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움도, 서러움도, 그저 한 철이었음을

구순의 외할머니와 죽음 앞에서 비로소 보이는 것들

by 윤슬

외할머니가 오늘내일하신다는 소식에 급히 병원을 찾았다. 구순이 넘은 노인의 시간은 병실의 차가운 공기 속에 멈춰 있는 듯했다. 산소 호흡기에 의지해 가쁜 숨을 몰아쉬는 할머니의 몸은 앙상하다 못해 투명하게 느껴질 정도로 말라 있었다. 내가 침대 맡으로 다가가자, 할머니는 나를 알아보시는 듯 힘겹게 눈만 깜빡이셨다. 그 깜빡임이 마치 마지막 인사를 건네는 것 같아 가슴 한구석이 찌릿하게 저려왔다.


병실을 둘러보니 우리 할머니뿐만이 아니었다. 수많은 노인이 가만히 누워 생의 마지막 장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 고요하고 무거운 풍경 속에서, 할머니의 너무나 작고 왜소해진 모습이 유독 눈에 박혔다.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만 같았다. 나이 듦이란, 늙어간다는 것은 참으로 서글픈 일이라는 생각이 뼛속까지 스며들었다.


사실 나는 외할머니를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미워했던 기억이 더 선명하다. 할머니는 유독 친손자와 외손자를 차별하셨다. 어린 마음에 그 차별이 얼마나 서러웠는지 모른다. 명절날 따뜻한 밥 한 그릇, 용돈 한 푼에도 미묘한 온도의 차이가 있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목욕탕에서의 일이다. 어린 나를 데리고 목욕탕에 가시면, 할머니는 늘 그 뜨거운 온탕에 들어가라고 으름장을 놓으셨다. 살이 익을 것 같은 뜨거움을 꾹 참고 견뎌야 했다. 때를 밀 때는 또 어찌나 힘을 주시는지, 살갗이 벗겨질 듯 아파서 할머니와 목욕탕에 가는 날이면 도망치고 싶을 정도였다.


그런데 지금 내 눈앞에 누워 계신 할머니는 뜨거운 탕은커녕, 스스로 물 한 모금 삼키기도 힘겨운 아이 같은 모습이다. 죽음이라는 거대한 파도 앞에서, 바스러질 듯 누워 있는 할머니를 보고 있자니 지난날 내가 품었던 서러움과 미움이 참으로 부질없게 느껴졌다. 다 철부지 같은 생각이었다. 죽음 앞에서는 그토록 거대해 보이던 미움도 한 줌의 먼지처럼 가볍게 흩어지는 것을.


문득 나 자신을 돌아본다. 나 또한 나이가 들어가고 있다. 언젠가 나에게도 저런 순간이 찾아올 것이다. 이렇게 허무하게 흙으로 돌아갈 육신인데, 우리는 무엇을 위해 그토록 아등바등 살아가는 것일까.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그렇기에 우리의 삶이 유한하기에 이 순간이 더욱 소중한 것이 아닐까.


나는 훗날 늙고 병들었을 때를 상상해 본다. 나를 돌봐줄 사람이 곁에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두려움이 앞서기도 한다. 그래서일까, 나는 막연하게나마 다짐한다. 내 존엄을 지킬 수 있는 적당한 때가 온다면, 의학의 힘을 빌려서라도 안락하게 생을 마감하고 싶다고. 내 마지막이 누군가에게 짐이 되거나, 나 스스로에게 비참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죽음을 목도하고 병원을 나서는 길, 현생의 고민들이 참으로 작게 느껴졌다. 승진 문제, 돈 문제, 사람 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들... 죽음이라는 확실한 결말 앞에서는 그저 스쳐 지나가는 바람일 뿐이다.


그러니 남은 생은 좀 더 가볍게, 좀 더 즐겁게 살아야겠다. 봄이 오면 흐드러지게 핀 꽃구경을 가고, 가을이 오면 붉게 물든 단풍을 눈에 담으러 떠나야지. 요즘 유행한다는 '돈쫀쿠(두바이 쫀득 쿠키)'가 그리 맛있다는데, 남들이 줄을 선다 하면 나도 그 틈에 끼어 달콤한 유행을 한 입 베어 물어봐야겠다.


나에게 허락된 시간이 얼마나 남았는지는 신만이 아실 테다. 하지만 그 끝이 언제든, 좋은 사람들과 눈을 맞추고 좋은 것을 나누며 살기에도 인생은 턱없이 짧다. 부디 건강을 잘 챙기고, 꾸준히 공부하며 맑은 정신을 지키고 싶다. 그리하여 먼 훗날, 치매라는 짙은 안개 속을 헤매지 않고, 내가 사랑하는 내 집에서 평온하게 눈을 감을 수 있기를.


할머니의 가쁜 숨소리가 내게 가르쳐준 것은 죽음의 공포가 아니라, 지금 살아 숨 쉬는 이 순간의 찬란함이었다.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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