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원의 시집을 읽고 떠오른 그
“나랑 하고 싶은 게 뭐예요?”
이것은 작업 멘트인가, 거절 멘트인가. 몹시 헷갈렸으나 그때 살짝 취해 있었기 때문에 판단하지 못했다. 당황스러움에 그저 웃기만 했다. 그리고 그 다음 순간 그가 나에게 뽀뽀를 했다. 절대 키스 아니고, 입술도 거의 닿지 않은 0.001초 정도의 접촉, 진짜 뽀뽀 말이다. 그리고는 이게 자기가 할 수 있는 전부라고 했던 것 같다. 지금 비슷한 상황이었다면 '뭐래' 라고 해 주었을지도 모르겠는데 그때 나는 그 말을 그냥 수긍했다.
지금으로부터 19년 전의 일이다. 계약직이었지만 처음으로 번듯한 직장을 다니게 된 그때의 나는, 지금껏 경험해 보지 못한 삶을 누리느라 무척 분주했다. 치마 정장도 장만하고(나는 20대 후반까지 치마를 사 본 적이 없었다.) 백화점도 가보고 네일아트도 해 봤다. 귀도 그때 뚫었던 것 같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직장 동료들과 자주 놀러 다녔다. 새벽까지 술자리가 이어져도 집에 가지 않았는데 그때는 술자리에서 중간에 일어난다는 것을 상상해본 적이 없었다. 정말 즐겁고 재미난 것도 이유였지만 무리에 온전히 끼고 싶어서 그랬던 것 같다.
그 학교에는 12명의 노동조합 조합원이 있었는데 내가 오기 전에도 똘똘 뭉쳐서 잘 놀러다녔다고 한다. 나는 그 12명의 조합원과 두루두루 친하게 지냈고 그도 그 중 한 명이었다. 나보다 열 살 정도 많았으며 바로 내 옆자리였다. 지금 교무실에는 꽤 높은 칸막이가 있지만 그때는 책상만 나뉘었을 뿐 공간을 함께 쓰다시피 옆이 뻥 뚫려 있었다. 그가 읽는 책을 내가 보고, 내가 읽는 책을 그가 볼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는 항상 셔츠를 반듯하게 입고 다녔다. 아주 친절하고 온화했으며 사회 초년생이나 다름 없는 내게 늘 도움을 주는 사람이었다. 업무만 그런 게 아니었다. (집회장에서 자주 만나게 되는 민중가수)최도은, 연영석만 알던 내게 노라 존스의 음악을 추천하였고 루시드 폴 1집을 선물하기도 했으며 진주귀걸이를 한 소녀 dvd도 사주곤 했다. (나도 뭔가를 줬을텐데 받은 것만 기억이 난다.) 4호선 지하철을 타고 출퇴근하던 시절이었는데 집으로 가는 방향이 같아서 퇴근도 항상 함께 했다. 자연스럽게 많은 대화를 나누게 되었고 그의 음악, 영화 취향이 나와 잘 맞아서 학교에 출근하는 게 즐거웠던 시절이었다.
여름이었던가. 한번은 그 없이 다른 사람들과 술을 마시는데 장난기가 발동한 동료 교사가 문자를 보내보라고 종용했다. 내일은 티를 입고 출근하시는 게 어떠냐는 내용이었다. 나에게 유독 더 친절한 그를 테스트해본다는 취지였는데 술 때문인지 나도 그 유치한 꼬임에 넘어가 메시지를 보내고 말았다. 다음 날 그는 늘 입던 대로 셔츠를 입고 왔는데 셔츠 안에 티를 받쳐 입고 출근을 했다. 평소와 다르게 셔츠 단추를 살짝 풀었기 때문에 누구나 그의 달라진 복장을 눈치챌 수 있었다. 장난을 친 동료 교사는 '거봐라'하면서 재밌어했는데 나는 괜히 속인 것 같아 민망했다. 하지만 내 문자를 무시하지 않고 그렇게라도 반응한 것을 보니 기분이 좋았다.
우리(12명과 나)는 대학생들처럼 엠티도 가고 강원도며 강화도며 여러 차례 나들이도 다녔다. 그러면서 그와도 더 친해졌다. 여러 대의 자동차가 움직여도 나는 꼭 그의 차에 탔고 뭘 먹을 때도 내 옆자리에는 꼭 그가 있었다. 내가 그를 좋아하나? 아니면 그냥 존경하는 걸까? 무엇보다, 이 사람도 나를 좋아하나? 의심과 확신이 오고가는 그런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더 깊은 관계가 되는 상상도 해보고 말이다.
그렇다고 해서 더 나아가기를 반드시 바란 건 아니다. 결혼한 사람이라는 점을, 반듯하게 살고 싶어한다는 점을 존중해주고 싶었다. 나는 이 정도의 관계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내가 그런 면에서 좀 무모하면서도 순수했다. 우리는 충분히 즐거운 관계라고 생각했고 주변 동료들도 우리를 심각하게 바라보지 않았다.
그런데 가을쯤 혹은 겨울쯤 되는 그날은 어찌된 일인지 그가 나를 집 근처까지 데려다주었다. 나와 단 둘이 밤길을 다닌 건 그날이 유일했다. 그는 나랑 일대일로는 절대 안 만난다는 규칙을 가지고 있었다. 그 규칙을 내가 기억하는 걸 보니 나에게 그런 말을 했던 모양이다. 그런데 그날은 왜 그랬을까. 왜 저런 대화를 나누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저 질문이 나올 수밖에 없도록, 내가 뭔가를 계속 요구했던가. 내 기억에 그런 것 같지는 않은데 나의 행동과 표정은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사실 나는 설레고 들뜬 마음을 숨김없이 표현하는 사람이니 그날 분위기는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내 대답은 중요하지 않았다. 그는 이미 자기 혼자 답을 정해 놓았고, 내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알지만 자신은 그렇게 해줄 수 없다는 결론으로 이어간 것이다. 뽀뽀는? 네가 원하는 게 이런 거지? 이런 뜻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인지 그날 그의 행동은 전혀 낭만적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어쨌든 딱 거기까지라고 선을 그어준 덕분에 우린 그 다음 날도 아무일 없었다는 듯 잘 지냈다. 그리고 더 이상의 특별한 사건 없이 내가 그 학교를 떠나게 되었다. 다른 계약직 교사들은 재계약되었지만 나는 그렇지 못했기 때문이다. 조합원 12명과 친분을 쌓은 게 이유였다고 생각하지만 상관없었다. 그 덕분에 지방으로 오게 되었고 정규직이 되었으니 나를 내쳐줘서 고맙다고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후에도 어떤 동료 교사 자녀의 돌잔치라는 이유로, 시험기간이라는 이유로 서울에 가끔 오가며 함께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살짝 그리움을 얹어 메일을 써 보내기도 했는데 모범적인 선배님처럼 인생 조언이 담긴 답장이 오곤 해서 점점 내 감정은 흩어져 갔다. 지금은 그가 바랐던 것처럼 그저 멀리 사는 선배, 그 옛날의 추억이 되어 버렸다.
지금 생각하면 그는 그런 사람이었던 것이다. 셔츠 속에 받쳐 입은 티셔츠같았다. 티셔츠를 대놓고 입을 수는 없지만 입었다는 것을 티내고 싶은 모습, 딱 나를 대하는 태도가 그랬다. 분명히 호감을 느끼고 있지만, 자신이 만든 범위 안에서만 표현하기 때문에 문제가 안된다고 생각한 것 같다. 그의 범위를 존중하지만 내 범위는 딱히 정해진 게 없었다.
나의 감정은 지금 생각해도 딱 규정할 수 없는데, 사실 규정할 필요도 없었다는 생각이 든다. 마음을 꼭 한 가지로 혹은 한 언어로 정의내릴 수 없을 때도 있지 않을까. 서로 이야기가 잘 통하고 같이 있으면 재밌고, 그래서 좀더 같이 있고 싶지만 더 같이 있지 못해도 괜찮은 사람, 그는 나에게 무엇이었을까. 마음을 즐겁게 나누는 관계가 특히 남녀 관계가 꼭 연애로 귀결되어야 하나. 나는 지금도 그렇지 않다고 답하고 싶다.
그래서 그날 그가 그런 질문을 하지 않았다면 더 좋았겠다. 그리고 나도 물어볼걸 그랬다. 질타인지 질문인지 모를 그 대사를 나만 못 해 본 게 아주 조금 억울하다.
“그래서 당신은, 나랑 하고싶은 게 뭐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