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는 마을은 산청명품곶감으로 유명한 마을이다. 산청이라는 도시가 어떤 도시인지도 모르고 지리산이 좋아 무작정 귀촌을 했다. 그해의 가을은 내겐 너무 신비로운 세상이었다. 들과 밭. 가로수까지 집안 뜰 구석구석에서 주홍빛 감들이 반짝거렸다. 초록빛과 주홍빛이 어우러진 풍경은 흡사 축제를 하기 위해 주홍빛 조명등을 걸어 놓은듯했다. 어느날 그 많던 감이 사라지더니 곶감으로 다시 태어났다
윗지방에서 태어난 나는 곶감이 어떻게 만들어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 곶감은 그저 제사상에만 올라오는 음식이라고 생각했다. 달달하고 쫄깃한 곶감이 먹고 싶어 졸음을 참아내며 제사가 끝나기를 기다렸다. 제사가 끝나면 곶감 쟁탈전이 벌어지곤 했는데 식구가 많다 보니 내 차례까지 오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귀촌을 하던 첫 해의 계절은 겨울초입이었다. 마을에 있는 밭에는 온통 감나무가 차지하고 있고 앙상하게 잎을 떨군 나뭇가지 끝에는 이미 홍시로 변한 까치밥이 주렁주렁 달려 있었다. 살얼음이 얼은 홍시를 따서 윗부분의 껍질만 벗겨내고 쪼옥하고 빨아먹었다. 남편과 나는 그 까치밥을 따 먹으러 다니며 겨울을 보냈다. 그렇게 맛있었던 홍시가 추억의 맛을 따라오지 못해 지금은 먹지 않는다.
가을로 들어서면서 감나무 밭에는 햇살을 받은 감들이 주홍빛으로 물들어 갔다. 태양이 떠 오르고 햇살이 감 위에 살포시 내려앉으면 들판에 주홍빛 조명이 켜졌다. 아직 가을을 더 부여잡고 싶은데 들판에 주홍빛 조명들이 꺼지고 있다. 감을 깎아야 하는 시간이 가까이 다가오고 있다. 아쉬운 나는 들로 산으로 여행으로 돌아다니며 휑한 마음이 빵빵해지도록 즐겼다.
실컷 돌아다니고 감농가에 가서 감을 깎아 주는 일을 시작했다. 첫날, 탱자탱자 놀기만 하다가 일을 하려니 적응하지 못한 내 몸은 천근만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