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의 마지막을 예약하기로 했다.
설 연휴의 첫날, 휴대폰 진동 소리가 평소보다 무겁게 울렸습니다. 예감은 빗나가지 않았습니다. 10년 넘게 요양원이라는 좁은 세계에 머물던 외할머니의 시간이 마침내 멈췄다는 소식이었습니다.
서둘러 회사 시스템에 접속해 ‘청원휴가’를 신청했습니다. 화면 속 경조사 입력란이 저를 무표정하게 응시하더군요. 사내 규정상 계좌번호를 적어야 했지만, 잠시 망설이다 빈칸으로 남겨두었습니다. 외할머니의 부고 뒤에 제 계좌번호를 덧붙이는 행위가 어쩐지 너무 서늘하게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죽음이라는 거대한 사건 앞에서 제가 처음으로 마주한 실무는 이토록 차갑고 당혹스러웠습니다.
어디에나 존재하는 관계의 지옥, 요양원
몇 해 전, 외할머니를 뵙기 위해 찾았던 요양원의 풍경은 저에게 일종의 트라우마로 남았습니다. 그곳은 단순히 노인들이 쉬어가는 곳이 아니었습니다. 누군가의 삶이 서서히 풍화되는 과정을 생중계하는 전시장 같았지요. 시설은 형편없었고, 공기 중에는 설명하기 힘든 습한 슬픔이 배어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저를 충격에 빠뜨린 건 할머니의 갈등이었습니다. "옆 침상 할멈이 자꾸 내 물건에 손을 대." 여든이 넘은 노인에게도 인간관계는 여전히 풀리지 않는 숙제였습니다. 어디서나 인간관계는 참 쉽지 않다는 것을 다시금 절감했습니다. 죽음을 목전에 둔 순간까지도 우리는 타인과 부딪히며 상처받아야 하는 존재인 걸까요. 그날 요양원을 나서며 저는 서글픈 결심을 했습니다. '반드시 내 집에서, 내 숨이 익숙한 곳에서 죽고 싶다'라고 말이죠.
그날 이후 저의 식단과 운동 습관이 바뀌었습니다. 지금도 그것을 지키려고 노력 중입니다. 그것은 단순히 건강해지고 싶다는 욕망보다는, 타인에게 제 신체의 주도권을 완전히 넘겨주고 싶지 않다는 처절한 생존 본능에 가까운 것이었습니다.
응급실, 삶과 죽음의 경계가 무너지는 곳
얼마 전까지 잘 지내시던 할머니께 폐렴이 찾아왔고, 응급실에 계신다는 소식을 들어 온 식구가 면회를 다녀왔습니다. 응급실은 요양원보다 더 가혹한 현실을 보여주더군요. 사방에서 인공호흡기에 의지한 채 죽음을 기다리는 어르신들이 가득했습니다.
할머니는 저를 알아보시는 듯 눈을 깜빡이셨지만, 이미 말씀은 하지 못하셨습니다. 마르고 늙고 병든 할머니의 모습을 보는데 인간의 삶이라는 것이 얼마나 허무한지, 슬프기도 하고 복잡한 생각이 밀려왔습니다. 나도 아마 그렇게 나이가 들겠지? 그 질문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장례라는 이름의 생소한 연극
설 연휴 첫날 부고를 접하고 급하게 장례식장으로 향했습니다. 늦게 도착하는 바람에 염을 마친 할머니를 뵙지는 못했지만, 아마 직접 봤다면 큰 충격을 받았을 것 같습니다. 엄마말로는 수액을 많이 맞아서 온몸이 퉁퉁 부은 상태라고 했습니다.
오시는 손님마다 절을 하고, 매 끼니 할머니에게 올리는 제를 지냈습니다. 외숙모가 가입해 둔 상조 업체에서 사람들이 와서 절차를 진행해 주시더군요. 장례 문화는 집안마다, 또 종교에 따라 참 많이 다르다는 것을 새삼 느꼈습니다.
발인 날, 운구할 사람을 정하는 과정에서 고민이 깊었습니다. 명절 연휴이다 보니 지인들을 부르기보다 우리 식구끼리 직접 하기로 했고, 저도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밤에 잠자리에 들면서도 '혹시 나 때문에 관의 균형이 안 잡히면 어쩌나' 하는 걱정에 쉽게 잠들지 못했습니다. 다행히 아침 일찍 상조 직원분이 도와주셔서 큰 부담을 덜 수 있었습니다.
화장장의 연기 속에서 본 나의 미래
어렵게 예약한 화장장에 도착하니 수많은 사람의 화장이 이뤄지고 있었습니다. '아, 이렇게 많은 사람이 매일 죽어가고 있었구나. 그동안 모르고 지냈네'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곳에서 저는 저의 죽음과 장례를 미리 그려보았습니다. 저는 아마 무연고사로 처리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런 제 말을 듣고 식구들은 슬프다고 했지만, 정작 저는 별로 슬프지 않습니다. 죽은 뒤에 어떤 장례를 치르든 그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기 때문입니다.
저는 고독사와 무연사를 담담히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오히려 몸이 정정할 때 안락사를 선택할 계획도 세워두었습니다. 이것은 전혀 슬픈 일이 아닙니다. 우리 모두는 결국 죽으니까요. 중요한 것은 죽음의 형식이 아니라, 살아있는 동안의 존엄이라고 믿습니다.
당신의 마지막 페이지는 어떤 문장인가요?
외할머니의 장례를 치르며 저는 삶의 마지막 페이지를 어떻게 써 내려갈지 깊이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여러분은 혹시 사람이 죽으면 어떤 절차로 장례가 치러지는지 겪어 본 적이 있으신가요? 혹은 자신의 마지막 모습을 상상해 보신 적이 있나요?
할머니가 남긴 마르고 작은 흔적들을 보며, 저는 오늘 하루를 더 정성껏 살아가기로 마음먹습니다.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신가요? 고독사나 안락사에 대한 여러분의 솔직한 견해가 궁금합니다. 댓글로 따뜻한 이야기를 나누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