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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복이 Nov 08. 2023

마당 있는 집

관리 안 하면 안 힘들어요

영산홍, 찔레꽃, 수국, 애플민트.. 우리 집 마당에서 몇 년째 죽지 않고 살아주고 있는 식물들이다. 너무 많이 퍼져서 결국 뽑아버렸던 딸기, 미모사 등도 가끔 나타난다. 2년 정도 된, 작은 라일락 나무도 한 그루 있다. 그렇다. 나는 인천이지만 오래된 동네, 마당 있는 집에서 살고 있다.

우리 집은 지은 지 40년도 넘었다. 건물은 20평 정도이고 2층으로 되어 있으며 차를 한 대 주차할 수 있는 정도의 폭을 지닌 길쭉한 마당이 있다. 많은 사람들이 서울 외곽 도시에서 세를 살던 그 시절을 반영하듯 비슷한 집들이 다닥다닥 쭉 붙어있는 구조다. 우리 집 거실 창문이 옆집 마당으로 나 있는 방식인 것이다. 우리 옆집은 그게 싫었는지 우리 집 마당 쪽으로 난 창문을 시멘트로 아예 막아 버렸다.

아이가 6살 때 어린이집 근처 동네로 오기 위해 아파트를 팔고 이 집으로 이사를 왔고 올해로 5년째 살고 있다. 차를 주차하고 남는 벽 쪽 공간에 이것저것 기르고 있는데, 사실 기른다기보다는 방치했다가 가끔 정리한다는 게 맞을 정도이다. 6살 때부터 지금까지 꽃집 앞을 그냥 지나치지 않고 식물 쇼핑을 즐겨하는 아이 때문에 작은 화단에는 더 이상 뭘 심을 틈이 없을 정도이다. 그 덕분에 주차된 차 뒤꽁무니 공간이긴 해도, 아이는 곤충도 만나고 흙파기 놀이도 하면서 클 수 있었다. 더 넓은 마당이 있었다면 벽에 부딪히지 않게 아슬아슬 주차하지 않아도 될 텐데, 빨랫줄을 달아서 햇볕에 이불도 마음껏 널면 좋을 텐데 하는 욕심도 생기지만 지금도 충분하다. 뜰이라 부를 공간이 있으니 말이다.

어릴 적 시골 우리 집에는 앞마당과 뒤뜰이 있었다. 앞마당은 시멘트로 되어 있어서 수도시설과 빨랫줄이 있는 생활공간이었다. 엄마가 애지중지 기르던 화분들도 쭉 놓여있던 게 생각난다. 그에 반해 뒤뜰은 장독대가 있고 여러 과실수와 버섯과 꽃들이 자라는 곳이었다. 먹거리를 많이 기르는 공간이지만 밭과는 다르다. 수확물에 크게 연연하지 않는 그런 곳이었다. 꽃도 많았지만 앞마당 화분과는 달랐다. 뭔가 자유분방함이 있었다. 나는 앞마당에서는 뛰어놀았고 뒤뜰에서는 앉아서 놀았다. 장독대들을 위한 계단 같은 공간이 있어서 조용히 앉아있기 딱 좋은 곳이었다. 안방에 난 창문이 뒤뜰로 연결되어 있어서 완벽하진 않았지만 거기 있으면 외부와 차단된 느낌도 들었다. 평소 그다지 감성적인 어린이는 아니었지만 뒤뜰은 내가 그런 아이가 된 것 같은 착각이 들게 하는 곳이었다. 뒤뜰에 있는 앵두나 꺼먹살이(까마중), 대추는 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다. 오빠가 둘, 언니가 한 명 있었지만 거길 드나들며 뭘 따먹는 건 내가 유일했다. 지금은 뒤뜰이 그 정도로 유지된 것은 엄마가 가끔 가꾸고 정리한 덕분이란 걸 알지만 그때는 뒤뜰이 방치된 공간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더욱 그 뒤뜰을 좋아했다.

지금도 그런 공간이 있으면 좋겠다. 나만의 것이 아니더라도 내게 허용된 잉여 공간이 있다면 좋겠다. 도시에서는 그런 잉여 공간이 자꾸 사라지곤 한다. 꼭 공간만의 문제는 아니지만 시간이 있더라도 그런 곳이 내 일상 가까이에 없으면 여유를 즐기는 것조차도 큰 마음을 먹어야 한다. 빈 공간과 빈 시간은 오히려 나를 풍요롭게 해 줄 때가 있다. 집 근처 산에 오르거나 카페라도 가면 되지만, 내 뜰이 있는 것과는 차이가 있다. 일상 속에서도 문득 쉬어가야 하니까 말이다. 그게 스마트폰이 아니라 햇살과 풀, 꽃 사이라면 누구나 편안한 마음이 들 것이다.

게다가 화분에 있는 식물은 잘 관리하지 못해 죽이고 버리는 경우가 많은데 흙에 심어 자라게 하면 그럴 일이 없어서 좋다. 굳이 내가 기르고 가꾸지 않아도 어김없이 잘 살아가는 꽃과 작은 식물을 보고 있자면 기특하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지금보다 더 넓은 마당을 꿈꾸는 데는 그런 이유도 있다.

단독주택에 산다고 하면, 마당이 있다고 하면 관리가 힘들지 않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 나는 늘 “관리를 안 하니까 안 힘들어요.”라고 대답을 한다. 같이 웃기도 하고 어이없어 하기도 하지만 그게 사실이다. 잘 가꿔진 정원이 아니라도 좋으니 그냥 내버려 둔다. 생명이 자랄 때 너무 깨끗하고 반듯하면 그것도 안 어울리지 않을까. 가끔만 도와줘도 제 생긴 대로, 햇볕이나 바람 방향에 따라 잘 자라는 게 나쁘지 않다. 다른 식물이 못 자라게 침범하지 않는다면, 자연스러울 수만 있다면 최대한 그렇게 놔두고 싶다. 주차 공간에도 원래 잔디만 있었지만 5년이 지난 지금은 어디선가 날아온 다양한 풀이 더 많은 상황이다. 누가 보면 혀를 찰지도 모르지만 (실제로 옆집 할머니가 가끔 안타까운 눈빛으로 쳐다본다.) 몹시 자유분방한 우리 화단과 마당이 나는 좋다. 아주 가끔 웃자란 풀들을 뽑아주기만 해도 꽃들이 피고 벌들이 온다. 그래서 좁은 마당이지만 내가 좋아하는 이름으로, 뜰이라는 이름으로 부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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