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마다의 모양

by 벼리

<저 마다의 모양>



최선생과 가끔 여행을 간다. 지난 번에는 강진에 다녀왔다. 돌아오는 길, 우리는 여행 중 보고 느낀 것들을 이야기했다. 함께 보았지만 특별하게 본 것과 감상은 서로 달랐다. 혼자였으면 느끼지 못했을 감상, 미처 보지 못하고 스쳤던 풍경을 서로의 말로 다시 기억하는 시간이 좋았다.


최선생은 햇볓을 많이 받는 쪽 열매 이야기를 하며 즐거워 했고, 나는 응달진 쪽 열매를 보고 안스러워 했다. 같은 풍경 앞에서 우리는 눈길이 달랐다. 같은 일을 겪고도 누구는 안으로 접고, 누구는 밖으로 뻗어 나가듯이. 같은 공기를 마셔도 숨 쉬는 속도와 깊이가 다르듯이 .


저마다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게 하는 힘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 내부에서 오는 걸까. 외부에서 오는 걸까. 칠십 중반의 선배는 살아보니 천성은 바뀌지 않더라고 했다. 함께 모임을 하는 젊은 회원은 자라 온 환경이라 했다. 흥미로운 것은 비교적 세상을 오래 산 이들은 천성이나 기질을 말했고 젊은 쪽은 자라온 환경이라 했다. 하지만 나는 조금 달랐다. 천성이나 환경이라는 말 이외에, 우리가 견뎌온 자리와 설명되지 않은 순간들이 있다고 생각했다.


씨앗을 그늘에 심으면 허약하게 자라고, 햇볕 아래 심으면 억세고 튼튼한 결을 갖는다. 그러나 식물의 성장은 단순히 햇빛의 양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바람과 가뭄같은 외부의 조건에 부딪히며 그 과정 속에서 자기만의 무늬를 만든다.


형제 자매도 마찬가지다. 첫째는 부모의 말이 책임의 전가로 들리고, 둘째에게는 비교의 언어로 들린다. 막내에게는 방치의 언어로 들리기도 한다. 딸이 고등학교에 다닐 때였다. 어느 날 갑자기 울면서 오빠는 잘해주면서 자기는 왜 차별하냐고 물었다. 나는 전혀 그러지 않았는데 딸은 그런 생각이 들었던 모양아다. 시간이 흐른 뒤에 깨닫긴 했지만, 딸의 자리에서 보면 그럴 수 있었다. 그 이후로 딸에게 말을 할 때는 조심했던 기억이 있다.


우리는 각자 다른 자리에서 다른 시선으로 자신을 세우며 살아간다. 그래서 인간은 서로 다른 성격을 가진 존재라기보다, 서로 다른 입력을 하며 적응해 온 존재들일지 모른다. 요즘 나는 사람을 설명할 때 그 사람의 성격보다 그 사람이 지나온 관계들을 먼저 떠올리게 된다.


성격은 혼자 있을 때 만들어지지 않는다. 항상 누군가 앞에서 만들어진다. '나'에서 나오지 않고, '나와 너' 사이에서 나오게 된다. 이 대응 과정에서 우리는 각자 다른 무늬를 갖게 된다.


작가의 이전글도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