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T부터 쉽지 않은 신입생의 고군분투기
대학으로부터 정식 합격 발표를 받고 학교에 등록할 거라는 확인 편지도 보냈다. 파리로 이사하고, 9월에 공식적인 학기가 시작하기 전에 여름동안 파리에서 잠깐 다닐 새로운 어학원도 등록했다. 아마 어학 실력이 부족했기 때문에 그렇게라도 좀 해놓아야 마음이 편했다. 그래도 재미를 붙여서 꾸준히 나가긴 했는데 실제로 대단히 열심히 뭘 공부하지는 않았다. 실전의 시간은 다가오고 있었다. 대학에 가면 수업이 안 들리는 게 당연하다는 말을 포함해서 정말 다양한 거의 ‘저주에 가까운’ 불행한 예언들이 쏟아졌는데 너무 걱정이 되었다.
당장 있을 신입생을 위한 오리엔테이션부터 캄캄했다. 누가 같이 있으면 좋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그때 우편으로 날아온 정식 합격 발표 이전에, 임시로 단체 메일로 왔던 합격자 발표가 생각났다. 처음 받고는 한국에선 있을 수도 없는 일이라는 생각에 참 황당하기도 하고 당황스러운 합격자 발표 단체 메일이었는데. 지금으로서는 이보다 더 반가운 일이 없었다. 메일 수신자는 모두 숨김없이 적혀있었고, 한국인의 메일 주소는 확실히 눈에 띄었다. 아이디가 대체로 이름이거나, 이니셜과 생일 혹은 년생 관련 숫자의 조합이거나, 아니면 도메인이 네이버거나.
나는 그중 확실한 하나를 골랐다. 그리고 OT에 같이 가자는 제안 메일을 보냈다. 며칠 뒤 답장이 왔는데 다른 일정이 있어서 학교에 늦을 것 같다고 그냥 각자 가자는 거절이었다. 아쉬웠지만 어쩔 수 없었다. 다른 한 명에게 다시 같은 내용을 보냈고, 그 사람은 승낙하는 답장을 보내왔다. 나중에 알고 보니 나보다 나이가 열 살 이상은 많은 언니였다. 한국에서 이미 전문직 직업으로 살아오다가 2회 차 인생을 위해 유학을 택한 사람이었다.
몇 개 학과의 신입생 모두가 큰 강당에 모였다. 각종 학과 정보, 일정 등 기본적인 내용을 설명했을 거다. 당연히 제대로 알아듣지 못했기 때문에 가정으로 쓴 것이다. 어쩌면 못 알아듣는 게 당연했다. 나는 프랑스 학교 생활을 해본 적이 없고 학교에서 쓰는 일반적인 학사 용어들을 당연히 몰랐다. 지금은 너무 익숙한 강당 수업 (CM), 교실 소규모 수업 (TD) 조차 그때는 알기 어려웠다. 대학교마다, 심지어 같은 대학일지라도 학과마다 너무 시스템이나 과목 스케줄, 수업 구성, 성적을 내는 방법 자체가 다 다르기 때문에 다른 학교를 이미 경험한 사람이라고 해서 프랑스의 모든 시스템을 알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 두세 시간의 설명회 시간 동안 거진 못 알아들었지만 그래도 그냥 정말 중요한 거면 학교에 다니면서 알 수 있을 거라고 편하게 생각했다. 그나마 학교에서 아는 사람이 한 명 생겼다는 것만으로도 다행인 상황이었다.
집에 와서는 다시 브로슈어를 살펴보았다. 일단 수강신청이라는 거대한 산이 하나 있었다. 일단 ‘전공 필수’인 과목들을 집어넣고, ‘전공 선택’으로 뭘 할지 고민했다. 첫 학년 첫 학기의 전공 선택 두 가지는 일단 그리스 고고학・미술사 그리고 19세기 현대 미술 과목이었다. 어떤 교수님이 좋은지 힘든지 어떤 과목이 통과하기 수월한지 물어볼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아무런 기초 지식 없이 선택했고, 수업 동안 뭘 할지 모르는 상태에서 그 두 개의 과목이 당시 느낌에 가장 ‘수월’할 것 같았다. 전공 선택 옵션 외에는 따로 선택지가 별로 없었다. 필수로 들어야 하는 수업이 한 3개 정도 있었다. 그리고 선택 교양 2개, 언어 이 정도. 주당 수업이 약 20시간이었다. 수업은 1.5시간짜리와 2시간짜리로 나뉘었고, 가끔 3시간짜리 과목도 있었다. 하나씩 파악해 가면서 프랑스 대학의 커리큘럼에 용어와 기초부터 아주아주 조금씩 익숙해지고 있었다. 그러나 당연히 대학 생활이란 건 시스템만 파악해서 될 것은 아니었다. 실제로 얼마 후에 시작된 수업은 내가 생각했던 그 이상의 심각성으로 나를 압도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