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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삐빕 Oct 12. 2024

생테티엔 어학원에서의 첫걸음

낯선 언어와 환경 속에서 떠밀리듯 살아갑니다.




반배정이 있겠습니다.


기숙사는 무사히 들어갔다. 한국에서부터 바리바리 가지고 온 짐들도 풀었고, 당장 필요한 물건들도 건너 건너 알게 된 분의 도움으로 사서 방 안에 정리해 두었다. 이제 남은 건 어학원에 출석하는 것. 어떻게 진행될까 궁금하기도 하고, 걱정도 되지만 뭐 다 외국인이니까 괜찮겠지. 오리엔테이션 당일에 늦지나 말자는 마음이었다. 아직 시차적응이 안 된 덕분에 아침에 눈은 빨리 떠졌다. 나와 같은 유학원을 통해 생테티엔으로 떠난 친구는 두 명이 더 있었다. 우리는 같은 날 인천 공항에서 같은 비행기를 타고 출국해, 같은 목적지에 내려서 함께 택시를 타고 기숙사에 도착해서는 같은 층에 배정받았다. 등교도 이들과 함께였다. 그 기숙사에 사는 외국인들은 거진 다 같은 목적지를 갖고 있었다. 낯선 길을 찾아 어학원 건물에 들어섰다.


오리엔테이션은 다과회부터 시작이었다. 와, 외국은 벌써 이것부터 다르네? 식순에 맞춰 딱딱하게 진행될 거라고 예상했던 이벤트와는 달리 자유롭게 풀어진 분위기였다. 우리가 foyer라고 부르는 휴게실에 모여 테이블에 잔뜩 빵, 과자와 음료를 진열해 두고, 안내할 내용들은 선생님들끼리 대화하며 전달을 했다. 사실상 거의 알아듣지 못했지만. 한국에서 다니던 대학을 졸업하고 유학원을 갔을 때, 국립대학 부설 어학원은 학기 시작이 9월이라 그때에 맞춰가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일단 그 시기로 출국일을 잡고 그 사이에 종로에 있는 프랑스 어학원을 다니며 4개월쯤 공부를 하기는 했다. 그런데 정작 프랑스에 와서는 한 마디 할 줄 모르는 사람이었다.


레벨이 ‘없는’ 프랑스어 학습자


다과회가 마무리되면서 이제 반 편성을 위한 레벨테스트를 보러 움직이는 분위기가 되었다. 그런데 어학원장이었던 다비드(David)가 “프랑스어를 잘하지 못하는 학생은 여기 넬리(Nelly) 선생님을 따라가세요.”라고 했다. 어떻게 또 그 말은 용케 알아듣고, ‘저기다’ 싶어 넬리를 졸졸 따라갔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렇게 따라간 학생들은 시험 없이 바로 ‘이제 프랑스어를 시작하는 사람을 위한 반’으로 자동 배정되는 것이었다. 사실 나는 제일 기초 레벨이었던 게 맞다. 말 한마디 제대로 못하는 사람이었다. 그렇지만 그때의 자존심에 시험조차 못 보는 건 싫었다. 그래서 그 넬리 선생님한테 피력했다. ‘시험 보러 가고 싶어.’ 하지만 돌아오는 다정한 대답은 이랬다. ‘너는 프랑스어를 못하니까 우리 반으로 가면 돼.’


한국에서 조금씩 배우고 온 한국인 친구들은 다 1 레벨 반으로 들어갔다. 불어불문 전공자는 3 레벨이었다. 나는 0 레벨이었다. 레벨이 없다니. 괜히 따라가서 이게 뭐야 싶었다. 그렇지만 그것 조차 내가 프랑스어를 이해하지 못해서 생긴 일 아닌가! 누굴 원망할 것도 없었다.


오히려 좋을지도


프랑스어를 배우러 왔는데 프랑스어로 수업이 진행되었다. 심지어 우리 반은 ‘왕기초반' 아니었던가! 답답한 학생들이 영어로 어떻게든 말하려고 하면 선생님은 못 알아듣는 척했다. ‘이것은 프랑스어로 어떻게 말해요?’라는 질문도 프랑스어로 하도록 만들었다. 대단한 교습법이었다. 이후로 학교를 다니면서 다른 외국어들을 배우며 깨달은 것은, 아시아권의 언어가 아니고서는 무조건 배우고 있는 언어로 수업하는 것이 프랑스의 교육 철학인 듯했다. 나중에 대학 학사과정을 다니면서 외국어 수업으로 이탈리아어를 선택해 배웠는데, 그때도 왕기초반을 대상으로 이탈리아어로 수업이 진행되는 걸 보고 이 어학의 순간이 많이 떠올랐다. 어학원에서 하루 세 시간 동안 열심히 그러나 되는대로 더듬더듬 프랑스어로 의사를 표현하고, 끈기 있는 선생님의 가르침을 이해하고 나면 모든 진이 다 빠졌다. 우리 반은 한국인이 거의 없는 반이라 중간중간 물어볼 데도 없으니 더 그랬다. 사실 물어봐도 그들도 몰랐을 것이다. 눈치코치로 수업을 따라가야 했다.


노력의 차이, 결과의 차이


생테티엔의 어학원 수업은 커리큘럼이 좋기로 유명했는데, 실제로 그렇기는 했다. 점심시간 이후 오후에는, 낮은 레벨의 학생들을 위한 ‘아틀리에' 수업이 열렸다. 이 수업에서는 소규모 그룹만을 대상으로 했는데, 은퇴한 프랑스어 선생님들이 오셔서 학생들의 발음 지도를 해주셨다. 나도 여러 번 참여했다.


우리 어학원에는 나보다 1년 먼저 와서 어학을 하던 한국인 남자분이 있었다. 그분은 매일 오후에 어학원 도서관에서 공부를 했다. 아틀리에 수업을 들으러 가는 날마다 그분이 공부하는 모습을 보았다. 참 열심히 하는구나 싶었다. 나는 수업이 끝나면 같은 반 친구들하고 점심을 먹고, 저녁 식사 거리를 사러 마트에 들렀다가 기숙사로 향했다. 첫 자취였고 살림을 해본 적이 없으니 장 보는 것에도 요리하는 것에도 뒷정리에도 에너지와 시간을 많이 뺏겼다. 그리고 일단 학원 수업이 끝나면 너무 지쳐서 집에 누워있고 싶었다. 그때 그 도서관의 남성분은 프랑스에서 아주 잘 지낸다. 페이스북으로 어디 학교에서 학사를 하고 또 석박사를 했다는 소식이 전해져 왔다. 교우관계도 좋아 보였다. '맞아, 정말 열심히 하시더라고.' 부러움과 아쉬움을 담은 박수가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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