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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벼리 Jun 15. 2023

민들레꽃을 피우기 위해서는


    

  원래 한몸이었으나 이혼한 남· 녀 같은 단어가 있다. ‘향기’와 ‘냄새’가 그것이다. 둘은 그 어감부터 쓰임까지 참 다르다. 향기는 ‘향’하는 첫음절부터 그 단어에서 나오는 상쾌한 기운이 온몸에 여운을 주는 단어이다. 반면 냄새는 ‘냄’하는 그 순간부터 코끝에 고약한 냄새가 나는 듯한 느낌이 들어 눈살이 찌푸려지는 단어이다. 땀이나 똥, 썩은 생선에 향기라는 단어를 붙이지는 않는다. 향기라는 단어는 꽃이나 향수에게 어울리는 말이다. 

     

  이러한 냄새와 향기에 대한 생각은 얼핏 객관적인 듯 보인다. 하지만 냄새와 향기는 유동성이 많아 주관적인 말이다.   

   

  얼마 전 산책길에서 있었던 일이다. 한 젊은 여자가 애완견을 데리고 산책을 나왔다. 공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다. 젊은 여자 주변을 이리저리 뛰던 개가 풀밭에 똥을 누었다. 동물이라면 먹고 싸는 일이 순리니 그럴 수 있다. 그런데 개가 볼일을 끝내자 젊은 여자는 오물을 치우지도 않고 그대로 자리를 떴다. 

     

  아름다워 보이는 산책길 곳곳에 이런 오물들이 폭탄처럼 숨어 있는 듯해서 산책에 나섰다가 불쾌한 기분이 되었다. 흙을 밟을 수 있는 풀밭을 어느 순간 피하게 되었다. 맨발로 걸으면 그 서늘하고 촉촉한 감촉이 참 좋았는데 이제는 그만두어야 할 듯했다.  

     

  나는 흙을 좋아한다. 흙을 많이 밟을 수 있는, 거름 냄새가 나는 밭이 있는 시댁에 가면 고향의 향기를 만난 듯 평안해서 들썩이던 마음이 가라앉는다. 도시에서 만난 똥은 피하고 싶은 오물(냄새)이지만, 시골 흙에서 나는 거름 냄새는 고향의 향기 같다. 

      

  권정생의 동화 ‘강아지똥’을 재미있게 읽었다. 동화에서 강아지똥은 냄새가 난다고 놀리는 새들의 눈총을 받지만, 민들레를 피우기 위한 거름이 되기 위해서 태양의 뜨거움을 견뎌야 하고 주룩주룩 내리는 비도 맞아야 했다. 그래야 거름으로 스며들어 민들레 꽃을 피울 수 있었다.    

  

  냄새가 향기로 피어나기 위해서 어떤 장소에서 쓰이느냐도 중요하지만 쓰임에 필요한 인고의 시간이 필요하다. 똥이 거름이 되듯이, 서로에게 스며들지 못한 젊은 부부가 인내의 시간을 보내고 난 후 향기로운 부부가 되듯이.      (2023.6.13. 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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