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 보면, 예고 없이 문이 열립니다. 기쁨이 들어올 때도 있지만 대개는 난처함, 상실, 오해 같은 것들이 먼저 들이닥칩니다. 그 문 앞에서 사람은 저마다 다른 자세로 서게 됩니다.
누군가는 세상이 무너지는 것처럼 주저앉습니다. 숨이 막히고, 앞이 캄캄해지고, “왜 하필 나야?”라는 질문에 오래 붙잡힙니다. 반면 누군가는 어깨를 으쓱하며 말합니다. “세상일이란 참 알다가도 모르지.” 그리고 그 말 끝에, 아주 작은 웃음을 붙입니다.
어느 쪽이 옳고 그르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아픈 건 아픈 대로, 넘기는 건 넘기는 대로 각자의 삶이니까요. 다만 저는 시간이 갈수록 한 가지를 배우게 됩니다. 긍정은 성격이 아니라, 종종 생존에 가까운 기술이라는 것을요.
문제는, 그 기술이 가장 필요할 때 가장 작동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안 좋은 일은 왜 그렇게 공평하지 않을까요. 하나씩, 차례대로 와주면 좋으련만 꼭 “몰빵”으로 옵니다. 불행이 줄줄이 사탕처럼 이어져서, 하나를 아파할 겨를도 없이 다음이 터집니다.
“여기가 끝인가?” 싶으면 더 큰 파도가 들어오고, “이 정도면 됐겠지”라고 생각한 순간, 난이도 높은 챕터가 또 열립니다. 삶은 가끔... 정말 너무 성실하게 우리를 시험합니다. 그럴 때 사람 마음은 쉽게 비뚤어집니다.
내가 실패한 것에 누군가 도전하려 하면, 무심코 딴지를 걸고 싶어 집니다. “내가 해봤는데…”라는 말은 조언처럼 들리지만, 사실은 두려움이 섞여 있을 때가 많습니다. 나는 실패했는데, 저 사람은 성공하면 어떡하지? 그럼 내 실패가 더 선명해지고, 내 무능이 증명되는 것 같고, 내 자리가 좁아지는 것 같아서요. 열등감은 그렇게, 조용히 체면을 두른 채 다가옵니다.
저도 그런 순간이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때마다 아주 단순한 문장을 저에게 건넵니다.
아직 살아 있잖아.
아직 잠잘 집이 있잖아.
오늘 하루를 견딜 몸이 있잖아.
그 말이 대단한 철학처럼 들리진 않습니다. 오히려 너무 평범해서, 처음엔 스스로가 초라해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평범함이 저를 다시 일으켜 세웁니다. 삶이 흔들릴수록 사람을 지탱하는 건, 거창한 이유가 아니라 이런 기본값이라는 걸 알게 됩니다.
우리가 힘든 이유는 대개 “상황” 자체보다, 상황 앞에서 내가 가져야 한다고 믿는 위치 때문입니다. 내 기대치가 높고, 내가 늘 우위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면 지금의 현실은 계속 부족합니다. 그런데 시선을 조금만 옮겨서 “건강하게 살아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기 시작하면, 세상이 달라집니다. 현실이 갑자기 좋아지는 건 아니지만, 현실을 버티는 나의 근육이 생깁니다.
도전은 중요합니다. 기대치와 이상이 높은 사람은 멋집니다. 다만 일상이 매 순간 ‘성취’로만 채워지면, 인간은 쉽게 부러집니다.
그래서 저는 요즘 이렇게 생각합니다. 만족과 새로운 시도는 동시에 병행되어야 한다. 만족은 멈춤이 아니라, 회복의 기반입니다. 실패했을 때 나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 건 “다음엔 더 잘할 거야” 같은 다짐만이 아니라, “지금도 괜찮아”라고 말해주는 태도입니다. 어쩌면 만족은, 실패의 충격을 줄여주는 안전망입니다.
잃을 게 전부처럼 느껴질수록 우리는 더 겁을 먹습니다. 반대로, 최악의 순간에도 살 수 있다는 감각이 생기면 도전은 조금 덜 무섭습니다. 일론 머스크가 사업을 하기 전에 하루 1달러로 살아보는 연습을 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사실 여부를 떠나) 저는 그 이야기의 메시지가 좋습니다.
“망해도 살 수 있다”는 감각이, 사람을 움직이게 한다는 점에서요. 가장 큰 용기는 때때로 ‘자신의 바닥을 확인해도 괜찮다’는 태도에서 나옵니다. 결국 우리는 가진 것을 가지고 죽을 수 없습니다. 남겨놓은 성취, 모아둔 평판, 움켜쥔 자존심도 마지막엔 손을 펴게 됩니다. 우리는 모두 한 줌의 흙이 됩니다. 그러니 삶을 너무 꽉 쥐지 않아도 됩니다. 너무 단단히 붙잡을수록 아픈 건, 대개 내 손바닥이니까요.
그래서 저는 스스로에게 묻습니다. 그리고 당신에게도 묻고 싶습니다. 앞으로 다가올 불행 앞에서, 어떤 태도를 선택하시겠습니까? 안 오면 좋겠지만, 온다는 것쯤은 우리 모두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최소한 이것만은 내가 고를 수 있습니다.
넘어질지라도, 나를 미워하지 않는 태도.
웃을 수 없으면, 숨이라도 고르게 쉬는 태도.
세상이 가혹해 보여도, 나를 포기하지 않는 태도.
삶은 늘 내 편이진 않습니다. 하지만 내 태도만큼은, 내 편으로 둘 수 있습니다. 그게 우리가 끝까지 지킬 수 있는 가장 작고, 가장 강한 선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