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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삐빕 Nov 09. 2024

난 이제 혼자여행은 안 해 3

불안과 긴장으로 점철된 프랑스 남부여행 - 마르세유 그리고 여행 종료




혼란 속의 출발


다음 날, 원래 예약한 기차표는 전날 도착한 지점에서 출발하는 것이었다. 또 거기까지 언제 걸어가겠는가? 그래서 숙소 옆 기차역에서 그 지점까지 가는 차표를 하나 더 끊어서 이동했다. 그렇게 할 수 있는 기차 일정이 있어서 다행이었다. 


보트 타고 즐기는 마르세유


이제 마르세유로 가는 날이었다. 마르세유는 뭔가 할 것이 많아 보이는 도시였다. 항구도시답게 배를 타고 나가서 뭔가 둘러보는 코스도 있었다. 그걸 하기로 했다. 하나의 보트를 타고 나가는데 거기에는 마르세유 앞바다에 위치한 이프(If) 섬에 있는 교도소에 내려서 둘러보는 A코스, 좀 더 멀리까지 나가면서 배에서 내리지 않고 쭉 둘러보고 한 바퀴 돌아오는 B코스가 함께였다. 이프섬에는 샤토 디프(Château d'If)라는 알렉상드르 뒤마의 소설 《몬테크리스토 백작》의 배경이 되는 장소가 있었다. 아니, 그 소설은 읽지도 않았는데 왜 거길 가고 싶어 했던 거야? 지금의 나는 이런 생각이다. 어쨌든 그때의 나는 그 섬이 가고 싶었고 A코스의 값을 내고 보트에 탑승했다.


두 가지 코스가 함께 있었던 걸 몰랐던 나는 그 보트에 탄 모두가 이프섬에 가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여정 중간에 직원이 뭐라고 안내하자 앞에 있는 몇 사람만 내리고 배가 다시 떠나버렸다. 나는 사람들이 섬에 내리면 따라 내리려고 기다리고 있었다. 즉, 내릴 타이밍을 놓쳤다. 어정쩡하게 B코스를 같이 돌면서 혹시나 A코스의 돈을 내고 B코스를 탔다고 뭐라고 항의가 들어올까 봐 긴장하고 있었다. B코스가 좀 더 비쌌기 때문이다.


도와주지 않는 날씨


마르세유는 가기 전부터 들은 얘기가 있었다. 특히 위험하다는 경고가 많았다. 뭐가 위험한 거지? 도시 분위기가 이렇게 활기차고 좋은데! 인천 사람인 나는 아무래도 항구 도시에 좀 친근한 마음이 들어서 더 그렇게 생각했다. 저녁이 가까워지니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나는 우산을 쓰고 종이 지도를 힘겹게 보면서 숙소를 찾고 있었다. 비에 젖은 종이 지도는 찢어지기 직전이었다. 겨우 숙소만 찾아온 나는 혼성 도미토리에 들어왔다. 3인실이었던 방에는 남자애 둘이 벌써 1층 침대를 차지했다. 나는 남은 2층 침대를 기어올라가 내 작은 짐을 풀었다. 


마실 물이 필요했다. 저녁도 먹어야 했다. 밖으로 나왔는데 아직 비는 줄기차게 내렸다. 저녁을 먹을 식당에 들어갔는데, 마르세유에서 꼭 먹어야지 했던 부야베스(Bouillabaisse)는 2인분부터 주문할 수 있단다. 절망이었다. 아무거나 시켜서 먹고 나와서는 슈퍼를 찾아 헤맸다. 용기 내서 사람들한테 물어봤지만 운이 없게도 전혀 답을 모르는 사람들뿐이었다. 나는 결국 물을 포기하고 어떤 카페 겸 바에 들어갔다. 생각해 보면 아마 그때 시간에는 슈퍼들이 문을 닫았을 확률이 높기는 하다. 비에 젖어 체온이 떨어진 상태라 따뜻한 것을 마시고 싶었다. 그런데 하필 커피 머신이 마감해서 따뜻한 음료가 없었다. 더 다른 곳을 찾을 기운도 없어서 그냥 주스를 시켰다. 추웠다.


마르세유의 위험


내 테이블 앞자리에 갑자기 어떤 남자가 앉았다. 넌 또 뭐야? 그 남자는 나랑 놀고 싶어 했다. 아마 그냥 하루 자고 싶었겠지. 그 피곤에 찌든 내가 뭐 얼마나 외모적 어필을 했을까, 이번에도 그저 동양인 여자애 혼자 있으니 만만했을 것이다. 그는 호텔에 지갑을 가지러 가야 하는데, 내가 꼭 여기 계속 있어달라고 요청했다. 나는 그를 몇 번이고 안심시킨 뒤에 그가 자리를 떴을 때 바로 숙소로 도망갔다. 해변가를 걸어 숙소로 가는데 옆 차도의 차들에서 운전하고 있는 남자들이 계속 놀러 가자고 말을 걸어왔다. 이거구나, 이런 게 위험하다고 하는 거구나, 그제야 그 말의 의미를 깨달았다.


몸살로 막을 내린 여행


숙소로 도착해서 2층 침대로 꾸물꾸물 기어올라 이불을 덮었다. 열이 나기 시작했다. 몸살 기운이 와서 새벽 내내 끙끙 앓았다. 심지어 그 와중에 생리도 터졌다. 할 때가 아닌데 아마 극심한 피로에 시작해 버린 것 같았다. 도저히 이 일정을 지속할 수가 없었다. 남은 엑상프로방스 일정을 모두 취소하고 바로 생테티엔으로 돌아가는 차편을 끊었다. 그렇게 내 ‘혼자 여행'은 끝이 났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고 했던가? 나는 그런 것 사고 싶지 않았다. 너무 아무것도 몰랐고, 몰라서 너무 고생했다. 혼자 여행은 재미있지 않았다. 일상에서 사람들에 치여 복작복작하게 사는 사람들이 혼자 여행을 떠나면 여유롭게 사색하면서 시간을 즐기는 게 좋다고 하는 것 같다. 나는 평소에도 혼자 보내는 시간이 많아서인지 여행지에서 혼자가 되니 너무 외로웠다. 아직 그 뒤로 한 번도 프랑스 남부에 가지 않았다. 굳이 갈 생각도 안 했고. 다시 그곳에 가면 그때 생각이 나서 어린 내가 안타까워 눈물이 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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