, 그리고 나는 그 끝엔 어떤 특별함이 있겠지하며 텅빈 상자를 계속 뒤지는 짓을 계속했다.


"넌 어릴 때부터 외골수여서 생각을 알기 어려웠어."

그렇게 호주로 워킹홀리데이를 결정하고 엄마에게 통보하다시피 출발 날짜를 얘기했을 때다. 내 결정에 원망 섞인 말로 울먹이며 얘기하던 엄마의 말은 내 뇌리에서 떠나질 않았다.

"그냥 여기서 안정된 직장 가지고 살면 안 되는 거야?", "차라리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해보는게 어떠니?", "남들은 공기업도 척척 붙더라" 퇴사 후 방황하던 나에게 쏟아진 이 모든 말은 나를 결단코 호주로 향하게 하기 딱 좋은 스위치였다. 나에게 특별함 필터를 씌우던 엄마는 어느새 '평균'만 같길 바라고 있었다. 평균이 되는 것마저 어려운 때가 된 것인지, 아니면 나는 원래 평균도 못 미치는 어른이었던 건지 회의감에 젖기도 잠시, 그렇게 호주로 홀로 향해 내 인생을 어떻게 채워나갈지 걱정 한 무더기, 기대 한 올, 두려움 한 움큼, 해방감 한 줌 정도를 들고 출국했다. 그리고 나는 호주에서 6개월 동안 백팩커스(기숙사 형태의 숙소)에서 머물며 많은 것들을 경험했다.


백팩커스에서 여자 혼자 6개월간 살아남기 포스팅

 https://blog.naver.com/rladuswn_/223001768069


 그 곳은 정말 다양한 인간상의 집합소였다. 나처럼 디자인과를 졸업해 해외취업을 하기 위해 페인터로 일하던 이탈리아 친구, 여자친구와 호주 사막을 여행하다 싸움이 나 사막 한가운데 버려졌다 히치하이킹을 해서 도시로 다시 살아돌아온 스페인 친구, 어린왕자 영문버전을 주며 항상 나에게 인류애를 충전시켜주던 칠레 친구, 호주의 끝내주는 날씨에도 하루종일 누워있다 게임만 주구장창 하다가 저녁엔 맥주를 들이키던 프랑스 쌍둥이 형제 등. 그들 사이에서 전형적 한국인 마인드로 열심히 돈을 벌던 나. 그런 나는 언제나 이들 사이에서 '쟨 왜 이렇게 즐기지 못하고 맨날 아등바등 살까'하는 의문을 남기게 했다. 그도 그럴 것이 평일 오후와 저녁엔 레스토랑에서, 평일 새벽엔 이자카야에서, 주말엔 푸드트럭에서 일을 하며, 번 돈을 쓸 시간과 에너지마저 없이 정신없이 일했기 때문이다. 일터로 향하는 30분 동안, 퇴근하고 돌아오는 30분 동안 '나는 왜 호주까지 와서 이렇게 지내는걸까' 하는 의문이 끊이질 않았다. 특별하지 않다면 성실함으로 증명해야 한다는 무언의 압박 때문이었을까?



 열심히 일했던 덕에 팁문화가 없는 호주에서 팁으로 하루에 100달러씩 심심찮게 벌기도 했고, 세컨비자를 따기 위해 공장에서도 주말, 공휴일 특근도 마다않고 일하며 차곡차곡 돈을 쌓긴 했다. 근데 나 뭐 때문에 호주에 온거지? 한국에서도 이렇게 치열하게 살 수 있잖아. 나는 워킹홀리데이를 왔지만 정작 '홀리데이'는 즐길 틈도 없고 그럴 깜냥도 안되는, 참으로 나 스스로에게 각박한 사람이었다. 패기 넘치게 2년도 있겠다며 씩씩하게 지냈던 워홀 시절은, 비록 1년이었지만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호주에서 출근할 때 늘 보던 꼭두새벽의 해돋이


 길을 잃어봐야 새로운 길을 알 수 있다고 했다. 그간 나만의 특별함을 찾기 위해 무던히 길을 잃어온 날들이 결국은 나를 나대로 인정하는 것이 정답이라는 걸 꽤 긴 방황 끝에 얻었다.

후회는 없는 선택이었다. 다만 남들처럼 똑같이 열심히 일했고, 저축했고, 다시 귀국했고, 다시 취업 준비생으로 돌아갔을 때. 그 땐 무언가 잘못됐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나는 다시 내 인생의 방향을 재정립하기 위해 베트남으로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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