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철인이 되기 위한 과정

✒️ 2025.11.14. 라라크루 금요문장

by 안희정

1. 바스락의 금요문장 (2025.11.14)


나무가 하늘을 향해 크게 자랄 수 있는 것은 바람에 수없이 흔들리면서 살아기가 때문이다. 냉혹한 바람에 꽃과 열매를 한순간에 잃어버리기도 하지만, 그럴수록 뿌리의 힘은 강해지고 시련에 대한 내성도 커진다. 팽나무에게 있어 흔들림은 스스로를 더 강하고 크게 만드는 기반이었다.

<나는 나무에게 인생을 배웠다> 우종영


2. 나의 문장


교통사고를 당했다. 월요일 저녁, 평소처럼 전기 스쿠터를 타고 퇴근하던 길이었다. 건널목에서 초록불이 켜지길 기다렸다가 출발하는데, 달려오던 하얀색 승용차가 정지신호를 무시하고 나를 들이받았다. 끼익하고 차 멈추는 소리가 공기를 날카롭게 갈랐다. 스쿠터가 한쪽으로 밀리며 휘청거렸던 감각이 기억난다. 몸이 그대로 굳어버렸다. 의식은 선명했지만, 내게 일어난 일이 현실이 아닌 것 같았다.

차 문이 벌컥 열리더니 50대 후반쯤 되어 보이는 여성이 다급히 내려 괜찮냐고 물었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에 어안이 벙벙해졌다. 정신을 차려보니 스쿠터 측면 플라스틱 일부가 부서져 떨어져 나갔고, 바퀴는 삐뚤어져 있었다. 양쪽 무릎과 손목이 시큰거렸다. 운전자는 즉시 보험 처리를 해주겠다고 말했다. 나는 여전히 어찌해야 할 바를 몰랐다. 4차선 도로에서 지나가던 차들이 계속 클랙슨을 눌러댔다. 나는 운전자에게 괜찮으니 일단 다른 곳으로 차를 옮기는 게 좋겠다고 말했다.


운전자가 떠난 뒤 남편과 엄마에게 전화했다. 잠시 후 엄마가 얼굴이 새하얗게 질린 채 달려왔다. 우리는 곧장 병원으로 향했다. 양쪽 손목과 무릎 X-ray를 찍었다. 의사는 뼈에는 이상이 없으니 당분간 물리치료를 받는 게 좋겠다고 말했다. 크게 다친 곳이 없으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나니 몸이 다른 신호를 보냈다. 목과 어깨, 허리가 일제히 아팠다. 사고 당시 스쿠터를 붙잡고 쓰러지지 않으려고 힘을 주며 버틴 탓이었을까. 목디스크가 재발한 건 아닐까. 겁이 났다. 퇴근 후 다시 병원을 찾아 이번에는 목과 허리 X-ray를 찍었다. 의사는 X-ray만 봐도 목디스크는 상당히 진행된 상태라 언제든지 통증이 나타나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라고. 지금으로서는 일단 물리치료를 꾸준히 받으며 지켜볼 방법밖에는 없다고 말했다.


그로부터 지금까지 매일 퇴근 후 병원에 가서 물리치료를 받는 생활을 반복 중이다. 올해 1월에 목디스크 증상이 처음 시작되고, 4월부터 지금까지 재활 트레이너와 열심히 운동하며 조금씩 회복되고 있다고 믿었는데…. 이번 사고로 그 모든 노력이 수포가 되면 어쩌나. 그게 무엇보다 불안했다.


새옹지마라는 고사성어가 떠올랐던 한 주다. 힘든 일 뒤에는 반드시 좋은 일이 따라온다고 말할 때 흔히 인용하곤 한다. 올해는 이 말을 믿기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다. 예상치 못한 일들이 자꾸 생기고 불운이 연달아 찾아온다는 생각을 씻기 어렵다. 이 모든 시련은 더 큰 행운의 징조일까. 아니면 무력감에 빠져 사는 나를 구제하려는 하늘의 노력일까?


불에 달군 철을 두드릴 때마다 불순물이 떨어져 나가고, 충격과 압력 속에서 결정 구조가 다시 배열되며 더 단단한 금속이 만들어진다고 한다. 시련도 삶의 두드림과 같다. 힘든 일을 거친 삶은 목적과 의미가 더 선명하게 드러난다. 불필요한 욕심은 자연스레 떨어져 나간다. 다치고, 멈추고, 다시 살아가는 과정을 겪어내면 무엇을 생각하고, 느끼고, 추구해야 할지 분명해진다. 나는 그렇게, 점점 단단한 인간이 되어가고 있다고 믿기로 했다. 물론 한편으로는 다른 소망 역시 강하다. 하늘이 날 또 두드릴 거라면, 다음에는 조금만 힘을 뺐으면 좋겠다. 내년에는 좀 더 나은 한 해가 되기를.



#라이트라이팅#라라크루#금요문장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단단한 행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