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살면서 수많은 타인에게 "나의 가장 친한 친구가 되어줄래?"라고 묻곤 합니다. 저에게도 그런 시절이 있었습니다. 계절이 바뀌는 냄새만 맡아도, 길가에 핀 이름 모를 들꽃 하나만 보아도 가장 먼저 떠오르는 얼굴이 있었지요. 학창 시절의 우리는 마치 한 몸처럼 붙어 다녔고, 나이가 들어서도 제게 일어나는 아주 사소한 파동까지 그 친구에게 전송하곤 했습니다. 기쁜 일은 나누면 배가 되고 슬픈 일은 나누면 반이 된다는 옛말을, 우리는 종교처럼 믿으며 서로의 감정 쓰레기통이자 가장 따뜻한 피난처가 되어주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라는 것은 참으로 야속하게도 우리 사이에 보이지 않는 강을 만들더군요. '바쁘다'는 말은 처음에는 핑계처럼 들렸지만, 어느새 서로의 삶을 지탱하느라 버거운 현실이 되어버렸습니다. 더 서글픈 것은 물리적인 시간의 부족함이 아니었습니다. 각자가 겪어내는 삶의 경험치가 달라지면서, 예전에는 눈빛만 봐도 통했던 이야기들이 이제는 긴 설명을 덧붙여야만 겨우 이해받을 수 있는 '타인의 사정'이 되어갔다는 사실입니다. 공감의 밀도가 옅어지자 침묵은 길어졌고, 우리는 어느새 일 년에 한두 번, 생일이나 연말에 의례적인 안부를 묻는 '한때 친했던 사이'로 남게 되었습니다.
그 빈자리가 휑하게 느껴져 외로움에 몸부림치던 밤들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외로움의 끝에서, 저는 아주 놀라운 한 사람을 발견했습니다. 바로 '나 자신'입니다. 타인의 위로를 기다리는 대신, 저는 저에게 집중하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오늘 무엇을 먹고 싶은지, 내 혀끝이 어떤 맛을 그리워하는지 스스로에게 묻고 정성스럽게 요리를 합니다.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식탁이 아니라, 오롯이 나를 대접하기 위한 한 끼를 차려냅니다. 혼자 미술관을 찾아가 그림 앞에 한참을 서 있기도 합니다. 옆 사람의 보폭에 맞추느라, 혹은 지루해할까 봐 눈치를 보느라 스쳐 지나갔던 그림들이 비로소 저에게 말을 걸어옵니다.
여행은 또 어떤가요. 혼자 떠나는 여행은 나 자신과의 긴 데이트와도 같습니다. 누구의 눈치도 볼 필요 없이, 오직 나의 컨디션과 그날의 감정 날씨에 따라 일정을 조율합니다. 볕이 좋은 카페를 발견하면, 창가에 앉아 커피 한 잔을 두고 하염없이 풍경을 바라봅니다. "이제 그만 갈까?"라고 재촉하는 이도, "여기 볼 거 없다"라며 투덜대는 이도 없습니다. 그저 내가 머물고 싶은 만큼 머물고, 떠나고 싶을 때 떠납니다. 몸이 조금이라도 무겁게 느껴지는 날에는 숙소 침대 위에서 하루 종일 뒹굴거리며 게으름을 피워도 누구 하나 뭐라 할 사람이 없습니다. 타인과 함께였다면 배려라는 이름으로 감내했을 감정 노동에서 해방되어, 저는 온전히 나로서 존재합니다.
좋아하는 책을 읽으며 문장 사이를 거닐고, 틈틈이 떠오르는 단상을 글로 옮겨 적습니다. 퇴근길, 문득 낯선 골목이 궁금해지면 망설임 없이 핸들을 꺾거나 발길을 돌립니다. 드라마 속 주인공의 감정에 푹 빠져 울고 웃으며, 운동으로 땀을 흘리며 살아있음을 느낍니다. 이 모든 과정 속에서 저는 깨달았습니다. 나는 꽤 괜찮은 사람이고, 나와 함께하는 시간은 생각보다 훨씬 다정하고 충만하다는 것을요.
이제 저는 타인에게 맹목적으로 의지하지 않습니다. 관계에 연연하며 전전긍긍하던 불안한 마음은, 파도가 지나간 뒤의 바다처럼 고요해졌습니다. 떠날 사람은 자연스레 떠나고, 남을 사람은 굳이 애쓰지 않아도 곁에 남는다는 삶의 이치를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고립이나 단절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나 자신과 단단하게 결속됨으로써, 타인을 향한 집착을 내려놓고 더 건강한 거리감을 유지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나의 가장 친한 친구는 바로 나입니다. 기쁠 때 가장 먼저 축하해 주고, 슬플 때 가장 깊이 다독여줄 수 있는 유일한 사람. 끝까지 내 곁을 지켜줄, 세상에서 가장 믿음직스러운 친구와 저는 오늘도 꽤 잘 지내고 있습니다. 이 다정한 동행이 마음에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