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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은거인 Aug 31. 2024

알뜰함과 미련함의 그 어디쯤,


 가을 햇살이 레이저를 쏘아대듯 바쁘게 움직이는 요즘이다.
 논에 벼이삭도 살펴야 하고 밭에 곡식들도 살펴야 한다. 주렁주렁 매달린 과일들에게 맛이 들도록 햇살의 양분을 주어야 하고 숲 속에 사는 짐승들의 먹거리도 챙기려면 시간을 바투 잡고 대지를 살펴야 하기 때문이다.
 


 가을 햇살은 넉넉한 인심으로 게으른 농부의 텃밭도 빠짐없이 챙기고 있다.
  봄에 씨앗만 뿌려 놓고 신경을 쓰지 않아 키만 커다란 참깨 줄기가 층층이 씨방을 달고 위태롭게 서 있다.
  먼저 꽃이 피고 열매를 맺은 아랫것들은 아가리를 벌리며 씨앗을 토해내려 하고 있다.
 늦게 꽃을 피운 꼭대기에 매달린 씨방들은 아직 여물지 않았다.
  위에 것들이 여물 때를 기다리자니 아래서 아가리를 벌리고 있는 것들은 금방이라도 참깨를 토해낼 것 같다.
 궁리 끝에  한 알이라도 떨어질세라 여문 참깨의 씨방을 조심조심 떼어서 양푼에 담았다.
 따가운 가을 햇살이 정수리를 쏘아대니 정신이 아슴아슴하다.
손등은 흐르는 땀을  훔치고 손가락은 참깨의 씨방을 훔친다.
  떼어낸 씨방을 커다란 쟁반에 널었다. 그것을 본 남편이 퉁박을 준다.
 " 미련하게 그게 뭐 하는 짓이여? 그냥 베어내면되지. 언제 그걸 일일이 떼어내고 있어?"
 남편의 퉁박에 기분이 상한 나는 지지 않고 응수했다.
 "그걸 누가 몰라? 베어내면 먼저 여문  깨들이 다 쏟아지잖아! 아까워서 그러지."
 "알뜰함도 병이다. 땡볕에서 땀 흘리며 고생하느니 조금 덜 먹으면 되지!"
  수확 할 참깨의 양이 많으면 감히 엄두도 낼 수 없는 일이다. 얼마 되지 않으니 남편이 말하는 미련한 짓거리를 할 수 있는 거였다.
 사실 남편의 말이 틀린 건 아니었다. 그럼에도 나는 햇살의 기운이 수그러드는 오후에 또 밭으로 가겠지. 알뜰함과 미련함의 그 어디쯤에 서서 갈등하며 또 참깨를 가득 물고 있는 씨방을 따고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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