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바람을 동반한 추위가 이틀째 이어졌다. 날씨가 추우니 뜨끈한 배추된장국이 생각났다.
배추가 없는데 냉동실에 얼려 둔 시래기를 꺼내 된장국을 끓일까? 하다가 저장고에 있는 배추가 생각났다.
김장할 때 속이 차지 않은 배추를 버리기가 아까워 신문지에 싸서 저장고에 보관했다. 겨울에 쌈으로 먹고 국도 끓여 먹을 생각이었다. 초겨울에 끓는 물에 데쳐서 강된장을 만들어 쌈을 싸서 먹고 시간이 지나면서 까맣게 잊고 있었다.
저녁밥을 지으면서 쌀뜨물을 받아 멸치와 다시마로 육수를 냈다. 배추는 데쳐서 쫑쫑 썰어 된장에 조물조물 버무려 넣고 은근하게 끓였다. 마지막으로 칼칼한 맛을 내기 위해 고춧가루 한 숟갈 넣고 한소끔 더 끓였다.
배추된장국을 끓이다 보면 늘 어린 시절로 돌아가곤 한다.
초등학교 3학년때의 이야기다. 우리 형제는 7남매였다. 위로 중학교에 다니는 언니와 두 살 많은 오빠가 있고 동생이 4명이나 되었다.
가을 어느 날에 부모님은 친척 결혼식에 다녀오겠다며 동생들을 잘 보고 있으라고 했다. 아침 일찍 집을 나선 부모님은 해가 지고 집안에 어둠이 가득 찰 때까지 돌아오지 않았다. 기다려도 기다려도 엄마는 오지 않고 가을소풍을 간 언니도 오지 않았다.
동생들은 배가 고프다고 징징거렸다. 거기에 외양간에 있는 소 한 마리도 배가 고프다는 듯 연신 음머음머 울어댔다.
오빠가 내게 물었다.
"너 밥 할 줄 알아?"
엄마가 밥을 하면 나는 늘 그 옆에서 잔심부름을 했다.
"엄마가 쌀 씻어서 밥 하는 거 여러 번 봤어. 내가 밥하고 배춧국 끓일게 오빠는 소죽 끓여."
오빠는 건넌방 아궁이에 불을 때서 소죽을 끓였다.
나는 우물가에서 쌀을 씻으며 쌀뜨물을 받았다.
부엌에는 세 개의 솥이 걸려 있었다. 작은 솥에는 밥을 했고 중간 솥에는 국을 끓였다. 제일 큰 솥은 겨울에만 사용했는데 뜨겁게 끓인 물은 엄마의 설거지 물이 되고 식구들의 세숫물이 되었다.
나는 엄마가 그랬던 것처럼 씻은 쌀은 조리질 해서 작은 솥으로 옮겼다. 마지막 남은 쌀은 바가지에 부어 비스듬히 기울여 흔들흔들 흔들며 돌과 쌀을 분리했다. 중간솥에는 쌀뜨물을 붓고 밭에 가서 김장용 배추 한 포기 뽑아 다듬고 씻어 숭덩숭덩 썰어 솥에 넣었다.
장독대에 가서 된장과 고추장을 퍼 왔다. 엄마는 배춧국을 끓일 때 된장 한국자에 고추장 한 숟갈의 비율로 끓였다. 늘 내가 하던 심부름 었기에 기억하고 있었다. 두 개의 아궁이에 불을 지폈다. 먼저 밥솥이 눈물을 흘리더니 거품을 토해냈다.
아궁이의 불을 빼서 국을 끓이는 아궁이에 옮기고 밥이 뜸이 들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뜸은 얼마나 들여야 하는 건지 가늠할 수 없었다. 대충 밥솥 아궁이에 잔불을 넣어 뜸을 들였다.
그 사이 오빠는 소죽을 끓여 여물통 가득 채워 주고 부엌으로 왔다. 국 솥을 열어 맛을 보더니 짜다고 했다. 나는 물을 한 바가지 더 부었다. 그리고 또 부었다.
결국 배추 한 포기의 흔적은 어디로 갔는지 국물만 가득이었다.
밥 솥을 열어보니 밥은 생쌀이었다. 나는 물을 더 붓고 다시 불을 땠다. 이번에는 밥 타는 냄새가 났다.
우왕좌왕 헤매고 있는데 대문밖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드디어 엄마가 오는구나 냅다 대문을 향해 뛰었다.
하지만 대문을 들어서는 사람은 엄마가 아니고 언니였다.
언니를 보자 서러움이 터진 나는 울먹거리며 전, 후 사정을 이야기했다. 교복도 벗지 못하고 부엌으로 들어온 언니도 뾰족한 수는 없었다.
우리 7남매는 탄 냄새가 나는 생쌀밥과 건더기 없는 짜디짠 멀건 된장국으로 허기를 채웠다.
엄마를 기다리다 지쳐 잠이 들었는데 방구들이 따뜻해졌다. 부엌에서 들려오는 도마소리에 잠을 깼다.
하루종일 추위에 떨면서 일을 하고 온 남편은 오래 끓여 시원하면서 달달한 배추된장국에 밥을 말았다.
후룩후룩 금방 그릇의 바닥을 비우는 남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