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어릴 적 동화 빨간 머리 앤을 읽었을 때 아니 보았을 때입니다. 저는 일본만화드라마로 앤을 처음 보았습니다. 깡 마르고 조잘거리는 것을 좋아하고 언제나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앤을 보면서 저랑 많이 닮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저는 밥을 먹으면서 혼자 공상하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뒤에 있는 그림을 보면서 그 속으로 들어가서 제가 있는 모습을 상상합니다. 밥은 안 먹고 상상을 하는 바람에 부모님께 혼이 나기도 했습니다.
항상 이야기를 끊임없이 하는 앤을 보면서 어린 시절 저와 너무 비슷해서 놀랐습니다. 저도 말이 너무 많아서 아빠가 저에게 ‘촉새’라는 별명을 지어줬을 정도였습니다.
여기저기 참견하기 좋아하고 동네 사람들에게 관심을 많이 가져서 동네 약국 약사선생님하고 친할 정도였습니다. 그 약사분 기억이 나네요. 저의 장난스러운 질문에 대답도 잘해 주셨습니다.
보면서 앤이 느끼는 감정과 왜 그렇게 생각하고 행동하는지 저는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맞아. 나도 그런데...’
하면서 공감되어 감정이입이 쉽게 되었습니다.
앤은 언제나 수수한 옷을 입고 다닙니다. 당시 어깨가 풍성한 드레스가 유행이었지만 앤은 입지 못했습니다. 마닐라 아주머니는 앤에게 그런 옷을 사다 주지 않습니다. 허영심이 든다는 이유였습니다. 같이 사는 매튜 아저씨가 앤에게 선물로 예쁜 드레스를 사 줍니다. 앤이 정말 뛸 듯이 좋아합니다. 이 장면에서 저도 앤과 같이 행복했습니다.
저는 엄마가 머리를 짧은 커트로 자르고 옷도 수수한 옷을 입고 다녔습니다. 같은 여자아이들이 펌을 하고 레이스가 달린 원피스를 입고 다니면 그것이 그렇게 부러웠습니다.
‘나도 저렇게 예쁘게 하고 다니고 싶어.’
그 아이를 보고 저는 그렇게 부러워했습니다. 여자 아이들이 좋아하는 것을 꼭 집어서 앤이 말하여 그 부분이 저의 감성을 건드리기에 충분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피아노학원을 다니고 싶었습니다. 피아노를 잘 치는 여자아이를 남자아이들이 좋아하는 것을 보고 질투가 났습니다. 하지만 저는 피아노학원대신 수학학원에 다녀야만 했습니다.
앤을 보면서 웃기도 하고 짠하기도 하고 눈물도 났습니다. 앤이 성장하는 모습이 나와도 비슷했기 때문입니다.
앤이 거울 속의 자신하고 이야기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거울 속의 나는 나를 잘 알 것도 같고 또 모를 것도 같습니다. 저도 거울을 보면서 저에게 말을 걸어보기도 했습니다.
‘너는 잘 지내니?’
물끄러미 거울 속의 나를 쳐다보면 답을 하는 것 같았습니다. 눈동자를 보면서 어떤 상태인지 알 것만 같았거든요.
앤와 다이애나가 서로 평생 우정의 맹세를 하는 것을 보고 저는 제 친구와 그 맹세를 할 정도였습니다. 그 친구에게 편지 마지막에 ‘너의 영원 친구로부터’라고 꼭 써서 편지를 보냈습니다. 중학교 때 친구인데 아직도 연락을 하고 지냅니다. 가끔 그때 이야기를 하고 웃기도 합니다.
친구가 중요했던 시절이라 친구들과 싸우기도 싸우고 또 친한 친구들과 누구에게도 하지 못한 비밀을 공유하기도 했습니다. 친구들의 각자의 어려움 가령 부모님의 이혼, 아버지의 죽음 등 당시로서는 감당하기 힘든 이야기를 친구들에게 털어놓곤 했습니다.
가끔 앤에게 말을 걸어보기도 했습니다. 왠지 앤은 저의 모든 것을 이해해 줄 것 같았습니다. 가상으로 앤에게 편지를 쓰기도 했습니다.
안녕! 빨간 머리 앤
너를 보면 나를 보는 것 같아.
어쩜 너는 내가 생각하는 것과 똑같은 생각을 하니?
나는 이제 많이 자랐어.
많이 변한 것 같기도 하고 또 그대로인 것 같기도 해.
외모는 많이 변했지만 말이야.
아직도 엉뚱하고 호기심이 많은 너는 그대로겠지?
난 시간이 지나면서
편견이 가득해져서 그전처럼 엉뚱한 생각은 잘 안 드는 것 같아.
지레짐작으로 이럴 것이다라고 결론을 내어 버려.
어릴 적 조잘거림은 이제 많이 사라졌어.
타인에 대한 배려를 하다 보니 나의 개성을 사라져 버려.
그래도 혼자 있을 때면 엉뚱한 내가 뛰어나와.
잘 지내고 내가 종종 연락할게.
너와 아주 많이 닮은 내가
‘내가 왜 이럴까?’
고민이 될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면 가만히 앤과 저를 떠올립니다. 저는 원래 그런 사람인 모양입니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이고 함께 살아나갈 방법을 생각해 봐야겠습니다.
앤을 보면서 저를 떠올리고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를 생각합니다. 그리고 미래의 나를 그려봅니다.
나와 아주 닮은 앤을 저는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