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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삐빕 Dec 28. 2024

파리에서 집을 구한다는 건

파리로 상경한 시골쥐의 거처 찾기




파리가 좋아서 가기로는 했는데


합격의 기쁨과 별개로 이제 파리의 삶을 준비해야 했다. 나는 이사를 생각만 해도 까마득한 기분이었다. 도시 내에서 이사만 해도 극심한 피로가 몰려왔는데 도시 간 이동은 너무 앞이 깜깜했다. 이 과정이 싫어서 원래 대학도 리옹으로 쓰려고 했다. 그렇지만 리옹에서 미술사를 공부하려면 외곽에 있는 대학 캠퍼스로 매일 트램을 타고 장시간 이동한다는 불편이 있었다. 어학 당시 나는 왠지 모를 의무감에 보자르 매거진(Beaux Arts Magazine) 같은 예술 잡지를 사서 보곤 했는데, 광고에 실려있는 대부분의 흥미로운 전시는 파리에서 열린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결국은 파리로 가야겠다 싶었다.


보증인? 그런 건 외국인에겐 먼 나라 얘기지


프랑스에서 집을 구하는 건 ‘보증인’ 제도 때문에 외국인한테는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보증인 제도란 내가 구할 집 월세의 3배가 되는 금액을 한 달 월급으로 받는 사람이 내 집계약에 보증을 서주는 것이다. 그러니까 만약 내가 50만 원짜리 집을 월세로 세 들고 싶다면, 현지에서 세후 150만 원을 월급으로 받는 사람이 각종 월급 명세서와 세금 납부서 등의 서류들을 준비해 줘서 내 보증을 서야 한다. 파리의 원룸 월세는 20미터 제곱 기준 대체로 90-100만 원 정도였다. 어학을 하는 학생 입장에서 프랑스인 지인을 하나 갖고 있기도 어려운데, 세후 300만 원을 받는 사람을 알고 있을 리 만무했다. 그래도 워낙 외국인이 많고 이 문제는 모두의 공통적인 사항이었기 때문에, 외국인을 위한 시스템도 조금씩 준비되고 있기는 했다. 예를 들어 1년 치의 월세를 은행에 묶어두고 은행 보증을 받는 시스템과 같은. 그러나 이것도 은행에 내는 돈이 상당했다. 보증인이 없으면 결국 돈으로 다 메꿔야 하는 것이다. 이전까지는 어학원을 통해 집을 구했기 때문에 이런 불편을 대면하지 않아도 되었지만 이제 얘기가 달라졌다.


결국 가까이 가서 발품을 팔아야 해


그런 상황에서 보증인을 요구하지 않는 집들은, 상태가 나쁜데도 높은 월세를 받거나 보증금을 올려 받았다. 사기도 꽤 많았다. 리옹에서 집을 인터넷으로만 구하는 건 아무래도 한계가 느껴졌다. 나는 몇 달 일찍 단기 숙소를 구해서 파리에 올라갔다. 근처에 살면서 바로 집을 보러 가는 게 낫다고 생각하고 그 결정은 옳았다. 짐을 옮기는 과정은 의외로 수월하게 풀렸다. 파리의 한 이사업체에서 리옹 업체와 연계해서 중간 지점에서 만나 옮겨주기로 했다. 서울-부산 간의 거리보다 멀었기 때문에 하나의 지역 업체가 왔다 갔다 하는 건 이동 거리과 수고를 감안했을 때 너무 비쌌기 때문에 이 방법은 정말 괜찮았다.


하나의 인연은 떠나고, 하나의 인연은 시작되고


새 학기에 다니게 될 학교 캠퍼스가 13구에 있었기 때문에 이 구역을 중점으로 집을 구해보기로 했다. 리옹에서 제일 친하게 지냈던 친구도 같은 시기에 파리에 올라오게 되었는데, 이 친구는 리옹에 지내면서 집 보러 올 때마다 파리까지 이동해 왔다. 이 친구는 다른 지역에 집을 구한다고 해서 내가 컨택하던 부동산을 공유해 주었는데 갑자기 13 구로 집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나는 같은 집을 두고 경쟁하게 될까 봐 걱정이 앞섰다.


프랑스에서는 집주인이 세를 놓고 관심 있는 사람들의 연락이 쌓이면 모든 예비 세입자들을 모아 한번에 방문하도록 한다. 그리고 예비 세입자들의 서류를 다 모아 받아서 집주인이 쭉 보고 원하는 세입자를 결정한다. 13구의 어떤 집을 그 친구와 같은 시간에 방문하게 되었는데, 나는 이미 갈 때부터 그 집이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메트로 역에서 너무 멀었다. 그래도 약속은 잡았으니 일단 방문은 했다. 그 친구는 파리에 이미 살고 있던 고등학교 동창인 친한 친구랑 함께 방문했는데 그 집이 꽤나 마음에 든 모양이었다. 그런데 나를 너무 경계하는 게 느껴졌다. 이해를 못 하는 건 아니지만, 나는 그 친구에게 나름 해줄 수 있는 것 다 아낌없이 베풀었다고 생각해서 그 태도가 너무 서운했다.


나는 그 집에 방문한 다른 부동산 업자와 우연히 먼저 같이 나가면서 연락처를 교환했고, 그 사람이 소개해준 집에서 그 후 5년을 지내게 됐다. 결과적으로는 좋은 부동산 업자와 인연을 만들었고 마음에 꼭 드는 집을 찾았다. 하지만 그 시점을 기준으로 큰 인연을 하나 잃었고 파리는 이사부터 참 씁쓸한 기억으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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