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분

by 벼리

<명분>

어떤 말이 소통이 잘 되는가. 보통 우리는 이유가 명확하고 근거를 갖춘 말 앞에서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 그런 훈련을 하며 소통 방법을 배운다. “ 어렸을 때 물에 빠진 경험 때문에 수영을 싫어하게 됐어요.” 이유와 결과, 그 감정까지 잘 드러난 대답이다. 그 대답으로 더 묻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그 아이가 왜 좋아?”

“그냥 좋아”

“왜?”

완결되지 못한 대답은 자꾸 이유를 묻게 된다. 설명되지 않은 감정은 쉽게 신뢰를 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명분은 중요하다. 명분은 사적 대화를 공적 영역으로 전달하는 힘을 갖고 있다. 조선 시대 선비들에게 명분은 목숨과 바꿀만큼 중요했다. 나라를 위해, 도를 위해, 충을 위해 자신의 행동이 사적인 감정이 아님을 정당화했다. 하지만 명분과 명분의 대립으로 치달았던 조선의 말들은 사람의 체온 대신 명분끼리 부딪치며 피로 얼룩졌다.


그들이 명분을 앞세워 숨긴, 진짜 속내는 무엇이었을까. 진짜 그들이 지키려 했던 명분은 ‘신념’이었을까. 명분을 앞세우는 순간 그들이 잃은 것은 무엇이었을까.

명분은 왜 늘 말이 많고, 감정은 침묵해야 하는가. 그들은 명분으로 타인은 침묵시켜 자신의 명분을 높이려 했다. 명분을 저울에 달아 비중을 논하는 말에는 유용했을지 모르지만, 타인을 감동시키지는 못했다. 진실이 결여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냥 좋아”는 진실이다. 진실에 근거를 요구하는 사회, '그냥'이라는 말이 '그렇구나'로 소통되지 않는, 그런 사회를 성숙하다 할 수 있을까. 아니면 감정을 허락하지 않는 통제사회라 할 수 있을까.


설명한 말과 설명되지 않은 말 사이에서 명분은 자주 멈춘다. 명분을 앞세우는 것은 어쩌면 두려움 때문일지 모른다. 내 정체성을 지탱하는 힘이 무너질지 모른다는 두려움. 그 두려움 앞에서 명분은 자꾸 길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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