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눈 뜨자마자 창문을 열고 바깥부터 살폈다. 어제부터 종일 내린 비는 여전히 쏟아지고 있었다.
이따 나갈 때쯤에는 좀 잦아들기를 바라며 커피를 마시고 출근 준비를 했다. 인터넷 뉴스를 보니 서울 경기권에 밤새 내린 폭우로 강남역을 비롯하여 침수 피해가 심각했다. 갑자기 마음이 급해져 걷기 편한 옷이 뭐가 있나 옷장 안을 뒤졌다.
비가 오는 날은 항상 걸어서 출근한다. 타고 다니는 전기 스쿠터는 비를 맞으면 고장이 날 수가 있기 때문이다.
비 오는 날 복장은 반바지나 치마가 가장 적절하다. 긴 정장 바지는 이런 날 몇 걸음 걷지도 못하고 금세 다 젖어버려 다리에 찰싹 달라붙어 버린다. 강박증 환자의 집착처럼 한번 붙은 바지는 걷는 내내 떨어질 줄 모르고 불쾌감을 유발한다. 치마는 발걸음에 장단을 맞춰 펄럭펄럭 춤을 추고 설사 젖더라도 다리에 매달리지 않고 독립적인 노선으로 움직인다.
치마나 반바지는 짧을수록 좋지만, 어느 순간부터 내 옷장에서는 짧은 하의들이 사라진 지 오래다.
나이 듦이란 평소에는 의식의 너머 어딘가에 숨어있어 눈치채고 못 하고 살다가 이런 순간, 예고 없이 들이닥치는 불청객처럼 한 번씩 불쑥불쑥 찾아온다.
하는 수 없이 긴치마를 꺼내서 입었다. 여차하면 손으로 붙잡고 조금 걷어 올리면 된다. 내가 가는 출근길이 침수되었을 것 같지는 않았지만 걸어서 가야 하니 만일을 대비해서 평소 걸어서 출근할 때보다도 10분 일찍 집에서 출발했다. 다행히 빗발이 잠깐 누그러져 우산을 펼쳐 한 손으로 가볍게 들고 걷기 시작했다. 느긋한 마음으로 길가에 군데군데 생긴 물웅덩이를 폴짝폴짝 뛰어넘었다.
하늘을 보니 산발적인 회색빛 구름이 어디론가 바삐 가고 있었다. 밝은 햇살과 뭉쳐 다니는 뭉게구름은 화려하고 여유가 넘치는 자신만만한 슈퍼히어로 같아 보였는데, 오늘의 구름은 나쁜 짓을 하고 어디론가 도망치는 악당들 같다. 너희들은 꽁무니를 뺄 때조차 단합이 안 되는구나. 하늘을 보며 둥실둥실 피어나는 공상에 실실 미소를 흘렸다.
이윽고 교차로 횡단보도에 도착했다.
여름이면 설치하는 파라솔 형태의 대형 그늘막이 널찍하게길가에 펼쳐져 있었다. 나는 얼른 그 속으로 들어가 우산을 접고 신호등이 초록 불로 바뀌기를 기다렸다. 바람이 조금 불었음에도 워낙 그늘막이 커서 비가 전혀 안으로 들이치지 않았다.
순간 그늘막이 가져다주는 안전함과 포근함을 느꼈다. 마치 밖은 전쟁터인데 나는 보호막 안에 서 있는 것만 같았다. 그늘이 만든 마른 땅 밖을 나가기가 싫었다. 앞에 보이는 신호등 빨간 불빛이 조금 더 오래 이어지길 바랐다.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주인공인 우영우에게 머릿속으로 고래가 첨벙 빠져들듯 내 머릿속에 의미가 참방 들어왔다.
따갑게 내리꽂는 햇살이나 우리를 공격하듯 퍼붓는 비가 찾아올 때 교차로의 그늘막은 잠시 우리의 보호자가 되어 준다.
그 느낌이 너무 좋아 거기에 조금이라도 더 머물고 싶어진다. 그러나 그늘막에 영원히 머무를 수는 없다.
비록 다시 햇볕에 그을리고 몸이 비에 젖을지언정 초록 불이 켜지면 우리는 그늘막을 벗어나야 한다. 계속 전진해 교차로를 건너가야만 한다.
인생이란 마치 그늘막과 같다.
엄마의 따뜻하고 안전한 품이 좋다고 영원히 엄마의 아이로 머무를 수는 없다. 자라야 하고, 세상에 나가야 하고, 나가서 세상과 부딪히며 살아야 한다.
마음의 상처를 입었을 때 잠시 나의 그늘막 같은 사람들에게 들어가 회복의 시기를 보낼 수는 있다. 그러나 때가 되면, 다시 고난의 세상에 뛰어 들어가야 한다.
다시 일어서서 태양과 빗속으로 당당하게 걸어 들어가야 한다.
살아있는 모든 생명은 그런 운명을 가지고 이 땅에 태어났다. 길가에 핀 연약해 보이는 꽃들조차 무지막지한 햇볕과 비바람을 이기고 찬란하게 피어났다.
오늘의 일상이 주는 안전과 안락함이 좋다면 지금이야말로 새로운 도전을 시작할 때다.
우리는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나가서, 기꺼이 비에 젖자.
옷이 젖는 건 큰일이 아니다.
옷은 젖어야 한다.
빗물은 곧 마르게 마련이다.
눈앞에 초록 불이 켜지듯 인생의 기회가 찾아온다면 일단 기회를 잡으려고 시도해보자. 기회가 진짜 기회인지 아는 유일한 방법은 몸을 던지는 것이다. 누구나 다 아는 뻔한 답이라 생각되겠지만, 실제 행동으로 옮기는 사람이 극히 적은 이유는 현재 안주하는 삶이 주는 유혹이 너무나 달콤하기 때문이다.